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홈과 원정
언젠가 너가 나에게 심각하게 물었다. 이상하게 홈에서의 경기력은 좋지 않은데, 원정에선 경기력이 좋다고 하긴 운동선수들은, 루틴, 미신, 징크스에 민감한 편이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중, 고교시절, 시합 전에 축구화 끈을 다 풀어놓고, 다음 날, 왼쪽 축구화부터 끈을 다시 묶었다. 그 시작이 어떤 계기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런 징크스를 한동안 유지했다. 너가 다시 심각하게 말했다.
"홈에서 경기력이 좋지 않다 보니 팬들이 이제 내가 볼만 잡으면 야유를 해"
"그건 아마 네가 원정에서도 못하니깐 그런 거겠지. 넌 이번 시즌 그냥 망한 거 같아."
"나쁜 자식. 그래도 난 홈 경기장이 좋더라."
2. 멀리 가보니 알겠더라, 역시나 홈이 좋다.
꾸준한 정신과 치료로 안정을 취하고, 들뜨던 감정들이 조금은 나아졌을 때. 여행을 떠났다. 계획도 없었다. 사실 충동적인 여행이었다. 목적도 없었고, 더군다나 영어 한 마디 제대로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그렇게 여행을 떠났는지 모른다. 몇몇 여행지에서 나는 주변 친구들에게 엽서를 보냈고, 언젠가 너가 결혼을 하고 집들이 갔던 날. 나에게 빛바랜 엽서를 보여줬던 기억이 난다. 지금처럼 여행에 대한 정보가 풍부하지도 않았다. 짧은 영어 단어가 적힌 책과 꽁꽁 돈을 숨길 복부 복대를 차고, 떠났다.
입국 심사 카드 작성하는 법을 잘 몰라서, 끙끙거렸다가, 승무원 누나가 꼼꼼하게 적어줬던 기억이 난다. 기내식은 맛있었고 비행기는 추웠다. 충동적으로 떠났던 나의 여행은, 마치 긴 꼬리를 무는 것처럼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어졌다. 간간히 어머니가 보내주신 돈과 한인 식당에서 성수기에 알바를 하곤 했다. 그러다 다시 한국에 들어와서 돈을 모으고 다시 떠나길 반복했다. 우습게도 가끔은 무지가 큰 용기를 준다. 지금은 너무 많은 정보를 알기에 그만큼 두려움도 커졌다.
주변에서 묻곤 한다. "정말 선수들은 원정과 홈 경기력이 크게 차이가 나?" 내가 말했다. "동네 똥개도 자기 집에서 80프로는 먹고 들어간대잖아." 익숙함. 안정감. 그건 운동선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심리적인 용기를 준다. 특히 축구클럽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많이 느낀다. 낯선 경기장에서 낯선 선수들과 경기를 할 때. 아이들은 심리적인 위축을 받곤 한다.
중국을 지나,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라오스, 그리고 네팔에 갔을 때였다. 낯선 여행지에서의 풍토병 같은 건 없었다. 이상하게도 여행을 하며 난 음식이 잘 맞았다. 네팔의 어느 고산 마을에 갔을 때였다. 지금은 마을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풍경과 아이들과 음식의 향신료 냄새만 기억난다. 트랙킹으로 산 주변 마을을 거치며 머물던 3박 4일의 일정이었다. 몇몇은 고산병으로 고생했지만 나는 견딜만했다. 그곳 고산마을에 도착했을 때.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너도 알지 않나? 골목에 바람 빠진 축구공만 봐도, 우린 신난 강아지 마냥 달려가 볼 차며 놀곤 했다. 난 마을 아이들과 어울려 축구를 했는데, 가이드가 나에게 심각하게 두 손을 저으며, 말렸다. 영어가 안 통해서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하지만 5분 정도 아이들과 축구를 하다가 깨달았다. 맙소사. 정신이 아찔해지고, 누군가 내 몸을 물에 빠트렸다가 다시 끄집어낸 것처럼 무거웠다. 결국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근처 의자에 누웠는데, 거짓말 안 보태고, 한 10분간 그대로 기절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아이들이 한심한 눈빛으로 날 보며, 웃던 모습이 기억난다.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한 수도다. 해발 3600. 그리고 그곳에 축구장이 있다. 당연하게도 볼리비아는 홈에서 축구경기 승률이 높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남미의 강팀들이 그곳 축구장에서, 패하는 경우는 허다했다. 메시조차 경기를 뛰다가 구토를 했던 모습이 기억난다.
홈과 원정에 대해서 누군가 물어볼 때. 난 네팔 고산 마을에서 겪었던 일화를 이야기해주곤 했다. 그만큼 자신이 살아온 환경은 이방인에게 낯선 두려움을 주곤 한다. 홈과 원정이란 스포츠에만 국환 되진 않는다. 긴 여행을 떠나보니,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 큰 안정감을 주었다. 홈. 집. 나의 익숙한 공간. 언젠가 너가 성적이 좋지 않아, 5년간 뛰었던 팀에서 트레이드되었던 날이다.
"팀 적응보다 힘든게 홈구장 적응인 거 같아"
"아냐. 넌 이번 시즌도 망한 거 같아. 깔끔하게 은퇴하고 나랑 조기축구나 나가자"
"그래도 난 전세산다. 넌 아직도 월세살지?"
"나쁜 자식 홈구장이야기 하다가, 왜 home 이야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