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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걍보리 Aug 30. 2023

숲길에서

7. 균형

  질문이 좋아야 좋은 답을 얻을 수 있다. 나쁜 질문으로 좋은 답을 얻기는 힘들다. 

  예를 들면,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은 적절한 질문이 아니다. 몸에서 안 중요한 부분이 어떤 부분이겠는가? 손톱까지도 다 필요해서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역시 허접하다. 각자의 몸과 마음의 건강은 물론이고 이런저런 인간관계나 환경조건 또한 중요하다. 그런데 그것들 중 최고의 것 하나를 골라보라는 것은 마음을 곤혹스럽게 할 뿐이며 어떤 좋은 견해를 만들지 못한다. 엄마와 아빠 중 누가 더 좋으냐고 묻는 것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자녀의 마음을 괴롭히는 일이다. 

  자신의 삶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는 것이 좋을까? 삶은 단순한 평면이 아니다. 몸이 그러하듯 삶도 다면적이다. 자신을 잘 알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들을 여러 개 적어보고, 그것들 사이에 순서를 정해보거나, 비중을 매겨 보는 것은 괜찮은 방법이다. 

  매슬로우는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성취한 사람들을 연구하면서 삶에는 수준차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모든 사람의 욕구가 다 똑같지 않으며 욕구에도 계층이 있다고 보았다. 그는 크게 결핍욕구와 성장욕구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한 번 충족되면 더는 동기로서 작용하지 않는 하위 욕구를 결핍 욕구라고 하였다. 이 욕구에는 네 가지가 있다. 식욕 성욕 수면욕 등 생리적 욕구, 불안하지 않게 살고 싶어 하는 안전 욕구, 원만한 인간관계를 만들려는 사회적 욕구, 타인을 위해 봉사하고 명예를 얻고 싶은 존경 욕구가 이에 해당한다.

  반면에 성장 욕구는 충족이 될수록 그 욕구가 더욱 증대되는 욕구다. 자아실현 욕구가 이에 해당한다.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는 이 욕구를 메타 욕구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는 오래도록 자아실현이 최고의 정신 수준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말년에 동양 사상을 접촉하면서 자아초월 욕구를 추가하였다. 그가 자아초월 욕구를 최상의 정신 수준으로 선뜻 도입하지 않았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자아를 내려놓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아초월이란 존재의 무상(無常)함에 대한 깊은 통찰과 체득(體得)을 의미한다. 

  나는 욕구의 다양성과 그것들 사이의 차이에 대한 그의 통찰을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내가 체험한 바에 따르면 결핍욕구와 성장욕구 사이가 그의 말처럼 늘 명확하게 구분되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인 삶의 장면에서는 대체로 혼재되어 나타난다. 깨달음이 커서 수염이 석자가 되어도 먹어야 하는 상황이 있는가 하면, 비루하고 자기혐오에 매몰된 상황에서도 삶의 진실에 대한 깊은 이해와 초탈(超脫)에 곧바로 도달하는 경우도 있다. 시간과 함께 나의 욕구 발현 양상도 변화하는 실상을 부정할 수 없다.

  다양한 욕구를 동시에 지니고 또 실현시켜 나가는 존재로서의 나는 그때그때마다 어떤 욕구를 추구하거나 그것에 사로잡혀 있다. 자기 자신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좁게는 어떤 순간에 내가 무엇을 강하게 욕망하는지 알아야 한다. 넓게는 자신이 평소에 주로 어떤 것을 지향하면서 사는지 살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특정 욕구에 과도한 관심을 두고 다른 욕구들을 무시한다면 삶은 균형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생리적 욕구에만 집착한다면 그의 삶은 그저 모으고 먹고 마시는 삶이 될 것이다. 더 높은 수준의 열린 세상을 맛볼 기회를 잃을 것이다. 자아초월을 추구한다면서 결핍욕구를 소홀히 하면 진정한 초월과는 거리가 멀어질 것이다.

  땅에 발을 딛고 살아야 하지만, 눈을 들어 먼 곳을 바라보며 사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다. 사람은 성(聖)과 속(俗)을 오가며 사는 존재다. 성(聖)만으로도 살 수 없고, 속(俗)만으로 살아서도 안 된다. 이런저런 다양한 욕구들을 적절하게 충족시키고 때로는 절제하며 자기다움을 찾아갈 때, 개인은 자기의 고유한 모습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균형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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