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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걍보리 May 04. 2023

너는 내 세상이다

49. 땀의 힘

  박 선생의 탁구 실력은 대단하였다. 21점을 먼저 올린 사람이 이기는 시합에서 맞설 상대가 없었다. 실력이 낮은 나와 겨룰 때 그는 10점의 핸디캡을 받았다. 0 : 10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에게 나 같은 사람은 식은 죽이었다. 대개 21 : 15 정도에서 경기가 끝났다. 내가 5점을 올리는 동안 그는 0점에서 시작하여 21점에 먼저 도달해 버렸다. 그가 실수하기를 바라면서 온갖 요령을 부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는 제법 실력이 뛰어난 다른 사람들에게도 5 ~ 10점 정도를 접어주었다. 어떤 때는 편을 갈라서 시합을 하였는데 그때마다 박 선생의 핸디캡 조정이 늘 논란거리였다. 핸디캡 없이 맞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학기 중간에 한 젊은 체육 선생이 전입해 왔다. 사람이 싹싹하고 붙임성이 있어 여러 사람과 금방 친해졌다. 어느 날 회식이 끝나고 젊은 교사들이 탁구장에 모였다. 그날도 역시 박 선생의 독무대였다.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체육 선생은 다른 사람의 경기를 구경만 하였다. 

  그때 누군가가 박 선생과 체육 선생이 탁구 시합을 한 번 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였다. 모두들 동의의 표시로 함성을 질렀다. 

  “좋아, 좋아. 두 사람이 맞붙으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 

  체육 선생은 다음에 하겠다고 사양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달궈진 열기에 떠밀려 마지못해 라켓을 잡았다.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수줍게 말하였다.

  “몇 점을 접을까요?”

  자신에게 핸디캡을 달라는 그의 말에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다. 그가 박 선생 실력을 제대로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여겼다. 박 선생 역시 굳이 접어주지 않아도 된다는 표정이었다. 그의 제안을 쉽게 안 받아들이자, 그가 접어줄 점수를 먼저 말하였다.

   “0 : 15부터 시작하면 어떨까요? 대신에 제가 서브권을 먼저 갖습니다.”

  무적의 박 선생에게 무려 15점을 접어주고 경기를 하겠다고? 다들 크게 웃었다. 하지만 체육 선생의 표정은 진지하였다. 결국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경기를 시작하였다. 핸디캡이 너무 커서 경기가 싱겁게 끝날 것 같았다. 

  그가 탁구대의 왼쪽 모서리에 섰다. 왼쪽 무릎을 가볍게 구부리고 오른발을 뒤로 뺀 자세에서 포핸드 서비스를 하였다. 체육 선생 측 탁구대의 왼쪽 모서리를 출발한 작은 공은 코트의 중앙을 지나 크게 반원을 그리면서 반대편 탁구대의 오른쪽 모서리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포복을 하듯 낮게 깔려 날아간 공은 박 선생의 라켓에 닿았다. 그러나 그 공은 반대편으로 넘어오지 못했다. 

  왜 15점을 접어주고 시합을 해야 하는지를, 그 한 번의 서비스가 설명했다. 체육 선생은 두어 번의 실수를 제외하고는 완벽하게 게임을 마무리하였다. 체육 선생은 대학의 탁구 선수였던 것이다.

  그날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작은 공 하나를 자기 뜻대로 자유롭게 다루기 위해 10여 년 동안 흘린 ‘땀의 힘’을 보았다.     

  삶 자체가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다. 걷기, 말하기, 글쓰기, 셈하기, 젓가락질, 운전, 그 어느 것도 연습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랑도 연습해야 한다. 사랑을 연습해야 한다고 굳이 말하는 이유가 있다. 사랑을 즉흥적이고 일시적인 감정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매력을 느꼈다면, 사랑의 출발점에 선 것이다. 시작부터 마치 사랑이 완성되어 종점에 이른 것처럼 호들갑을 떨면 안 된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는 뜻이다. 사랑하겠다는 결단과 지속시키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그 감정은 일순간의 불꽃에 불과하다. 

  작은 못 하나를 박을 때도 집중이 필요하다. 집중과 지속에는 정성이 든다. 사랑의 길은 크고 작은 갈등과 화해의 여정이다. 서로 소통하고 차이를 존중해야 한다. 서로의 차이 때문에 갈등을 빚을 때에도 잡은 손을 놓지 않아야 한다. 상대도 잡은 손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그렇게 나아갈 때 사랑의 역사가 만들어진다. 

  요리를 잘하려면 공부하고 연습해야 한다.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서도 배우고 익혀야 한다. 사랑도 그러하다.     


**********     


알음알이는 가짜다.

맛을 보아야 바르게 알 수 있다.  

   

설명만으로 된장 맛을 알 수 없다.

된장을 직접 먹어 보아야 한다.   

  

탐욕과 분노를 내려놓아야 

해방과 자유의 참맛을 알 수 있다.     

 

사랑을 해 보아야

사랑의 참맛을 알 수 있다.     


사랑은 ‘찾는’ 것이 아니다.

‘하는’ 것이다.     


사랑을 하게 되면 

사랑을 찾는 일이 어리석어 보일 것이다. 

    

사랑은 연습이 필요하다.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익숙해진다.     


사람들은 더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고 

행복의 길을 찾는다.


사랑은 그 소망에 응답한다.     

사랑은 자아(自我)에 대한 집착의 굴레를 벗겨준다.


소유의 탐욕 세상에서 

순수하고 경건한 세상으로 이끈다.  

   

더 밝은 세상을 열어주고 

행복으로 가는 길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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