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화 신고 타자기.9
<감정적 전염병>

by 이선

1. 지는 법을 안 배웠네?


너의 팀이 6연패에 빠졌을 때였다. 잠시 외출을 받아 나온 네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선수들 모두 자신감이 없다. 이길 수 있을까? 또 지겠지? 죄다 그런 표정이야."


생각났다. 어린 시절이, 그땐 너와 내가 뛰던 우리 학교의 선수 구성이 좋았다. 거의 모든 경기를 이겼고 나가는 대회마다 우승했다. 그러다 전국대회에서 처참하게 졌다. 우린 그 패배를 힘겨워했다. 경기가 끝난 후, 모두 엉엉 울었던 게 기억난다. 이후,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패배의 공포감을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매우 맛없었던 커피를 반쯤 남기고, 너와 말없이 커피숍을 나올 때. 너는 나에게 물었다.


"넌 다시 돌아가면 축구할 거야? 난 모르겠다. 아마 안 할 거 같아."


너와 헤어지고 그 물음에 한참을 생각했다. 과거로 돌아가면 나는 그 힘겨웠던 선수 시절을 다시 선택했을까? 여전히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너도 나도 지는 법을 배웠어야 했다. 우리가 배웠던 그 시절 누구도 우리에게 패배를 받아들이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살아보니 알겠다. 삶은 실패에서 더 많이 배운다는 걸.


2. 감정적 전염병


어린 시절 너와 2020 원더 키디 만화를 보고 한참을 싸웠다. 2020년이 되면 정말 차가 날아다니고, 달나라에서 살 수 있다. 없다로, 한참을 다퉜다. 그리고 2020년이 됐다. 달나라는커녕 코로나19로 우린 마스크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인류를 위협했던 전염병은 많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질병은 의학의 발전을 가져왔다. 병의 원인을

찾고, 백신을 만들고, 예방하는 법을 공유하며, 문명의 명맥을 이어왔다. 언젠가 우리도 마스크를 벗고 그땐 코로나 때문에 참 짜증 났어.라고 말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의학적 질병보다 더 두려운 것은 따로 있었다.


6연패 후, 너의 팀이 거짓말처럼 12연승을 했을 때. 네가 들뜬 목소리로 전화했다.


"야. 웃기지? 2달 전만 해도, 2부 리그 가는 건가? 싶었는데, 이젠 질 거 같지가 않아."


안다. 그 기운을, 선수들 모두에게 깔려있는 패배감이 사라지고 이길 수 있단 자신감에 가득 찬 팀의 분위기를

전염병처럼 퍼진, 패배의 질병이 사라진 너의 팀 분위기는 TV로 시청하는 나도 느낄 수 있었다.


의학은 발전했다. 이젠 사람은 생존에 대한 본능보다, 사회에서의 성공에 대한 욕망에 집착한다. 내 주변에는 시험을 보는 친구들이 여전히 있다. 공무원, 부동산 중개인, 등등, 그 시험에 떨어졌을 때. 그들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패배감, 무력감, 사회에서 도태될 것 같은 공포감이 짙게 느껴졌다. 그러한 우울감과 패배감은 주변에 전염된다. 스포츠에도 그런 패배감이 전염되면, 그 팀은 연패에 빠진다.


너의 팀은 13연승 후, 패했다. 그리고 리그에서 아쉽게 2위를 했다. 연승이 끝나고, 외출을 나온 네가 말했다.


"괜찮아. 다시 하면 되지."


지금의 사회는 의학적 질병보다, 감정적 질병이 더 무섭다. 가끔 주변에서 말한다.


너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써 봐. 무슨 이야기?라고 묻는 나에게 다들 말한다.

뭐, 조울증 때문에 힘들고, 또 아팠던 그런 이야기.


싫다. 빈 문서 창에 우울함 가득한 그 이야기를 쓰고 싶지 않다. 이젠 안다. 사람은 다 아프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그 패배감과 절망감을 견디는 방범을 찾는다.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짧은 문장을 읽는 지금. 모니터 넘어, 휴대폰 넘어, 우울한 감정이라는 전염병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고 싶진 않다.


몇 번의 극본 공모 공모전에서 떨어질 때마다 찾아오는 우울감에 괴로워했다. 하지만 이제는 책상에 다시 앉으며 되뇐다.


"괜찮아. 다시 하면 되지. 징징 된다고 인생 달라지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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