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자기는 갈 곳이 없었어.
부부가 오래도록 함께 살았다고 해서 서로 다 아는 것은 아니다. 일부러 숨기는 것이 있어서 모를 수도 있지만, 어떤 것은 굳이 물을 필요도 없고, 또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며 산다. 상대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상대의 내면에 자리한 깊은 감정을 모르고 산다. 자신의 마음도 온전히 알기 어려운데 어떻게 상대의 마음을 다 알 수 있겠는가? 설령 이심전심으로 아는 것이 있어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내가 이 사람을 왜 좋아하지?’
이렇게 자신에게 물어보라. 마치 청국장 맛을 말로 설명하기 어렵듯이, 좋아하는 까닭을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표면상으로 내세우는 그럴듯한 이유도 ‘그냥 좋은 느낌’을 합리화하는 군말인 경우가 많다.
어느 날 차를 마시던 아내가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자신에게 묻듯이 말했다.
“내가 왜 자기랑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
인생은 수수께끼 같다는 느낌을 담은 말투였다.
‘아니, 갑자기 갱년기 증세인가?’
뜬금없는 아내의 말에 내가 장난스럽게 응대했다.
“미남인 내게 완전히 반해서 사는 거 아니었나?”
아내가 어이없어하면서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처제가 그랬잖아. 대학시절 너무 도도하게 굴어 주변 남학생들에게 ‘얼음공주’였다고. 그 콧대 높던 얼음공주님이 나를 선택했을 때는 무슨 다른 이유가 있었겠어?”
나의 억지소리에 아내는 별말 없이 차만 마셨다. 마치 나를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혼잣말을 하듯이 말을 했다.
“이기석 선생님의 요청에 대한 인사치레로 한가람 커피숍에 갔었어. 거기에서 자기를 처음 만났을 때 석교고등학교 교무실에서 아주 잠깐 스쳤던 사람이란 걸 알았어.”
아내가 진지해지자 나도 장난기를 거두었다. 아내가 마치 자신의 숨은 감정을 내게 읽어 주는 것 같았다.
“커피숍에 앉아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밖으로 나왔을 때 좀 놀랐어. 작은 키의 패션 테러리스트가 내 앞에 서 있는 거야. 옷과 전혀 안 어울리는 할아버지 스타일 구두를 신고 있어서 모양새가 우스웠지. 하지만 ‘내가 이 남자하고 연애를 하는 것도 아니고, 함께 살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야.’라고 생각했지.”
문득 빈털터리에 그런 못난이였던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아내가 어떻게 살았을지 궁금해졌다.
“그날 나를 안 만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에서 가정법은 무의미하지만, 상상은 대화에 재미를 더하는 법이다.
“스물세 살의 어린 교사였지만, 주변 사람들이 ‘누구를 소개할 테니 만나 달라.’며 도무지 나를 편하게 가만 두질 않았어. 문득 결혼할 때가 된 것 같다는 느낌에 조금 긴장하고 지내던 때였지. 그 무렵에 자기를 만난 거야.”
그 시절 교통 사정은 지금과 달랐다. 서울과 진도 사이는 너무 멀었다. 자주 만나기 어려웠다. 나는 매주 한두 통의 편지를 썼고, 그녀는 가끔 답신을 보내주었다. 열정을 담은 것도 아니고, 비밀스러운 내용도 없는, 그저 그런 평범한 편지였다. 일기를 쓰듯 편지에 평범한 일상을 적어 보냈고, 그녀 역시 그러하였다.
솔직히 여러 면에서 그녀는 내게 과분한 존재였다. 내 편지에 답신을 해 주고, 데이트 요청을 수락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그녀가 내 곁을 떠난다면 어떻게 할까? 언제든지 기꺼이 보내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지냈다. 감히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낼 수도 없었다. 그런데 그녀는 왜 나를 계속 만나주었을까?
“그럼 왜 나를 버리지 않고 계속 만나주었어?”
“자기를 만나면 그냥 편했어. 괜찮은 사람 같았어.”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한 남자를 배우자로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좋은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은 다르지 않아?”
내가 제법 그럴듯한 말로 ‘좋은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은 다르지 않느냐고 물었다. 또한 내가 그녀의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이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아내는 대답 대신 자기 말을 계속하였다.
“내가 자기 곁을 떠나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어.”
나도 모르게 예민해졌다. 귀를 쫑긋 세웠다. 아내가 혼잣말을 하듯 무심하게 말했다.
“자기는 어디 갈 곳이 없는 사람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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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장애로 여겼을 때
너는 짐이었다.
나의 삶으로 받아들였을 때
내가 사는 이유가 되었다.
‘그래서’ 사랑이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