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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걍보리 May 02. 2023

너는 내 세상이다

45. 잘못된 기분은 없다.

  김 선생의 별명은 천사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부탁을 거절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학생들에게도 친절하였다. 

  김 선생은 어머니와 둘이 살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집에 들어가면 가슴이 답답하였다. 환기가 잘 안 되어 그런가?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보아도 별 차이가 없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집에 들어가는 것이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역시 모를 일이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화장실에서 넘어졌다. 고관절이 부러지는 큰 부상을 당하였다. 다친 어머니를 급히 병원에 입원시켰다. 뒤늦게 다른 형제들이 병원에 와서 소동을 피웠다. 김 선생은 그때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아프다고 고함을 치는데도 저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어요.”

  “그래도 서둘러 어머니를 병원으로 모시고 갔잖아요?”

  “네, 그랬지요. 그런데 저는 마치 기계인간이 된 것 같았어요. 병원에 온 언니나 동생은 엄마가 아프다고 외마디 소리를 지를 때면 눈물을 흘리더군요. 나는 눈물이 안 났어요.”

  김 선생은 어머니에 대한 자신의 냉정한 태도에 대해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감정 표현에 개인차가 있지 않나요? 일시적으로 조금 둔감해질 수도 있고.” 

  김 선생인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평소에 눈물이 많아요. 마음도 약하고요. 제가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상대 마음을 상할까 봐 걱정돼서 그러는 거예요.”

  “그날 자신의 모습이 이해가 안 되었군요.”

  김 선생의 눈가에 눈물이 비쳤다.

  “어머니에게 차가운 저를 용납하기 어려웠어요. 어머니에게 너무 미안했어요. 평생 나를 위해 사신 분인데.” 

  김 선생은 학교에서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집에서 어머니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집에서도 어머니가 무엇을 요구하면 거절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지시하는 자요, 딸은 순종하는 효녀였다. 그 관계는 사십 년이 넘게 유지되었다.   

  “어머니의 요구를 거절해 보신 적은 없으세요?”

  “아니요. 거절한 경우도 있었지요. 그래도 어머니가 화를 내면 어쩔 수 없었어요. 그냥 하라는 대로 했어요.”

  “어머니가 화를 내면 싫은 것도 억지로 하셨네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물었다.

  “‘이것은 싫으니 안 하겠어요.’라고 고집을 부려본 적은 없으세요?”

  “왜 없었겠어요? 그런 적이 있었지요. 언젠가 정말 싫은 일을 시켜서 완강하게 거절했어요. 정말 싫었거든요. 그랬더니 어머니가 끙끙 앓으셨어요. 분노를 참지 못하셨죠. 결국은 제가 잘못했다고 빌었어요. 그 뒤로는.......”

  잠시 동안 대화를 멈추었다. 함께 차를 마셨다. 내가 슬그머니 말을 흘렸다.

  “어머니를 미워하시지요?”

  김 선생이 눈을 크게 떴다. 흠칫 놀랐다.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자기 같은 효녀가 ‘어머니를 미워한다.’는 말을 듣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을까? 그런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지 않았을까? 김 선생의 대답을 듣지 않고 내가 말을 이었다.  

  “어머니의 기분은 보살피면서, 왜 자신의 기분은 보살피지 않으세요?”

  김 선생은 자기 어머니가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딸인 자기가 화를 내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을 것이다. 내가 말을 덧붙였다.

  “미워하고 싫어하는 마음은 비정상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죠. 잘못된 기분은 없어요.”

  잘못된 기분이 없다고? 화를 내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닌가? 거절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닌가? 김 선생이 조금 혼돈에 빠진 것 같았다. 김 선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화를 내서도 안 되고, 거절을 해서도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잘못된 행위나 견해는 있어도, 잘못된 기분은 없다. 자신의 기분을 잘 살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 기분을 알아차리고 휘둘리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에 숨어 있는 그림자를 보는 것은 두렵다. 그래도 그 그림자를 살펴보고, 그것을 자신의 모습으로 인정하지 않고서는 성장할 수 없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몇 차례 더 대화를 나누었다. 

  “선생님, 저 이사했어요.”

  몇 달 뒤 김 선생은 어머니와 떨어져 살기 위해 분가(分家)를 했다고 내게 귀띔을 했다.

      

**********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자

남을 사랑할 수 없다.  

   

자신의 나약함과 어두움을 수용하지 못하는 자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기 어렵다.  

   

자신의 그림자를 인정하지 못하는 자 

남을 사랑하기 어렵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조심하라.

자신을 파괴하듯 세상을 파괴할 수 있다.   

  

자신에 대한 사랑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예의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다.    

 

이기적인 사람은 

주는 기쁨을 모르는 사람이다.     


손에 쥔 소유물에 매여

외롭고 추운 세상을 사는 사람이다.

     

오그려 쥔 손을 펴는 편안함을 

맛보지 못한 채 사는 사람이다.  

   

소유에 대한 탐욕에서 해방된

자유인만이 사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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