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티끌
지구는 45억 년 전에 생겼다. 지구가 속한 은하(銀河, milky way)는 130억 년 전에 형성되었다. 우주의 시작 즉 빅뱅(big bang)은 138억 년 전에 일어났다. 빅뱅 이전은 알 수 없다. 관측 가능한 우주의 반지름은 465억 광년이다. 우주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의 거리는 930억 광년이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관측 가능한 영역에 한정된 것이다. 관측 불가능한 영역을 고려하면, 실제 우주의 크기는 알 수 없다.
어떤 걱정거리가 생기면 마음은 오직 그것만 따라다닌다. 마음에 걱정이 쌓이기 시작한다. 걱정이 길어지면 다른 생각은 점점 작아진다. 희미해진다. 걱정이 가득 차면 다른 것이 들어설 틈이 없다. 나는 걱정 자체가 되어버린다. 걱정이 나는 물론이고 세상마저 삼켜버린다.
어디 걱정뿐인가? 미워하는 마음도 좋아하는 마음도 지나치게 부풀어 오르면 다른 마음이 들어설 여지가 사라진다.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 마비되면 꼼짝달싹 못하게 된다. 몸은 긴장하고 마음은 흥분한다. 조화와 균형을 잃는다. 삶이 무거워진다.
가슴이 답답하면 창문을 연다. 그것만으로 미진하면 산책을 나선다. 초목 사이를 걸어본다. 때로는 집 근처 언덕에 오른다. 하늘을 본다. 하늘 아래서 나는 작아진다. 하늘은 옹기종기 모인 집들을 감싸고 있다. 나는 저곳에서 개미처럼 산다. 길가의 잡초나 나나 하늘 아래서 사는 것은 마찬가지다. 불어오는 바람이 풀들을 흔든다. 내 뺨은 바람을 느낀다.
자아는 작아질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부풀어 오른 자아는 경쾌하지 못하고 무겁다. 밝지 못하고 어둡다. 힘센 정치가들이 헛소리를 하는 이유는 자아가 너무 커서 무겁고 어둡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하면서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까닭은 자신의 작고 작음을 잊고 살기 때문이다. 종종 방송에서 그들의 빈말을 듣게 된다. 어찌 생각하면 그들의 삶이 애처롭다. 어디 정치가들뿐이랴. 자신의 작음을 모르는 사람이.
무한(無限)을 떠올릴 수 있는가? 불가능하다. 무한은 논리적으로만 존재한다. 무한은 우리가 지각하거나 인식할 수 있는 유한 너머 그 무엇일 뿐이다. 시공간을 점유하는 일체의 존재 배경은 무한한 텅빔이다. 없음이 배경이 아닌 있음이 있을까? 나는 하늘을 보면서 무한을 상상한다. 바다를 보면서 무한을 짐작한다.
하늘과 바다는 나를 좁은 울타리에서 해방시켜 준다. 하늘을 보면서 바다를 만나면서 나의 작고 작음을 온몸으로 느낀다. 커졌던 자아는 거품처럼 꺼진다. 우주의 시간과 역사를 생각하면 나는 잠깐의 반짝임이다. 그런 거대한 우주마저도 무한한 텅빔 속의 한 조각 파도가 아닐까? 아무리 큰 유한도 무한 앞에서는 티끌이다. 떠올릴 수조차 없는 무한 앞에서 유한인 나는 그저 티끌 중의 티끌일 뿐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지구와 태양계, 그 너머의 은하와 아득한 우주를 보여주는 영상을 보면서 나는 작아지고 또 작아진다. 아니, 작음을 자각한다. 가벼워진다. 내가 만든 마음의 덫에서 풀려난다. 우주 영상은 말한다.
“너는 한 점 티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