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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걍보리 Aug 28. 2023

숲길에서

6. 염려

  좁다란 산책길 이곳저곳에서 꽃들이 자란다. 작고 낮은 산이지만 꽃들이 제법 다양하다. 개나리와 진달래는 물론이고 양지꽃 제비꽃 민들레꽃 둥굴레꽃 붉은병꽃 찔레꽃 등이 어느새 피었다가 어느 순간 사라진다. 그것들이 피었다가 지는 곳은 대개 예전에 보았던 그 자리이거나 그 근처다. 반복해서 피고 지는 것이다. 그런 꽃들 사이사이로 국화와 붓꽃 수레국화 수선화가 듬성듬성 자리를 잡고 있다. 숲과 길의 경계에는 흙길을 따라서 꽃잔디가 분홍색으로 깔려 있다. 누군가의 손길이 없으면 그렇게 다듬어질 수 없었다.

  어느 일요일 오전에 길을 걷다가 꽃잔디 일부를 사각형으로 떼어서 주변의 다른 빈 땅으로 옮겨 심는 사람을 만났다. 꽃잔디의 영역을 넓혀주는 것 같았다. 조금 마른 몸매에 볼이 홀쭉 들어간 그는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처럼 보였다. 땀을 흘리며 호미질을 하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여기저기 피어있는 수레국화나 붓꽃도 선생님께서 직접 심으신 건가요?”

  그가 천천히 허리를 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원래 이 길에는 꽃잔디나 수선화가 없었지요. 제가 몇 년 전부터 심은 것들입니다.”

  “구청이나 어떤 단체에서 지원을 받으시는 건가요?”

  “아니요. 그냥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그가 겸연쩍은 듯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그가 웃자 그의 긴 얼굴이 세로로 깊은 주름을 만들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몸이 많이 아파서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한 적이 있어요. 운이 좋아 치료가 잘 되었고, 몸이 조금 회복되자 운동이 필요했지요. 그래서 이 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이 길에 꽃을 좀 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주 다니는 길이 좀 더 예쁘면 좋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의문이 생겼다.

  “다른 사람들이 선생님께서 심어놓은 국화나 수선화 등을 뽑아가 버리지는 않나요?”

  “아,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어요. 제가 고생해서 심어놓은 꽃잔디도 파가고, 천년초도 뽑아가고.”  

  “그래도 이런 꽃 가꾸기를 계속하실 건가요?”

  “제가 이 근처에 사는 한, 또 힘이 있는 한 이 숲길에 꽃을 계속 심을 생각입니다.”

  “생각은 쉬워도 실천은 어려운 법인데, 대단하시네요.”

  그의 일을 더 이상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아 자리를 떴다. 그는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 같았다. 

  그와 내가 걷는 산길은 사유지가 아닌 공유지다. 그 길은 그에게 어떤 금전적 이익을 주지 않는다. 그는 단지 길을 아름답게 꾸밀 뿐이다. 그는 ‘가꾸기 자체’에 마음을 쏟는 사람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동생에게 사장의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동생이 시큰둥하게 응답했다. 

  “좋은 것이라........”

  뜸을 들이던 동생이 문득 이렇게 반문하였다. 

  “형, 사장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아요?”

  “음, 지시하는 사람이 아닐까?”

  동생이 웃으면서 말했다.

  “사장은 걱정하는 사람이어요.”

  “아, 그래그래, 사장은 이런저런 걱정이 많겠구나.” 

  동생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 쓸 일이 무척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세상에 마음을 쓰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마음을 쓴다. 누군가에게 또는 무언가에 마음을 주면, 그는 그 마음에 어울리는 사람이 된다. 

  아이의 장래를 염려하면? 부모가 된다. 회사의 생존과 번영을 염려하면? 사장이 된다. 작물의 생육을 염려하면? 농부가 된다.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누구를 염려하며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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