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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에서

38. 감기

by 걍보리

감기는 면역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바이러스에 노출되었을 때 생기는 호흡기 질환이다. 감기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몸을 따뜻하게 하고 충분하게 쉬면서 면역력을 강화해야 한다. 면역력이 약하면 감기는 단순호흡기 질환에서 폐렴으로 진행될 수 있다.

감기에 안 걸리고 살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수백 가지가 넘고, 인간의 면역체계는 모든 바이러스에 대해 완전한 면역력을 갖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기에 잘 걸리지 않고 건강을 지키는 방법은 있다. 잘 씻고 잘 먹고 잘 자고 스트레스를 관리하며 심신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다.

범죄 없는 세상이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감기 바이러스처럼 범죄도 근절할 수 없다. 그러나 감기에 걸리더라도 환경이 깨끗하고 몸이 튼튼하면 이겨낼 수 있는 것처럼, 범죄를 일으킬 수 있는 불량한 조건을 개선하면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 사회가 건강하면 설령 범죄가 발생하더라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후유증도 최소화할 수 있다.

2025년 1월 19일 새벽 3시에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법원에 난입한 폭도들은 건물과 실내 집기(什器)를 파괴하였다. 폭행당한 다수의 경찰들은 중경상을 입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런 폭동을 말리기는커녕 도리어 부추기는 정치가 법률가 언론인 목사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을까?

우리 사회가 어느 순간 극우파(파시스트)가 잘 자라는 토양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극우파는 미국이나 유럽 일본의 극우파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한국의 역사적 정치사회적 환경이 다른 나라와 다르기 때문이다. 감기로 비유하자면 한국을 병들게 한 극우바이러스는 미국이나 유럽의 극우바이러스와 다르다. 그러나 바이러스만 다를 뿐 감기는 감기이듯, 어느 나라의 극우(파시즘) 건 극우는 극우다.

극우파는 흑백논리와 단순무식을 무기로 삼는다. 아군과 적군이 분명하게 나누고, 정치 종교적 리더에게 충성한다. 극단적으로 편향적이란 점에서 파시스트는 종교적 광신도와 비슷하다. 반지성적이며 외국인 이민자 여성 사회적 소수자에게 매우 공격적이다. 이들은 현실의 복잡성과 불확실성 애매성과 모호성을 인내하지 못한다. 다양성을 제한하고 민주주의를 배척한다. 그들이 내세우는 자유는 그들만의 자유다. 그들이 강조하는 법과 상식은 보편성을 띠지 못한다. 그들의 지도자가 자의적으로 해석한 법과 상식만이 그들의 법과 상식이다.

현재 한국의 어떤 점이 극우가 자라는 토양이 되고 있는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첫째로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극우를 키우는 가장 큰 요인이다. 양극화를 완화해야 한다. 2030 청년들은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안정된 중산층 삶을 누리기 어렵다는 좌절감에 시달리고 있다. 70대 노인들은 사회적 소외와 경제적 빈곤으로 고달프다. 많은 청년들이 불안정한 일자리인 비정규직에 종사하고 있다. 같은 일을 해도 정규직과의 과도한 급여 차이는 비정규직 종사자의 분노를 키운다. 현재의 한국 사회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급여 차이를 줄이려는 어떤 정치적 담론도 주요 의제로 삼지 않는다. 정치가도 경제인도 언론인도 풀기 어려운 이 문제를 회피한다.

양극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사회적 합의를 통하여 평등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각종 정책과 조세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급여 차이를 최소화하거나 없애야 한다. 직군과 직종에 따른 급여 차이를 줄여야 한다. 어느 분야에서건 성실하게 일을 하면 안정된 사회구성원으로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건강한 사회만이 극우를 예방할 수 있다.

둘째로 과도한 경쟁 문화를 완화해야 한다. 협동은 연대감을 기르고 경쟁은 상대방에 대한 증오심을 키운다. ‘오징어 게임’이라는 드라마가 한국에서 만들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사회가 극단적인 생존경쟁 사회이기 때문이다. 청년들의 자살률이 높은 배경에는 비정한 경쟁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노래처럼 경쟁이 없어야 하는 영역에서도 선의의 경쟁이라는 간판을 달고 등수를 매기며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다양성이 미덕인 예술에서마저 서열을 정하고 승자를 추켜세우면서 수익을 창출하는 문화는 건강하지 못하다. 서열정하기의 극단적 형태는 수능이라는 대학입시 제도다. 이런 입시제도는 초·중·고등학교의 건전한 학교 문화 형성을 막고 건강한 심성을 파괴한다. 서열정하기만 있는 곳에서 어떻게 개성과 다양성과 우정이 자랄 수 있겠는가?

과도한 경쟁 문화를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가? 답은 하나일 수 없다. 각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창의적인 대안 찾기를 해야 한다. 노래 경연에서도 승자와 패자가 아닌 노래와 가수의 특성에 어울리는 이름의 상을 주면 좋겠다. 이런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의 상장제도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어떤 초등학교에서는 학생 모두에게 다양한 이름으로 상장을 준다. 그곳에는 패자가 없다. 개성 그 자체로 존중받는 개인이 있을 뿐이다.

셋째로 분란을 조장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가나 종교인을 단호하게 비판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자기편을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공동의 적을 상정하는 것이다. 마치 감기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것처럼 사회 갈등을 조장해서 그들은 이익을 취한다. 나쁜 정치가는 성별 세대 지역이라는 ‘가치중립적인 기준’을 ‘선악을 가진 기준’으로 바꿔치기해서 자기 지지 세력을 쉽게 만든다. 갈라치기는 증오심을 키운다. 나쁜 정치가들처럼 갈라치기 문화를 퍼뜨리는 일부 한국의 개신교도 지탄받아야 한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처럼 단순무식한 흑백논리로 신도를 끌어 모으고 공동체의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는 저급하다. 이들은 광신도를 신앙심이 깊다고 추켜세우고, 건전한 비판자를 사탄으로 몰아세운다. 우리 사회가 유럽의 중세사회처럼 된다면 그들은 마녀사냥이라는 광기를 보일 것이다. 자유의 정신을 기르고 확장시켜 온 개신교에 자유를 억압하는 파시즘이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개신교 역사의 아이러니다. 한국 개신교의 비극이기도 하다.

이런 갈라치기는 어떻게 막아야 하는가? 시민들은 갈라치기로 이익을 얻는 정치가나 종교인을 단호하게 비판하여야 한다. 체로키 인디언의 동화에 따르면 사람의 마음속에는 흰 늑대와 검은 늑대가 산다. 흰 늑대에게 먹이를 많이 주면 흰 늑대가 이기고, 검은 늑대에게 먹이를 많이 주면 검은 늑대가 이긴다. 어느 쪽에 먹이를 주는가는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진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어떤 세상을 원하는가?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에게 순종하며, 그가 좋아하는 것을 나도 좋아하고, 그가 배척하는 것을 나도 배척하는 그런 세상에서 살 것인가? 아니면 나의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사회지도자를 선택하거나 바꾸고, 나의 개성을 펼칠 수 있는 그런 세상에서 살 것인가?

희망은 힘이 세다.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세력에 저항하면서 길러온 항체의 힘으로 극우 파시즘이라는 질병을 이겨낼 것이다.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는 극우라는 질병을 ‘한국 민주화의 역사’라는 항체로 극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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