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화 신고 타자기.6
<눈치 보지 않을 권리>

by 이선

1. NG요 다시 갈게요 #


너가 대학교 O.T. 를 가던 나에게 물었다.


"야, 뜬금없이 무슨 영화과에 입학했어?"

"내 엉망진창 고등학교 성적으로 그나마 갈만한 대학교가 여기였어. 뭣보다 2년 제라서 좋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대학교를 갔다. 좋은 학교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울만한 학교도 아니었다. 영화과에서 몇 편의 단편 영화도 만들고, 상업영화 제작부도 경험했다. 이후, 너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영화감독은 아닌 거 같고, 드라마 작가 해야겠거든, 교육원 등록하려는데, 돈 좀 빌려주라. "

"나 축구선수 은퇴하기 전에 넌 삶에 정착하긴 할 거냐?"


걱정스럽게 물어보면서도, 방속작가협회 기초반 수강료를 5분 만에 빌려줬다. 몇 번이나 다시 갚으려고 할 때마다 넌 나에게 "됐고, 재미난 드라마나 하나 써봐."라고 말했다.



2. 쫄지 마. 세상 생각보다 너에게 관심 없어

스크린샷 2017-05-28 오전 7.18.13.png <캄보디아> 세상 나에게 관심없다지만, 가이드마저 날 버리고 가버릴 줄. 버스 떠난 텅 빈 길.

너가 늘 궁금해했다.


"여행 다니면서 연애도 했어? 막 그런 거 있잖아 운명적인 인연?"
"있었지. 3살 연상인 줄 알았는데, 국경 넘다가 여권 보고 알았어. 나보다 16살 많다는 걸"

"아니 16살이나 연상인데 티가 안 나?"

"해외라서 그런지 더 티 안 났어. 그래도 3개월 같이 다니면서 여행했다. 다행히 유부녀는 아니었어"


25살이었던 당시. 그 사람은 41살이었다. 아마도 외국에서 만나서, 더욱 나이에 대한 짐작을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뭐, 그래도 좋았다. 이후로도 같이 3개월 같이 여행을 다녔다. 영어를 못했던 나와 달리 그 사람은 영어, 일어, 중국어에 심지어 불어까지 했다. 글도 잘 썼고, 그림도 잘 그리고 카메라에 담은 사진도 멋졌다.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태국의 작은 섬, 꼬따오에 같이 머물던 새벽에 난 챙겨 온 약을 먹었다. 그 사람이 잠결에 일어나 무슨 약인지 물어봤다. 난 그때 처음으로 내가 겪었던 정신적인 문제에 대해서 솔직히 말했다. 두려웠다. 그 사람이 어떤 태도로 날 대할지. 하지만 의외였다. "뭐 어때. 아픈 게 죄야?" 언젠가 간호사님이 나에게 했던 말을 그 사람도 나에게 했다. 같이 여행을 하며, 난 생각보다 그 사람에게 많은 걸 의지했다. 아무래도 영어도 잘하고 모든 부분에 있어서, 믿음직스러웠기 때문이다.


태국의 방콕으로 돌아왔을 때. 그 사람은 인도를 가겠다고 했다. 난 네팔을 가고 싶었다. 난 그 사람을 따라서 인도를 가겠다고 했다. 그녀가 말했다. "너가 가려던 곳으로 가. 주변 눈치 보고 따라가는 거 아니야."

그 말에 수긍했다. 며칠 후, 인도로 떠나는 그 사람을 공항까지 배웅했다. 지금처럼 인스타그램도 트위터도, 페이스북도 없던 시절. MSN 메신저와 이메일로 서로 연락을 주고받던 시기였다. 내 여권 뒷장에 연락처와 집주소와 한국 전화번호를 적어주곤, 그 사람은 한가득 배낭을 챙겨 들곤 말했다.


"야! 영어 못해도 괜찮아. 쫄지 마. 세상 생각보다 너한테 관심 없어. 그러니깐 눈치 보지 말고 살아"


너가 호기심가득 물어봤다. "그래서? 그래서 다시 한국 와서 만났어?" 내가 긴 한숨을 쉬며 말했던가?

"어, 근데 결혼한다고 청첩장 주더라. 음식 맛난다고 꼭 와서 먹고 가라고." 네가 깔깔거리면서 웃었다.


시간이 지났다. 생각해보니, 너도, 나도, 축구를 처음 시작했던 시절에 선생님 눈치를 보며 운동했다. 실수하면, 운동장 밖에 있는 선생님을 쳐다봤고, 경기에 지면 고개를 숙이고, 혼날 걱정에 두려웠다. 그렇기에 난 아이들을 가르칠 때. 실수해도 혼내지 않기로 했다. 어떤 배우도 NG없이, 연기를 하진 않는다. 헌데, 빠른 템포의 스포츠에서 실수하지 않고 완벽한 경기를 펼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몇몇의 아이들이 경기 도중에 실수를 하고, 내 눈치를 본다. 그럴 때마다 난 웃으며 말한다.


"야! 쫄지 마. 경기 아직 안 끝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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