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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걍보리 May 04. 2023

너는 내 세상이다

48. 아이가 나를 살렸어요.

  정아(가명) 엄마 얼굴은 대체로 밝았다. 발달장애 청소년을 둔 다른 엄마들과 달랐다. 나를 보면 먼저 인사를 하였다. 자신이 정아 엄마임을 스스럼없이 밝혔다. 불편할 것 같은 자신의 현실을 편안하게 드러내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궁금하였다. 

  “정아가 다운증후군 아이라는 것을 언제쯤 아셨나요?”

  “임신 중에는 전혀 몰랐어요. 아이가 태어난 뒤에도 초기에는 잘 알아차리지 못했어요. 눈 코 입이 조금 작다는 느낌은 있었지요. 하지만 갓난애여서 그러려니 생각했어요.”

  정아 엄마에게서 방어적인 태도를 찾기 어려웠다. 도리어 신중하게 말하는 나를 편안하게 해 주면서 이야기를 하였다.

  “정아 아빠도 엄마처럼 아이를 잘 대해 주시나요?”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웃음을 잃지 않은 채 담담하게 말하였다.

  “아이가 장애아란 사실을 안 뒤부터 사람이 달라졌어요. 제게 화를 자주 내더군요. 나중에는 이혼을 요구하였어요. 모든 것이 제 탓이라고 하면서. 결국 헤어졌지요.”

  자녀에게 장애가 있는 경우, 부부는 양육 스트레스 죄책감 배우자에 대한 비난과 분노 표출 등 다양한 어려움을 겪는다. 이혼을 하는 경우도 많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쓸데없이 그녀의 상처를 건드린 것은 아닌지 조심스러웠다.

  “혼자서 큰 짐을 지게 되었네요.”

  “직장 생활과 양육을 동시에 했지요. 몹시 힘들었어요. 나중에 건강을 잃게 되자, 제 한 몸 추스르기도 힘들어졌어요.”

  그 이야기를 듣자 고단한 상황이 연상되었다. 내 몸이 힘들어지는 것 같았다. 정아 엄마는 힘든 시기가 지나갔다는 듯, 그런 일에 매우 익숙하다는 듯,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보호시설에 맡겼지요.”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함께 살고 있지 않은가?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다시 함께 사시게 된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정아 엄마가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아이와 떨어진 뒤에 몸이 더 아팠어요.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어요. 류머티스성 관절염 판정을 받았어요. 더 이상 직장 생활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지요.”     

  그때까지의 내용만을 보면 모녀는 절망적인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어이구’ 소리와 함께 한숨을 쉬었다. 가슴이 조여드는 것 같았다. 

  그런데 과거의 어둠과 현재의 밝음이 어떻게 연결되지? 여고생 정아와 엄마의 밝은 표정에서는 절망의 그늘을 찾아보기 어렵지 않은가? 심각해진 내 표정과는 달리 정아 엄마는 밝은 분위기를 잃지 않았다. 하던 말을 계속했다.

  “저는 머지않아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 죽기 전에 아이하고 단 며칠이라도 함께 살아보자.’ 그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세상을 정리하는 기분이었겠네요.”

  “그렇지요. 힘든 몸을 이끌고 보호시설을 찾아갔어요. 다시 아이를 데려왔지요. 반찬을 만들고 밥을 지었어요. 엄마인 내가 밥을 맛있게 먹어야 아이도 잘 먹을 것 같았어요. 입맛은 없었지만 꾸역꾸역 입속으로 밥을 밀어 넣었지요. 나와 달리 아이는 밥을 맛있게 먹더군요. 배가 부르자 아이는 특유의 명랑한 모습으로 나를 웃게 만들었어요. 정말 오랜만에 웃었어요.”

  펄벅의 자서전 <자라지 않는 아이>가 떠올랐다. 거기에서는 펄벅이 장애가 있는 딸을 보호시설에 그냥 위탁하였다. 이와 달리 정아 엄마는 아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이 대목에서 정아 엄마의 표정은 밝아졌다. 내 기분도 변하는 것 같았다.

  “아이와 함께 며칠을 지냈어요. 아이는 잘 놀았어요. 밤에는 서로 끌어안고 잤지요. 놀랍게도 제 몸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았어요. 아이는 구김살 없이 까불고, 제 품에 거침없이 안기더군요. 아이와 함께 지내면서 몸도 마음도 차츰차츰 정상으로 회복되었지요. 놀라운 일이었지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니까요.”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때 정아 엄마가 느꼈을 기쁨을 상상해 보았다. 하늘을 덮고 있던 먹구름이 걷히는 기분이 아니었을까? 정아 엄마는 펄벅보다 더 행복한 것 같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였다. 

  “정아는 저를 죽음에서 구해냈어요. 한때 아이를 버리려고 했던 것이 미안하더군요.”

  정아도 정아 엄마도 사랑 속에서 살고 있었다. 둘이 만드는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다. 이야기를 들은 뒤로 정아도 정아 엄마도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 

  사랑받는 존재는 고귀해진다. 무심코 핀 들꽃도, 바닷가의 조개껍질도, 사랑의 눈길을 받으면 보석이 된다. 정아 엄마에게 정아는 아름다운 꽃이자 보석이었다.  

   

**********   

  

사랑의 신은 

바로 곁에 있다.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엄마의 손과 눈을 통해

신은 곁에 와 있다.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는 

그 사랑 속에서 위로받는다.     


남을 구제하는 손길이

자신을 구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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