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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걍보리 Apr 27. 2023

너는 내 세상이다

39. 따뜻한 마음은 사람 그릇을 키운다.

  나는 서울 동쪽 끝인 강동구에 살면서 서쪽 끝인 강서구에 있는 치과에서 임플란트를 하였다. 거기에 잘 아는 의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기적으로 이 상태를 살피기 위해 병원에 다니는데, 이동 수단으로 지하철 9호선을 이용하였다. 이동하는데 50분 정도 걸렸다. 

  2022년 10월 29일 오후, 지하철을 타고 졸면서 이동 중이었다. 석촌역에서 젊은이 한 무리가 열차를 탔다. 그들은 열차를 탈 때부터 시끄럽게 떠들었다. 그것도 바로 내 근처에서. 남자들의 저음은 지하철 소음에 묻혔지만, 여자들의 깔깔대는 고음은 유난히 도드라졌다. 소음이 지속되자 거슬렸다. 

  ‘에이, 조금 조용히 갈 수 없나. 되게 시끄럽네.’ 

  눈을 감고 있었지만 들뜬 분위기를 짐작하게 하는 목소리들이었다. 궁금해졌다. 

  ‘무슨 일이지?’ 

  실눈을 뜨고 이마를 찡그리며 그들을 쳐다보았다. 

  ‘어라, 웬 가면들?’ 

  젊은이들은 다양한 복장에 이국적인 가면을 쓰고 있었다. 손에는 알록달록한 풍선과 불빛봉을 비롯하여 이런저런 장난감들을 들고 있었다. 내게는 익숙하지도 편하지도 않은 것들이었다.

  ‘어디서 축제를 하나? 그나저나 좀 조용히 가지. 떠들기는.’ 

  그들의 빠르고 웃음기 가득한 말투는 싱싱하다 못해 뜨거운 열기가 되어 내게로 팽창해 왔다. 생명의 불꽃이 시들어가는 구닥다리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라고, 이 세상의 진정한 주인공은 자신들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오늘밤에는 맘껏 쾌락의 시간을 즐길 거라고 공공연히 자랑하고 싶어 하고, 티를 내는 것 같아 눈꼴이 시렸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들이 떠드는 소리가 듣기 싫고, 하고 있는 꼬락서니가 보기 싫었다. 다행히 그들은 내가 내리기 전에 어디쯤에서 썰물 빠지듯 사라졌다. 지하철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이제 좀 편하게 졸 수 있겠군. 저희들 축제지, 우리 모두의 축제는 아니지 않아? 시끄럽게 굴기는.’

  바로 그날 저녁, 치료를 마치고 귀가해서 일찍 잠이 들었다. 임플란트를 하고, 마치 큰일을 치른 것처럼 엄살을 부린 것이다. 

  한밤중에 아내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자기야,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는 속보가 뜨네.”

  “무슨 일로?” 

  “이태원 할로우인 축제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젯밤에 우리 딸도 어디 축제에 간다고 했는데.’, ‘무슨 축제인지 묻지도 않았는데.’, ‘요즘 축제가 좀 많아? 내가 어떻게 그걸 다 알 수 있겠어?’ 

  아내에게 급히 물었다. 

  “딸은?” 

  “응, 늦게 귀가해서 제 방에서 자고 있어.”

  마음이 놓였다. 문득 지하철에서 만났던 젊은 친구들이 생각났다.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혹시 사고를 당한 친구는 없었을까?’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만약 그 자리에 우리 딸이 있었다면?’ 

  그리고 명랑하게 웃던 젊은 친구들을 잠시나마 미워했던 것을 후회했다. 

  ‘제발, 그들이 살아있기를! 아무도 다치지 않았기를. 그리고 지하철에서 우연히 내 곁을 지나가기를!’ 

  그들이 지난번보다 더 시끄럽게 떠들어도 미워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그 젊고 발랄한 소리가 반가울 것 같았다.  

     

  싫어하거나 미워했던 사람을 어떤 계기를 통해 다르게 본 경험이 있는가? 미워할 때보다 연민의 눈을 보냈을 때 자신의 마음이 편해짐을 느껴 본 적이 있는가? 따뜻한 마음은 사람의 그릇을 키워준다.

  싫어하는 사람을 보면 단점이 더 잘 보인다. 반면에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장점이 더 많이 보인다. 대개 사람들은 상대의 단점이나 약점을 찾는 데 더 익숙하다. 위험을 피하려는 인간의 속성 때문이다. 자연히 흠을 잡아 비난하기는 쉽지만 칭찬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워하면 접촉이 적어 상대방의 겉모습만 볼 가능성이 높다. 제대로 알기 어려운 것이다. 그만큼 오해하기도 쉽다. 이와 달리 상대방을 받아들이려고 마음먹으면 그의 속사정을 이해하게 된다. 상대방을 존중해야 비로소 바르게 알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를 온전히 알게 되면, 설령 그의 단점이 불편할지라도 싫은 감정보다 연민의 감정이 우세해진다. 상대의 부족을 수용하면서 끌어안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포용은 상대에게도 좋은 일이지만, 포용하는 당사자에게는 더 좋은 일이다. 관용과 용서에는 행복한 세상을 여는 힘이 있다. 

     

**********     


사람을 바르게 아는 하나의 길은 

사랑이다.    

 

사랑하기 이전의 그와 

사랑한 이후의 그는 완전히 다르다.  

   

그가 달라진 것이 아니다.     

그를 대하는 

나의 눈과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그를 향한 사랑 속에서 

나는 다른 존재로 변한다.  

   

사랑을 통해 그와 함께 

다른 세상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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