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 새끼 종자가 더러워서
“이 새끼 종자가 더러워서.”
태원 큰외삼촌은 거칠게 욕을 하면서 내 이마에 딱밤을 아프게 놓았다. 눈물이 핑 돌고 이마가 빨갛게 부었다. 늦잠을 잔 뒤 세수를 하지 않고 밥을 먹으려 하는 어린 나를 혼낸 것이다. 나는 훌쩍이면서 억지로 세수를 했다. 얼굴을 닦고 밥상에 앉았지만 밥이 목에 걸려 잘 넘어가지 않았다.
누나와 조카를 보살피지 않은 매형과 호되게 시집살이는 시킨 사돈에 대한 분노가 섞여 있다는 것을 그의 말과 표정에서 느낄 수 있었다. 걸핏하면 그는 어린 나를 화풀이 대상으로 삼았다. 너무 억울했다. 그런 가정에서 태어난 것이 내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기분이 나쁘면 종자(種子)를 들먹이던 외삼촌은 외가 사람들의 덕스러움과 친가 사람들의 나쁜 속성이 모두 종자에서 유래한다고 말하였다. 외가 식구들은 대체로 친절하였다. 누구에게나 베푸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큰외삼촌은 좋게 말하면 무인 기질을, 나쁘게 말하면 깡패 같은 면을 지닌 사내였다. 친절하게 대하다가도 자기 뜻에 어긋나는 태도를 보이면 쉽게 거칠어졌다. 좋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였다. 고맙지만 가까이하기 싫었다.
금성산에서 살던 기간뿐만 아니었다. 그 후로도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종자론을 들먹였다. 자신의 누나 곧 나의 어머니의 죽음이 그의 생각을 더욱 굳게 만든 것은 아닐까? 어쨌든 그는 나를 더러운 종자의 후손이라고 말하곤 하였다. 나의 근본적인 인간성을 부정적인 것으로 규정지은 것이다. 모욕적이기도 하고 절망스럽기도 하였다. 그의 말대로 내 종자가 정말 더럽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지? 평생 나쁜 인간으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손가락질받고 천대받으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였다.
하지만 내 종자를 비난하는 외삼촌에게도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쁜 점도 많았다. 그의 거친 욕설과 공격적인 태도는 무섭고 불편하였다. 변덕스러운 기분은 종잡기 힘들었다. 여자를 가볍게 대하는 그의 언행은 천박하기조차 했다. 그와 달리 어머니는 누구를 욕하거나 거칠게 말하지 않았다. 착하고 순한 성품을 가진 어머니와 호기로운 외삼촌은 얼굴만 닮았을 뿐 성품이 완전히 달랐다. 같은 외조부모 아래서 태어난 어머니와 외삼촌이 어쩌면 저렇게 다를까? 비록 어렸지만 그의 종자론이 의심스럽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어쨌든 그의 종자론에 매몰되지 않았다.
어느 날 한 친구가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의 딸이 학교에서 친구들을 때리고 돈을 빼앗으며 자주 말썽을 일으켰다. 그는 딸의 담임선생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학교에 다녀왔다. 몹시 창피하고 기분이 나빠 견딜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함께 이야기할 사람을 찾다가 나를 찾아온 것이다.
“앞으로 딸을 어떻게 교육시켜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가 걱정하였다. 그가 평소에 딸과 어떻게 지내는지, 어떻게 교육시키고 있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궁금하였다. 그는 내게 이런저런 말을 해 주었다.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보았다. 친구보다는 그의 아내가 더 바람직한 방식으로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여러 이야기 끝에 내가 제안을 하였다.
“네 아내의 의견을 존중하고, 원칙을 세운 뒤, 부모가 한 목소리로 교육하면 어떨까?”
하지만 그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자기 방식대로 키우겠다고 단호하게 말하였다.
‘아니, 그러면 그렇게 할 것이지, 왜 나를 찾아왔을까?’
의아해하면서도 그의 말을 계속 들어주었다. 그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호랑이 새끼는 호랑이로 자라고, 개새끼는 개가 된다. 설마 내 새끼가 개새끼가 될까?”
자신의 종자는 좋은 종자라는 확신이 담긴 말이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호랑이 새끼는 호랑이로 자라고, 개새끼는 개로 자라지. 그런데 사람은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호랑이도 되고 개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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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을 통하여 먼 조상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몸과 마음은 수십 억 년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다.
삶은 탄생과 소멸 사이의 어떤 것이다.
생물로서의 나는 수정란에서 시작하여 심정지(心停止)로 끝난다.
그러나 생물학적 설명에는
개체로서의 구체적인 ‘나’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나’를
유전자만으로 설명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
나의 기반에는 유전자가 있지만
나는 ‘유전자’가 아니다.
유전자 너머의 그 무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