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너는 6대 종손이다.
무덤은 말이 없었다.
스무 살이던 해 추석날. 사촌 육촌 형제들, 친족 어른들과 함께 묘제(墓祭)에 올릴 제사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처음으로 선산(先山)을 찾아갔다. 화천리 집에서 월산리 선산까지 한 시간 넘게 걸어서 갔다. 가깝지 않은 곳이었다. 하지만 우스갯소리를 잘하는 당숙들과 함께 걷는 길은 즐거웠다.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상쾌하였다. 부드러운 황톳길은 걷기에 편했다. 길가의 늙은 소나무들이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운치가 있었다.
어머니는 어린 나에게 가끔 이런 말을 하였다.
“너는 6대 종손(宗孫)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말속에는 내가 지고 가야 할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다. 비록 어렸지만 막연한 자긍심과 부담감을 동시에 느꼈다.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나를 통해 시댁에 뿌리를 내리고 싶었던 것 같다. 자신이 자란 친정을 떠나 남편이 사는 곳으로 시집을 온 여인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생각이 아니었을까? 친할아버지가 금성산 높은 곳까지 나를 데리러 온 것도, 초등학교에 재등록을 해서 다시 학교에 다니게 한 것도, 내가 종손이라는 사실과 어떤 관련이 있지 않았을까? 그 점에서는 종손이라는 것은 나를 지켜주는 상당히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내가 직접 가보지 못했을 뿐, 할아버지를 비롯한 여러 어른들의 이야기를 통해 집안 선산이 월산리에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가보지 않은 공간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남을 통해 종종 전해 들었으면서도 미처 못 가본 곳은 상상력을 더 키우는 법이다.
선산에 가기 전에 나는 엉뚱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거기에 가면 이 집안 후손으로서 또는 종손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상징물이나 감동적인 그 무언가가 나타나지 않을까?
그러나 그것은 허망한 환상이었다. 윗대에서 아랫대로 내려오는 무덤들이 순서대로 모여 있을 뿐.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없었다. 선대(先代)의 어떤 표정도 상징도 볼 수 없었다. 혈연적 부계 조상들이 묻혀 있는 무덤이 바로 거기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살아 있지 않는 조상은 더 이상 조상이 아니다.’
젊은 나이였지만 마음에 살아 있지 않은 조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게다가 마음으로 따르지 않는 조상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무엇일까? 어려움 속에서도 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사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닐까? 세상살이가 쉽지 않지만,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는 확신을 갖게 해 주는 것이 아닐까? 마찬가지로 조상이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좋은 선물은 ‘내 조상님이 이렇게 훌륭하게 사셨다.’는 자부심이 아닐까?
나는 아버지로부터 좋은 정신적 유산을 받지 못했다. 어려서는 아버지가 없이 자랐다. 젊어서는 아버지를 미워하며 살았다. 결혼 뒤에는 아버지가 짐스럽기만 했다. 아버지는 내게 어른으로 다가오지 못했다. 차라리 아버지가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살았다. 그런 아버지로부터 어떻게 멋진 정신적 유산을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이것은 우리의 가훈이니 늘 마음에 새겨라.’라는 말조차 들어 본 적이 없다. 설령 어떤 그럴듯한 말을 했을지라도 비웃었을 것이다. 그는 그럴듯하게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어머니는 선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강인한 생존의지가 부족하여 남편을 자기 곁에 두지 못했고, 시부모에게 휘둘려 고통스럽게 살았다. 어머니는 짧은 삶을 통해 ‘사는 것은 슬프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일찍 핀 꽃이 꽃샘추위에 시들 듯 하릴없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를 통하여 약한 존재에 대한 연민을 배웠다. 어머니는 혐오나 냉소 증오를 부르는 강한 삶보다 비록 약할지라도 선한 삶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아버지에 비하면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지내는 시간은 제법 길었다. 한때 조부모님은 장차 내가 결혼을 하면 조손봉양을 받으면서 살기를 희망하였다. 내가 독립할 무렵이 되자 그런 기대를 담은 말을 종종 하였다. 서울의 큰아들 집에서도 살아보고, 목포의 막내아들 집에서도 살아보았지만, 노후(老後)에 그들과 함께 지낼 수 없다고 판단을 했던 것 같다. 나는 할아버지의 그런 기대가 섞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였다.
선산을 찾던 그날, 사람들이 선산 증조부모 산소 아래에 두 개의 작은 가묘(假墓)를 만들었다. 장차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묻힐 무덤자리를 미리 지정한 것이다. 할아버지는 내게 각각의 무덤이 누구 무덤인지를 하나하나 가르쳐 주면서 내가 종손임을 거듭 강조하였다. 할아버지의 말속에 담긴 뜻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내 마음속 깊은 감정을 알 길이 없었을 것이다. 할아버지의 기대와 내 생각은 서로 달랐던 것이다. 훗날 할아버지는 그곳에 묻히지 못했다. 세상이 변한 것이다.
그날 이후 내 마음속에서는 아버지나 조부모와 더 큰 거리감이 생겼다. 나는 혈연의 틀에서 좀 더 자유로워졌다. 혈연에 매달릴 이유가 없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20여 년 동안 제사를 지내면서 종손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혈연관계에 높은 가치를 둔 것은 아니었다. 조상에 대한 깊은 존경심에서 한 일도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가족 사이의 화합을 목적으로 제사를 지냈었다.
시대가 변한 탓일까? 차츰 제사에 참여하는 사람이 줄어들었다. 언제부터인가 제사가 더 이상 가족 화합의 장 역할을 못하였다. 환갑이 지난 뒤 나는 의미 없는 제사 지내기를 그만두었다.
“너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라.”
이 말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람에게는 진실이 아니다. 사람은 흙이 아니다. 무덤은 혈연적 부모 자식 관계를 증명할 뿐, 정신적 부모 자식 관계는 보여주지 못한다.
사람은 이야기다. 이야기는 힘이 세다. 만약 조상의 어떤 이야기가 내게 감동을 주었다면 선산 무덤에 대한 나의 느낌은 다르지 않았을까? 무덤을 보면서 그 조상에 대하여 더 자주 더 많이 생각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부계 조상에 대한 깊은 존경심 덕분에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더 적었을 수도 있다.
가슴에 남는 이야기가 없는 무덤은 그저 흙일 뿐이고 무의미 자체다. 어른들은 무덤에 절을 하라고 강요할 것이 아니다. 그런 절은 말 그대로 형식일 뿐이다. 마음이 따르지 않는 데 절만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무덤에 묻힌 사람의 이야기를, 가능하면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무덤의 흙이 아닌 조상의 사랑에 절을 하게 해야 한다. 아버지나 조부모님은 내 마음의 절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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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흙에서 왔다 흙으로 돌아간다.”
무덤은 이 말을 증명한다.
그러면 사람이 흙일까?
흙을 보면 사람이 보일까?
아니다.
사람은 울고 웃는데 흙은 울고 웃지 않는다.
흙에는 표정이 없다.
흙에서는 내가 사는 이유를 찾을 수 없다.
흙은 무의미 자체다.
사람이 흙이라면 삶도 무의미 자체다.
사람은 흙이 아니다.
몸도 흙이 아니다.
사람은‘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