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게 살고 싶다.

by Hee

단순하게 살고 싶다.

웃는 이유도 모르고 단지 옆사람의 웃음소리가 웃겨서 따라 웃고, 하늘이 수영장 색과 닮아 기분이 좋아지고, 낯가림 심한 친구 강아지가 유일하게 나한테만 엉덩이를 들이밀어 그날 하루 내내 기분이 좋았던 것처럼. 세상에 별 기대감 없이 눈앞에 보이는 것이 나를 기쁘게 해 줬던 그 순간을 다시 되찾고 싶다.


내 머릿속은 단순한 원룸 구조로 되어있었다. 무의식이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해서 가구도 많이 없고 장식하고 싶은 욕구도 그다지 없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컴퓨터에 쓸데없는 바이러스 프로그램이 용량을 차지하는 것처럼 내 머리 안도 용량이 가득 찼는지 마음대로 확장돼 방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방 안에 또 다른 방 그리고 그 안에 창고 그 안에 내가 갇힌 채 봉쇄되었다. 미세먼지처럼 쾌쾌하고 기분 나쁜 잔 고민들과 걱정들로 내 머릿속이 팽창되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단순함을 잃었다. 단순한 게 뭐였는지 기억조차 안 나고 시도 때도 없이 한 가지 문제에 백가지 고민들을 들어놓았다.


거울 속 내 모습도 굳이 스케치나 채색 같은 수고스러운 정성 없이도 펜 하나만 있으면 너무나도 쉽게 그릴 수 있게 생긴 얼굴이었다. 무표정, 웃는 얼굴, 슬픈 얼굴이 전부라 표정만 봐도 단번에 기분을 알 수 있었던 단순한 내 얼굴이 언젠가부터 알다가도 모를 표정을 반복적으로 짓고 있었다.

나는 내가 어려워졌다. 내 속을 모르게 됐다. 당차게 나라는 사람을 소개하는 게 어렵게 됐다. 그런 생각은 글을 쓸 때 조차도 드러나게 됐다. 일기를 쓸 때 좋았다 나빴다만 말하면 될 것을 상황만 늘어놓고 결론은 짓지 못한 채 스스로에게 굿나잇 인사만 남겼다.


20살 때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과 친해지려면 어떻게 하면 고민에 빠졌었다. 어떻게 다가가면 좋을지 어떤 말을 꺼내면 좋을지 상대가 괜히 부담스러워 하진 않을지 아무것도 안 한 채 방구석에서 떠다니는 고민들을 하나씩 집어삼키며 고민을 축적시키고 있었다. 무엇을 위해서 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친구에게 이 고민에 대해 힘겹게 말을 꺼냈더니 딱 세 글자로 내 고민을 해결시켰다. "연락해".

친구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마치 만난 지 이제 1시간밖에 안된 외계 친구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세 글자로 끝낼 수 있는 문제 아닌 문제를 나는 3일이나 고민했다. 그 순간 깨달은 것이 있다.

단순해지긴 글렀다. 고민을 해결하기 전에 이미 내 머릿속엔 "사회성 or 사교성 결여"라는 새로운 카테고리의 잡생각 방이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끊임없이 단순함을 갈구할 것이다. 4D에 가까운 내 인생이 다시 2D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잡생각으로 지어진 쓸모없는 궁궐이 아닌 미니멀한 단순한 원룸으로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생각을 줄일 것이다. 생각이 범람할 때 "생각 멈춰!"만 외쳐도 저절로 잠재워질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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