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철이, 편히 쉬시게.
지난해 여름, 국립 5.18 민주묘지에 갔다. 철이를 만나고 싶었다. 무덤은 말이 없었다.
‘철이, 편히 쉬시게.’
함께 가자고 약속했던 추월산 산행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 되었다.
그에게는 아내와 두 아들이 있다. 그는 오래도록 가족들과 갈등 관계에 있었다. 사연은 다양하고 이유는 복잡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단순했다. 다른 사람의 삶에는 적극 참여하면서도 상대적으로 가족에게는 소홀했기 때문이다. 그가 만나는 타인은 권력에 의해 억압받는 사람이거나 사회 구조의 질곡에 허덕이는 사람이었다. 그는 사(私)보다 공(公)을 더 중시했다.
2015년 봄 어느 날, 그가 내게 전화를 했다.
“종구, 나 서울 왔네.”
“그래? 무슨 일인가?”
“세월호의 진실을 정부가 힘으로 감추려 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없네.”
내가 내 앞가림에 분주할 때, 그는 ‘울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 옆에 서 있었다. 그들과 함께 울었다. “시체 장사 그만하라!”라고 악을 쓰는 세력에 맞섰다. “짐승이 아닌 사람이 되자!”라고 외쳤다. 그 시각에 그는 자신의 가족 옆에 있을 수 없었다. 내게 “늘 가족에게 미안해.”라고 말했다.
그는 주변 사람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지 못해 늘 미안한 사람이었다. 공사(公私) 사이의 균형 잡기에 실패한 사람이었다. 공사의 균형? 그에게는 말장난이었다. 사(私)를 버리지 않으면서 공(公)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어떻게? 그는 그러기 어려운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일상에서 부적응한 사람이었다. 세속적인 적응은 사치였다.
그는 마음 편할 날이 없는 사람이었다. 거리에서 아스팔트 위에서 시위하면서, 감옥에서 고문당하면서, 몸도 빠르게 쇠락해 갔다. 쉬어야 할 시기에도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빈자리를 채웠다. 그는 기꺼이 고통받기로 결단한 사람이었다.
그를 잘 아는 법선 스님은 추도문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의행(정철의 법명) 당신은 또 지옥으로 가실 겁니다. 당신 성정(性情)상 지옥이 텅 비어서 모든 중생이 평안해질 때까지, 당신은 지옥을 마다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 누가 중생을 위한 끝없는 연민을 가진 당신을 말릴 수 있겠습니까?”
그는 세상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살았다. 온전히 이해받기 어려웠다. 때로는 자신이 고통받았고, 때로는 가족들에게 고통을 주었다. 아내와 두 아들은 아버지를 한편으로는 이해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불편해하였다. 일상적인 의미에서 아버지와 남편의 역할을 가족들의 기대에 부응할 만큼 하지 못하는 그였다. 아니, 할 수 없었던 그였다. 가족들이 불만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다행히 그와 가족 사이의 갈등이 사라질 극적인 화해의 기회가 왔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였다. 그의 위로를 받고 슬픔과 고통에서 다시 일어선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다. 그가 세상의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준 선물에 대해 고마움을 전하려는 발길이 이어졌다. 가족들은 병실과 장례식장에서, 남편이나 아버지로서의 정철이 아닌, ‘인간 정철’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 큰 아들은 추도사에서 아버지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지난 시간들을 진심으로 아파하였다.
2018년 2월 24일 故정의행 법사(본명 정철, 1958~2016)의 추모비 제막식이 열렸다. 추모비는 평소 그가 신행활동을 하던 문빈정사 앞마당에 조성됐다.
산속에 있으면 산의 크기를 가늠하기 어렵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허물없이 지낸 사이였기에 미처 그의 크기를 짐작하지 못했다. 그의 담대함과 용기는 내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가시밭길 같은 사랑의 길을 걸었다. 높은 뜻을 위해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는 참된 자유인이었다.
한 사람의 생애는 그가 죽은 뒤에 비로소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고 평가할 수 있다. 그는 전생(前生)에 틀림없이 내세(來世)에서 수행자(修行者)의 길을 걷겠다고 굳게 서원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기 위해, 그 수행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우리 곁에 잠시 왔다 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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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기울여 듣자.
호소에 응답하자.
억압하는 자와 고통을 호소하는 자
나는 누구 곁에 서 있는가
?
진실을 숨기려는 자와 밝히려는 자
나는 누구 옆에 서 있는가?
“사람의 고통 앞에서 중립은 없다.”
프란체스코 교황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한 번에 한 사람만 사랑한다.”
마더 테레사 수녀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한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온 세상을 사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