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누구나 나그네다.
소설가 김훈 작가가 말하였다.
“지금 선 곳을 고향으로 만들지 못한 자는 영원히 나그네로 살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내가 사는 곳을 고향으로 만드는 데 실패했다. 내가 살았던 곳은 열 곳도 넘는다. 그렇지만 정작 돌아가고 싶은 곳은 없다. 아직도 나그네인 것이다.
가장 친숙했던 곳을 고향이라고 한다면, 나는 고향을 잃었다. 내게 친숙했던 노안 금성산 중턱은 숲이 되어 버렸다. 임도가 생기고 옛길은 사라졌다. 그 산을 떠난 이후 이곳저곳 떠돌며 살았다. 사는 곳이 다양했기에 흩어진 기억만을 갖고 있다. 추억이 응집된 곳이 없다. 농부로 살지 않았기에, 또 땅을 소유해 본 적도 없기에, 희로애락을 차곡차곡 쌓아놓은 곳도 없다. 어느 곳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긴 세월을 떠돌며 살았다.
어디에 고향을 만들어야 할까? 언제 고향을 만들 수 있을까?
어린 시절 한 때 살았던 법성에 가 보았다. 놀랍게도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낯선 곳이 되어 있었다. 아는 사람을 만난 뒤에야 겨우 익숙한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곳을 다시 돌아갈 고향으로 여길 수 없었다. 가슴이 허전하였다.
나는 특정한 장소를 고향으로 만들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지금 서 있는 곳도 진정한 고향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고향은 땅이 아닌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도 친숙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불안한 떠돌이로 살지 않으려면 내 세상을 찾아온 인연을 소중하게 가꾸어야 한다. 내가 뿌리를 내릴 곳은 사람이다. 어떤 인연이 나의 고향이 되려면, 나도 그의 고향이 되어야 한다. 고향은 홀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너와 내가 함께 만드는 것이다. 서로 사랑함으로써 둘은 ‘마음의 고향’을 만들 수 있다. 그 세상은 동시에 입장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세상이다.
내 세상을 찾아온 인연을 아끼고 사랑함으로써 비로소 고향이라는 안식처가 열리는 것이다. 나는 김훈 작가의 말을 이렇게 바꿔 말하고 싶다.
“지금 곁에 선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영원히 나그네로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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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아닌 자 누구인가?
누구나 나그네다.
고향은 찾는 것이 아니다.
만드는 것이다.
사랑하고 사랑하면서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