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그래서 네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뭐야?
부상으로 수술을 하고, 병원에 입원한 너가 나에게 물었다.
"야. 괜찮은 영화 좀 추천해줘."
"어벤저스, 해리포터 안 봤다며? 아님 반지의 제왕."
"넌, 영화과 나오고, 드라마 작가 하겠다는 놈이 추천 영화가 그게 뭐냐?"
"그럼 뭐, 노예 12년. 테이크쉘터 같은 우울한 거 추천해줄까?"
"으음... 그런 영화도 있어?"
2.깊이에의 강요
조지 오웰의 1984는 의무감으로 읽었지만, 해리포터는 광적으로 읽었고,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은 그 어려운 러시아 등장인물 이름들을 숙제하듯 적어가며, 읽었지만, 반지의 제왕은 지역명 모든 등장인물의 이름까지 읊어가며 읽었다. 누군가 좋아하는 책과 영화를 물어보면 다들 고민한다.
'어떤 책과 영화를 이야기해야 내가 있어 보일까?'
마치, 자신의 좋아하는 책과 영화가 인문학적 품격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드라마 작가가 되겠다고 작가협회 교육원 입학을 위해 면접 보러 갔을 때. 면접관이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무슨 드라마와 책을 좋아해요?
"좋아하는 장르는 SF나 판타지요. 에얼리언이나, 반지의 제왕?"
"작가 하려면 고전도 읽고 해야 하는데."
"뭐, 의무감 같은 느낌으로 제법 읽긴 해요. 그렇다고 그 책들을 굳이 좋아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래서 면접은 붙었냐고? 붙었다. 그리고 교육원 졸업반 창작반까지 꾸역꾸역 올라가서 졸업했다. 대한민국 드라마 작가 80프로 이상을 배출한 명맥 있는 학원이지만, 그 최상위 졸업반 창작반까지 나온다고 다 드라마 작가가 되진 않는다. 그래도 요즘은 몇몇 들어오는 각색과 글일로 밥 벌어먹곤 산다. 이상하게 우리 사회는
취향에 깊이에를 강요하고, 가벼움을 표현함에 부끄러워한다.
'좀머 씨 이야기' '향수'의 파크리크 쥐스킨트의 단편 소설 중에 '깊이에의 강요'라는 짧은 소설이 있다. 내용은 간결하다. 예술가가 비평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혹평을 받는다. 그녀의 작품에 깊이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자살한다. 그러자 비평가들은 그녀의 작품을 다시 보며 말한다. 깊이가 보인다. 뛰어난 감성을 품었다라고...
교육원 다닐 때. 선생님이 했던 말씀이 기억난다. 드라마작가는 상업작가라는 것을 항상 인지해야 한다. 죽어서 인정받은 빈센트 반 고흐 같은 삶보다는, 살아서 자신이 하고 싶은 상상력을 마음을 것 발휘하는 스티븐 킹 같은 작가가 되라고,
드라마 작가 공부를 하며 배운 것은, 타협, 인정, 상업성. 그리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 주제, '사람' 이였다. 난 선생님 복이 참 좋았다. 그런 좋은 기본기를 배울 수 있게 해 줘서 말이다. 물론 글을 쓰는 작가로 좋은 드라마와 글을 쓰고 싶다. 사람에 대하여, 깊이 있는 주제의식을 파헤치고 싶다.
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작품보단 어벤저스에서 아이언맨의 죽음이 더 슬픈 것은 사실이다.
손가락 튕기고 세상을 구하고 죽은 아이언맨이나! 서로 손잡고 죽은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슬픔은 같다.
굳이 그 죽음에 깊이에를 따질 필요는 없는 법이다.
너가 퇴원하는 날 내가 가서 물었다.
"그래서 해리포터는 다 봤고?"
"해리의 투명망토를 갖고 싶어."
"너, 전에 경기하는 거보니깐, 운동장에서 존재감 없던데? 경기장만 들어가면 투명망토 쓰잖아!"
"하아, 사우론 같은 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