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세상으로의 입장과 퇴장
“너희들은 지금부터 개가 된다. 이 새끼들, 알았나?”
신병 훈련 조교인 강하사의 목에서 나오는 쇳소리가 사나웠다. 진돗개의 눈처럼 가느다랗게 쭉 찢어진 눈은 매서웠다. 어떻게 해서든지 조금이라도 기합을 덜 받고 싶은 훈련병들은 온 힘을 다해 “예!”하고 고함으로 답하였다. 훈련장 입구에서부터 앉았다 서고, 기고 뒹굴기를 거듭하였다.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하라는 대로 하지 않거나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군홧발로 차고 몽둥이로 때렸다. 마른땅에서 박박 길 때면 거친 숨을 따라 황토 먼지가 힘과 코로 들어왔다. 목이 칼칼해지면 침과 가래를 내뱉었다. 괴롭힐 목적으로 온갖 트집을 잡았다. 두려움을 심어주려는 의도가 너무도 명백했다.
“까라면 까고, 심으라면 심어라.”
강하사가 상스러운 욕설을 섞어가며 으르렁댔다. 그 말을 수백 번도 더 들었다. 때로는 낄낄댔다. 이른바 군기를 잡았다. 종잡기 어려운 미친개처럼 굴었다. 우리에게 개가 되라고 했다. 기분이 내키는 대로 한다면 역겨운 그의 입을 주먹으로 날려버리고 싶었다.
“유신의 군인이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개가 되는 것이다. 생각이 있으면 고단하다. 생각이 없으면 편하다. 개가 되는 것이 빠를수록 좋다.”
빨리 개가 되라고 성화였다.
“사회물이 쏙 빠질 때까지 반복해라. ‘어서 개가 되자, 어서 개가 되자.’ 이 새끼들, 알았나?”
사회물과 군대물이 어떻게 다른지를 말해주지도 않고 무조건 사회물을 빼라고 윽박질렀다. 훈련병들이 큰소리로 그의 말을 반복했다.
“개가 되자. 개가 되자. 개가 되자.”
강하사의 목이 찢어져 나가는 듯한 소리가 원산폭격 자세의 틈새로 스며들었다. “왜?”라는 물음표에 몸이 흔들릴 때면 가차 없이 몽둥이가 날아들었다. 그럴 때마다 혼잣말을 하였다.
‘빨리 개가 되어야 하는데, 어서 빨리!’
45년 전 유신군대로의 ‘입장’은 쉽지 않았다. 잠시 짬이 날 때는 훈련병들끼리 담배를 빨면서 투덜거렸다.
“다음에 딸 낳으면 잘 기르고, 아들 낳으면 목을 밟아 죽여야지.”
군대 시절이 지나갔다. 군대사회에서 퇴장하였다. 나는 군대사회에 입장하면서 개로 살다가, 퇴장하면서 개의 탈을 벗었다.
군대사회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내가 입장하고 퇴장하는 모든 사회는 내게 특정 역할을 강요하였다. 나는 쉽게 적응하지 못하였다. 무능하였다. 자주 부딪쳤다. 반항하다 깨지고 저항하다 밀려났다. 말랑말랑한 내 살 밑에 숨어있는, 내가 알 수 없는 딱딱한 뼈가 나를 어쩌지 못하게 했다. 쉽게 부드러워지지 않는 그 뼈 때문에 오래도록 아웃사이더로 살아야 했다.
사람은 태어날 때 사회인으로 태어난다. 자동 입장이다. 현실적으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입장과 퇴장이 비교적 자유로운 사회도 있지만, 개인의 삶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는 가족이나 국가는 운명적이다. 어떤 사회집단에도 소속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대개 가입자가 지켜야 할 기준과 원칙은 이미 정해져 있고 그대로 주어진다. 개인은 그것에 적응하거나 부적응할 뿐이다.
나는 내가 속한 가족사회가 싫었다. 떠나고 싶었다. 22세 때는 성(姓)을 바꾸려고 하였다. 동사무소(주민 센터)를 찾아가서 성을 바꾸는 절차를 물었다. 그러나 국가는 성을 바꾸려는 내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빌어먹을!’ 종손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짜증이 났었다.
최근에 누군가로부터 이제는 종손도 성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바꿀 필요가 없어졌다. 이미 성(姓)의 틀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성은 도서 목록 번호처럼 하나의 부호일 뿐이다. 성을 통하여 드러낼만한 나의 특성은 없다. 단 하나도 없다. 성뿐만이 아니다. 심지어는 내 이름도 아무런 특성을 드러내지 않는다.
선대의 이름이나 성에 기대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는 낡은 사람이다. 그의 혈연적 조상이 조선 최고의 유학자였다고 하여 그가 유학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그가 자랑하는 조선의 유학자와 그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만약 내가 그보다 더 그 유학자를 받들어 모시고 정신적 아버지로 삼는다면, 그보다는 내가 더 그 유학자와 가깝다. 나는 그 유학자의 정신적 자식일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마음의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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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다.
가족이 모여 축하한다.
세상으로 입장한다.
학교에서 또래들을 만난다.
오가는 길에서 이웃들을 만난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간다.
때가 되면 사회에서 물러난다.
세상에서 퇴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