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거인국에서 살아남는 개인기
어린 시절 처음 축구장에 들어섰을 때. 네가 말했다.
"야! 경기장 너무 커. 골대도 엄청 커. 골 넣기 편하겠다”
“멍청아. 우리 골대도 크거든!”
맞다. 어린 시절 우리는 성인 규격에서 똑같이 경기를 뛰었다. 상상해보자 그 큰 경기장에서 꼬맹이들이 이리저리 공을 쫓아 뛰던 상황을. 요즘은 8대 8로 규격도 달라졌다. 유럽에선 오래전부터 그렇게 저학년들 경기를 했다. 좀 더 많은 볼 터치와 빠른 진행을 할 수 있다. 어린 선수들을 위해선 좋은 변화다. 경기장에서 많은 볼 터치는 선수의 성장에 큰 영향 준다. 그리고 우린 그 경기장에서 가장 많은 들은 감독님의 멘트는 한결같았다 “패스 해. 패스. 드리블하지 말라고” 기본기도 배우기 전에 패스하는 법을 배웠다. 개인기를 배우기보단 승, 패만을 위한 경쟁을 배웠다. 어쩌면 우린 그때부터 삶을 헤쳐나갈 개인기 하나 배우지 못했던 걸 아닐까?
2. 거인들의 발자국
모니터의 텅 빈 백지에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한 채. 창가로 아침이 오면, 나는 침대로 숨어, 스스로의 무능력에 소리 없이 화를 낸다. 이러단 굶어 죽을 것 같아. 축구 지도자 자격증을 따고, 간간히 축구클럽 아이들을 가르치곤 했다. 요즘 아이들은 휴대폰으로 화려한 축구선수들의 개인 기술을 보곤, 가르쳐달라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난 묵묵히 아이들에게 기본기를 가르쳤다. 요즘 애들 무섭다. 반복적인 기본기 훈련이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부모님에게 말하면 바로 학부모님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기초적인 기본기도 배우지 않고, 화려함만 쫓고 싶다면, 전액 환불해주겠다고 학부모 회의에서 말했다. 몇몇은 정말 환불을 요구했고, 몇몇은 나를 이해하고, 아이들을 계속 축구장으로 보냈다.
생각해보니, 너는, 나보다 기본기가 좋지 못했다. 그건 너도 인정하겠지? 덕분에 여전히 나는 조기축구 나가서도, 기본기 하나로 볼 차며, 으스대긴 한다. 어린 시절 그렇게 너도, 나도, 지루하고 싫었던 기본기 훈련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는 모두 안다.
축구클럽 아이들의 시합 날이었다. 한 아이의 부모님이 사촌에 할아버지에 온 가족을 데리고 왔다. 그리고는 그 아이에게 "잘해야 해. 잘해야 해. 오늘 너 보러 온 가족 다 왔어. 알지?" 그 말에, 그 아이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경기에 뛰기 전부터 엄청난 부담감에 입술만 깨물었고, 연신 가족들이 있는 관중석을 돌아봤다. 나는 그날 그 아이를 경기에 투입시키지 않았다. 당연히 그 아이의 가족들은 나에게 항의했다. 어떻게 자신의 아들을 1분도 경기장에 투입시키지 않냐고? 멱살도 잡혔다. 사촌이란 분은 나에게 시원하게 생수의 물을 뿌렸다. 그때 그 아이가 울며 말했다. "뛰기 싫었어. 내가 뛰기 싫었다고."
너도, 나도, 알지 않나? 우리도 그랬다. 승리가 목표였다. 이겨야 해. 그리고 지면 혼나고, 맞고, 기합 받고, 그랬다. 어느 순간, 축구가 두려워졌다. 축구장이 무서워졌다. 그런 어른들의, 거인들의, 발에 밟혀 너도, 나도, 참 많이 힘들어했다. 축구 지도자 자격을 취득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거창한 사명감은 없었다. 그저 너와 나처럼 축구가 두려워지지 않길 바랬다. 거인들이 만든 발자국에 빠져, 축구를 배우는 아이들이 힘겨워하질 않길 바랬다.
나도, 너도, 거인국의 거인들처럼 훌쩍 어른이 되었으나, 삶의 작은 돌부리에 걸려 아직도 넘어지곤 한다. 그때마다 깨닫는다. 화려한 개인기보단, 묵묵히 일상을 버텨내는 기본적인 힘이 중요하단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