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걍보리 Apr 09. 2023

너는 내 세상이다

29. 침묵의 소리

  새벽 네 시. 잠이 깼다. 이불 밖으로 나온 발이 시리다. 발끝을 앞으로 당겼다가 밑으로 보냈다. 발목 근육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조금 몽롱하다. 이불을 걷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느릿느릿 거실을 한 바퀴 돈다. 몸이 조금 풀리자 이를 닦았다. 세수를 했다. 물이 차갑다. 주변이 조용한 탓에 물소리가 크게 들린다. 

  고요한 새벽이다. 걸을 때 관절 마디에서 뚝뚝 소리가 난다. 열중 쉬어 자세에서 고개와 허리를 가볍게 뒤로 젖혔다. 목이 자체 무게로 조금씩 뒤로 넘어간다. 어느 순간 조금 어지럽다. 어깨 힘을 빼면서 길게 숨을 내쉬었다. 

  방석 한 개를 깔았다. 발을 나란히 한 뒤 가슴에 손을 모았다. 두 손바닥을 마주 댔다. 합장을 한 채 잠시 숨을 골랐다. 양 어깨가 중력의 힘에 의해 아래로 쳐졌다. 몸의 힘을 빼자 가슴에 있던 호흡이 아랫배로 내려갔다. 그 자세에서 천천히 몸을 낮추었다. 두 무릎을 방석에 댔다. 무릎을 꿇은 뒤 허리를 굽혀 엎드렸다. 양 팔꿈치와 이마를 바닥에 댔다. 어깨와 허리의 힘을 줄였다. 몸이 바닥을 향해 낮아졌다. 숨을 길게 내쉬자 몸은 더 낮아졌다.

  이 순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다. 몸이 낮아지자 마음도 낮아졌다.

  ‘나는 낮고 낮습니다.’

  ‘나는 작고 작습니다.’

  몸도 마음도 낮아지고 작아졌다. 내세울 나가 없어졌다. 자부심도 교만도 거품이었다. 우월감도 열등감도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다 밀려 나갔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정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열정도 미움도 회오리바람처럼 왔다가 사라졌다. 평안이 깃들었다. 

  이름 모를 새가 지저귀었다. 그 소리가 아침 고요를 가득 채웠다.   

   

  착하게 사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에 성실한 것이다. 진실하게 사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성실한 것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타인의 이해와 공감은 중요하다. 자신의 삶에 대한 자기 자신의 이해와 수용은 더 중요하다. 내면의 소리를 정직하게 듣고 성실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알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진실을 알기도 어렵고, 직면하기도 쉽지 않다. 가까이 가서 만지고 싶지만, 잘못 다루면 다칠 수 있다. 두렵고 조심스러운 것이다. 아름다운 진실도 있지만 부끄러운 진실도 있기 때문이다. 남부끄러운 일은 숨기고 싶고, 제부끄러운 일은 무시하고 싶다. 그러나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귀를 통해 들어오는 ‘겉말’이 아닌, 가슴에서 오는 ‘속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침묵 속에서 오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오래도록 익혀온 습관과 사회 관습은 힘이 세다. 그것들은 진실을 숨기거나 비틀려고 한다. 그것을 넘어서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몸에 밴 습관이나 낡은 관습에 맞서 진실을 실현하는 일이 가능해 보이더라도 아무나 하지 못한다. 

  그러나 위인만이 진실하게 사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서민들도 진실을 실현할 수 있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진실이다. 사람을 구제하는 것은 진실이다. 야만과 어둠 속에서도 진실을 따라간 사람은 구원될 수 있지 않을까? 사랑은 정성으로 얻을 수 있는 진실 중 하나이다.   

    

**********     


침묵 속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      


그 소리는 안에서 온다.

가슴 깊은 곳에서 말없이 온다.     


‘나는 작고 작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죽음 앞에 선 자이다.’     


침묵에서 오는 소리는 

진실하고 겸손하게 살라고 한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진실한 삶을 살라고 한다.

작가의 이전글 너는 내 세상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