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몸 값
너는 나에게 진지하게 묻곤 했다. 축구 지도자 생활을 꾸준히 하는 게 어떠냐고? 하지만 난 드라마 작가라는 직업이 참 매력적이었다. 어떤 글쓰기보다 제일 재미있었다. 작가 교육원을 나오고, 몇 번의 보조작가 일을 했다. 결론은 최악이었다. 영화 제작부보다 더 고된 노동이었다. 메인 작가님 스트레스 전담 마크! 내가 메인작가인지, 보조작가인지 모를 모호성. 그리고 그 모든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관행. 극심한 스트레스로 피폐해진 나에게 너가 소고기를 사주며 말했다. "야. 그래서 너 몸 값은 얼마냐?" 내가 답했다. "너 5분 뛰는 경기 수당도 안된다."
2. 창작 금액의 최저임금은 얼마일까?
조울증을 앓고 있단 걸 끔찍하게도 숨기며 지내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첫 원고료는 바로 내 이야기였다. 어딘가 책상 구석에 있는 책. 내 이야기가 담긴 부분을 지워버리고 싶은 어설픈 문장들. 자신이 겪은 솔직한 이야기를 받는 공모였고, 원고료는 30만 원이었다.
사실 축구클럽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많은 돈을 받진 않는다. 지역구와 연계되어하는 일종의 봉사활동 같은 프로그램이다. 물론 너가 나에게 말했던 것처럼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한다면 달라지겠지만, 난 아직 글쓰기에 미련을 접지 못했다. 난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스스로 너무도 잘 안다. 그러면서도 쩐내 나는 글쓰기를 계속하는 이유는 하얀 백지에 내가 만든 세계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곤 '끝' 이란 마침표를 찍는 순간 오는 만족감이기 때문이다. 이는, 노동의 대가로 받는 수당과는 다른 성취감이었다.
최저임금 1만 원을 향해가는 시대. 노동자의 대가는 정상을 찾아가는데, 창작자의 대가는 시대를 못 따라간다. 내가 드라마 보조작가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이름만 대면 알만한 현역 드라마 작가님이 했던 말은
"알잖아. 돈 벌려면 다른 일 해야지. 내가 보조작가 할 땐 메인작가님 빨래도 했어."
맙소사. 사람을 구하는 건가, 노예를 구하는 건가, 하지만 우습게 난 몇 달간 묵묵히 일을 했다. 문제는 언젠가부터, 내가 메인 작가님이 써야 할 구성안과 기획안 대본 초고를 쓰고 있었다. 회의하는 날이면, 작가실에서 밤 샘 근무를 해야 했고, 주 5일째 근무는 나에게 해당되지 않았다. 이해는 했다. 드라마 작가라는 특수한 직업과 방송제작 환경을, 영화 제작부 하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월급은 120만 원이었다.
"작가님 솔직히 말씀드려서 주말도 없이 작업하고, 120만 원으론 생활이 어렵습니다. 그만두고 싶습니다."
"넌, 글 쓰는 사람이 속물이구나? 돈이 중요해? 작가 하겠단 놈이 그러면 어째?"
내 한 달 월급이 120만 원이란 사실을 듣고 너가 말했다.
"야. 나, 경기 수당이 500백이 넘어. 난 90분이면 끝나는데, 넌 한 달 동안 일하고 120만 원?"
"그러게, 시급으로 계산하면 난 얼마 짜리 몸뚱이일까?"
나도 그랬으니 너도 그래야 한다라는 관행. 예술가가 돈을 좇으면 손가락질받는 아이러니. 창작 금액과 노동임금을 별개로 계산하는 웃긴 시스템. 결국 첫 보조작가 일을 그만뒀다. 마지막 달 120만 원은 계속 미루다가
결국 못 받았다. 한동안 공허한 우울감에 약만 먹으며 집에서 지냈다.
몇 해 전, 소설을 드라마 극본으로 각색하는 일을 맡았다. 당시 출판사 담당자가 나에게 물었다.
"작가님 그럼 원고료는 얼마 정도 드려야 할까요?"
"소설은 총 4권이고, 극본으로 6부 만드는 과정이니깐, 1회당 500백만 원 주세요."
당시 담당자의 황당한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아무래도 작가님은 신인이고, 입봉도 아직 못하셨는데 500백만 원은 좀. 1회당 100만 원으로 하시죠."
"다른 작가님 찾으세요."
난 떳떳하게 말했다. 입봉도 못한 신인작가라는 절박함. 그렇다고 내 창작 금액을 희생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출판사와 나는 300백만 원에 타협했다. 요즘은 각 분야별로 세부적인 창작 금액이 책정되어 있다.
하지만 여전히 창작자에 대한 대우는 미흡하다. 창작도 노동이다.
5줄의 오타 가득한 글과 빈 행간에도 누군가는 몸부림치며 괴로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