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막: 낯설고도 익숙한 이름, 중년
중년이라는 단어는 내게 오랫동안 옷깃에 스치는 바람처럼 익숙하면서도, 막상 내 삶의 한복판에 도착했을 때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낯선 손님과 같았다. 시간의 강물은 속절없이 흘러 어느덧 인생의 반환점을 돌았다는 표지판 앞에 서게 했다. 이곳은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회고의 언덕이자, 앞으로 나아갈 미지의 길을 가늠하는 출발선이었다. 이 특별한 길목에서 내 삶의 궤적을 되짚어볼 때, 모든 변화의 시발점이자 현재의 나를 단단하게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은 바로 15년 전, 내 삶에서 술이라는 존재를 완전히 지워버리기로 한 결단이었다. 나는 종종 이 사실을 떠올린다. 단순히 세월이 흘러 중년이 된 것이 아니라, 십오 년이라는 시간 동안 흔들림 없이 맑은 정신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기에 지금의 내가, 지금의 삶이 가능했다는 것을. 그 선택은 단순한 생활 습관의 변화를 넘어, 세상을 인식하고 관계를 맺으며 나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술과 뒤엉켜 보냈던 청춘의 기억은 마치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언제나 희미하고 아련하다. 분명 뜨거운 열정과 에너지가 넘쳤던 시절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술은 나의 감정,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을 뿌옇게 만드는 안개와 같았다. 술잔이 오가는 밤이면 감정은 종종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과장되거나 왜곡되었고, 다음 날 아침이면 이유 모를 불안감과 자기혐오가 뒤따랐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깊이 없이 피상적이었고, 불안정한 감정의 파도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렸다. 수없이 많았을지 모를 성장의 기회, 새로운 가능성들은 지독한 숙취와 쓰디쓴 후회 속으로 속절없이 침몰했다. 그 시절을 떠올릴 때면, 찰나의 즐거움 뒤에 숨어 있던 길고 어두운 후회의 그림자가 먼저 어른거린다. 특히 어떤 밤은, 그 기억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되살아나 잠 못 이루게 하기도 한다. 그 기억 속에는 젊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방황과 미숙함, 그리고 스스로를 돌보지 못했던 안타까움이 짙게 배어 있다.
어둠 속의 거울, 이웃 남자의 모습에서 본 과거의 나
어젯밤, 나는 아주 오랜만에 그 잊고 싶었던 과거의 그림자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였다. 문이 열리자 잔뜩 술에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옆집 남자가 비틀거리며 들어섰다. 그는 짙은 알코올 냄새를 풍기며 엘리베이터 벽에 위태롭게 기대섰고, 흐리멍덩한 눈빛은 초점을 잃은 채 허공을 맴돌았다. 평소라면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었을 익숙한 이웃이었지만, 그 순간 그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텅 빈 눈빛과 얼룩진 표정 속에서 나는 어떤 소통의 가능성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고, 어쩌면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희미하게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모습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온 것처럼, 순식간에 15년 전 나의 모습을 눈앞에 생생하게 불러왔다. 술에 지배당했던 시절, 나 역시 저렇게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세상을 방황하지 않았던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얼굴조차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의미 없는 말들을 쏟아내며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았던가. 엘리베이터의 짧은 침묵 속에서, 나는 그가 갇혀 있는 혼돈과 어둠이 한때 내가 필사적으로 빠져나오려 했던 바로 그 세상의 일부였음을 처절하게 깨달았다. 그가 느끼고 있을지도 모를 깊은 외로움과 절망감,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그를 기다리고 있을 숙취와 자책감까지도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듯했다.
그 짧고도 강렬했던 마주침은 역설적이게도 내가 지금 온전히 누리고 있는 정신의 맑음과 평온함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절실하게 깨닫게 해주었다. 만약 15년 전,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만약 내가 술과의 위태로운 동행을 멈추지 않고 그 길을 계속 걸어갔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까?
아마도 저 엘리베이터 안의 남자처럼, 혹은 그보다 더 깊은 나락에서 허우적거리며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진심 어린 대화 대신 술기운에 기댄 공허한 웃음으로 관계를 위태롭게 유지했을 것이다. 몸과 마음은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만성적인 피로와 소화불량, 기억력 감퇴는 일상이 되었을 테고, 알 수 없는 불안과 우울감은 밤마다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을 것이다. 건강은 돌이킬 수 없이 멀어졌을 것이고, 진정한 관계 역시 희미해져 갔을 것이다. 마음속엔 깊은 공허함과 방향 잃은 분노만이 남아, 세상을 원망하고 타인을 외면하며 고립된 섬처럼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그 상상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졌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남자가 비틀거리며 내리는 뒷모습을 보며, 나는 내가 걸어온 길에 대한 깊은 감사와 함께, 여전히 그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꼈다.
새로운 렌즈로 마주한 삶, 맑은 정신이 가져다 준 선물
15년 전 가을, 나는 아주 단호하게 결심했다. 더 이상 술에게 내 삶의 주도권을 내어주지 않겠다고. 술 없는 삶을 선택했을 때, 정확히 어떤 미래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막연한 두려움과 함께, 혹시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즐거움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하지만 그 선택은 결과적으로 내 인생을 완전히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끌어준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그것은 마치 오랫동안 뿌옇게 흐려진 렌즈를 벗고, 세상을 선명하게 담아내는 새로운 렌즈를 끼고 다시 태어난 듯한 경험이었다.
맑은 정신이 가져다 준 가장 큰 선물은 숙취 없는 아침이나 가벼운 몸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내면의 풍경을 더욱 깊고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했다. 이 능력은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선사했다. 요동치던 감정의 파도는 잔잔한 호수처럼 평온해졌고,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내 마음의 미묘한 흐름, 작은 속삭임까지도 놓치지 않고 귀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술기운에 휩쓸려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내 안의 불안, 욕망, 상처들을 명료하게 인식하고 직면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뿐만 아니라, 타인의 표정과 목소리 톤, 말 속에 숨겨진 미묘한 감정의 결을 훨씬 더 또렷하고 섬세하게 읽어내는 감각이 되살아났다. 술에 취해 있을 때는 자기중심적인 감정에 매몰되어 타인의 진심을 오해하거나 무시하기 일쑤였지만, 맑은 정신은 공감 능력을 확장시켰고, 더 깊이 있는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상대방의 침묵 속에서도 그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하게 되었고, 표면적인 대화 너머의 진심을 감지하는 능력이 자연스럽게 피어났다.
세상이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의 풍경 하나하나가 생생한 색채와 의미를 띠고 다가왔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나뭇잎의 섬세한 결, 저녁노을이 하늘을 물들이는 장엄한 빛깔, 길가에 핀 작은 들꽃의 소박한 아름다움까지. 예전에는 그저 배경처럼 존재했던 세상의 모든 것들이 경이로운 디테일로 가득 찬 예술 작품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의 말투 하나, 사소한 몸짓 하나에서도 이전에는 감지하지 못했던 다양한 뉘앙스를 발견하게 되었고, 관계 속에서 오가는 미세한 감정의 교류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삶의 아주 작은 장면들 속에서 깊은 의미와 충만한 기쁨을 발견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주말 아침이면 직접 원두를 갈아 핸드 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는 시간의 고요함과 향기로움. 커피 향이 온 집안에 퍼져나갈 때 느끼는 평화로운 정적은 그 어떤 화려한 파티보다 더 큰 만족감을 주었다. 창밖으로 들려오는 아이의 해맑은 웃음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처럼 느껴졌고, 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춤사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술에 취해 흥청거리던 밤의 소란스러움 대신, 이런 소박하고 진실한 순간들이 내 일상의 중심을 채우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새롭게 발견한 삶의 진정한 풍요로움이었다.
시간과 몸, 그리고 관계의 재구성
술 없는 삶은 나에게 도둑맞았던 시간을 되돌려주었다. 젊은 날, 의미 없이 술로 지새우며 허비했던 수많은 저녁과 주말들이 온전히 나의 것이 되었다. 숙취로 고통받으며 침대에서 뒹굴던 주말 아침은 사라졌고, 대신 활기차고 생산적인 시간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나는 그 귀하게 되찾은 시간들을 배움과 성장으로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읽고 싶었지만 미뤄두었던 책들을 탐독했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즐거움에 빠져들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조용히 사색하거나 글을 쓰는 시간을 가졌고, 주말이면 등산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며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을 재충전했다. 때로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거나 악기 연주에 도전하기도 했다.
이 활동들은 시간을 때우는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맑은 정신으로 온전히 현재에 집중하며, 충실히 살아가는 기쁨 그 자체였다.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느끼는 성취감, 꾸준한 노력을 통해 조금씩 발전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만족감은 술이 주는 찰나의 쾌락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고 지속적인 행복을 선사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경험과 지혜는 중년의 나를 더욱 단단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자양분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시간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살아내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몸의 변화는 더욱 극적이었다. 술과 함께했던 시절, 나는 늘 만성적인 피로와 잦은 두통, 속 쓰림과 같은 위장 문제에 시달렸다. 얼굴은 자주 붓고 푸석했으며, 눈빛은 늘 흐릿하고 생기가 없었다. 하지만 술을 끊고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을 병행하면서 몸은 놀랍도록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숙면을 취하게 되면서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상쾌해졌고, 하루 종일 활력이 넘쳤다. 소화 기능이 개선되면서 속이 편안해졌고, 피부 톤도 맑아졌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눈동자에 생기가 돌아왔다", "얼굴이 훨씬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은 단순한 외모의 변화를 넘어, 내면의 건강함이 겉으로 드러나는 증거였다. 스스로 건강을 해치지 않고 몸을 아끼고 돌본다는 자각은 나이 들어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상당 부분 해소해주었다. 오히려 꾸준한 관리를 통해 더 건강하고 활기찬 중년을 맞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몸의 건강은 자연스럽게 정신적인 여유와 안정으로 이어졌다.
관계의 풍경 또한 완전히 새롭게 그려졌다. 술에 의존했던 시절에는 감정의 기복이 심했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짜증을 내거나 상처를 주곤 했다. 특히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 더 그랬다. 하지만 맑은 정신을 유지하면서 감정 조절 능력이 향상되었고,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꾸준한 대화와 서로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가족 간의 신뢰는 서서히, 그러나 깊게 회복되었다. 예전에는 술기운을 빌려야 가능했던 어색한 농담이나 과장된 표현 대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말과 꾸밈없는 밝은 웃음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나는 더 이상 표면적인 모습에 속지 않고, 자녀의 장난스러운 말투 속에 숨겨진 속마음이나, 배우자의 짧은 침묵 속에 담긴 깊은 배려를 읽어낼 수 있게 되었다. 사랑하는 이들의 진짜 모습을 흐릿한 필터 없이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이었다.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그날 있었던 일들을 나누고,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며 응원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매일 새롭게 실감하게 되었다. 가정은 더 이상 지친 몸을 숨기는 도피처가 아니라,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함께 성장하는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었다.
사회적인 관계 역시 술이라는 매개체 없이도 훨씬 더 건강하고 안정적으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술자리 없는 만남이 어색하거나 재미없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오히려 공통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맺어진 관계 속에서 피상적인 대화 대신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깊이 있게 나누는 즐거움을 발견하게 되었다. 운동 동호회, 독서 모임, 봉사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는 술 없이도 얼마든지 유쾌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서로의 삶을 존중하고 배우며 건강한 에너지를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나는 인간적인 성숙을 경험했고, 술 없이도 충분히 즐겁고 풍요로운 사회생활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나 자신을 더욱 자유롭고 당당하게 만들어 주었다.
시간의 재구성과 끊임없는 내면의 질문
중년이라는 시간의 좌표 위에 서면서, 나는 이전보다 훨씬 더 자주 스스로에게 깊은 질문들을 던지게 되었다. '나는 진정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남은 인생을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 젊은 시절에는 막연하고 추상적으로만 느껴졌던 이런 질문들이 이제는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현실적인 고민으로 다가왔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내리는 작은 선택 하나하나,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가 바로 그 질문들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답이 되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찰의 과정에서 나에게 가장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준 것은 다름 아닌 글쓰기와 독서라는 두 가지 꾸준한 일상이었다. 거의 매일 아침, 해가 뜨기 전 고요한 시간에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며 짧게라도 글을 쓰는 습관은 나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소중한 통로가 되었다. 책 속에서 만나는 다양한 인물들의 삶과 지혜는 나의 시야를 넓혀주었고, 때로는 공감을 통해 위로를, 때로는 날카로운 통찰을 통해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글을 쓰는 행위는 내 안에 흩어져 있던 생각과 감정들을 명료하게 정리하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과정이었다. 일기든, 에세이든, 혹은 그저 떠오르는 단상들을 적는 것이든, 쓰는 행위를 통해 나는 복잡했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솔직한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 속에서 나는 때로는 지난날의 어리석음을 반성했고, 때로는 힘든 시간을 잘 견뎌온 나 자신을 따뜻하게 격려했다. 내면의 소리는 거짓이 없었고, 그 소리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나는 점차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방향과 가치를 발견하게 되었다.
맑은 정신으로 맞이하는 하루는 삶의 모든 선택의 순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충동적이거나 감정적인 판단 대신, 차분하고 이성적인 상태에서 어떤 말을 할지, 어떤 감정을 표현하고 행동할지, 누구와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낼지를 신중하게 결정하게 되었다. 이러한 의식적인 선택의 과정은 단순히 효율성을 높이는 것을 넘어, 나 자신과 타인에 대한 깊은 책임감과 존중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나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고, 관계 속에서 배려와 경청의 중요성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다. 맑은 상태에서 내리는 결정들은 후회를 최소화했고, 삶에 대한 만족감과 주체성을 높여주었다.
삶의 리듬 또한 자연스럽게 변화했다. 예전에는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술자리와 다음 날의 피로로 불규칙했던 생활 패턴이 사라지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이 자리 잡았다. 특히 새벽의 고요하고 청명한 기운과 마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세상이 아직 잠들어 있는 듯한 그 시간에 조용히 명상하거나 책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었고, 하루를 보다 차분하고 집중력 있게 보낼 수 있는 에너지를 주었다. 이러한 나의 변화는 가정의 전체적인 분위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집안에는 소란스러움 대신 차분하고 부드러운 기운이 감돌게 되었고, 가족들과 함께하는 식사의 의미, 서로에게 집중하며 나누는 진솔한 대화의 힘을 새롭게 실감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중년 이후의 삶, 의식적인 선택으로 설계하다
'중년 이후의 남은 삶을 어떻게 의미 있게 설계하고 가꾸어 나갈 것인가?' 이 중요한 물음 앞에서 나는 '의식적인 선택'이라는 확실한 나침반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술을 끊기로 한 15년 전의 결단이 바로 그 첫걸음이었고, 그 이후로 맑은 정신으로 매 순간 의식적인 선택을 해 온 과정 자체가 나의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온 원동력이었다. 이제 나는 어떤 새로운 길을 마주하든, 혹은 어떤 어려움에 부딪히든, 내가 의식하고 숙고하여 내린 결정이라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 선택의 결과가 설령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외부의 환경이나 다른 사람을 탓하기보다 그 과정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다음 선택의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생겼다.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인 평가에 휘둘리기보다 나 자신의 가치관과 내면의 기준을 따르는 용기가 생겼다. 무엇이 진정으로 나에게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기준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명확해지고 단단해졌다. 남들이 보기에는 평범하고 소박할지라도, 내가 만족하고 행복을 느끼는 삶을 꾸려나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사회와의 관계 또한 새로운 시각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에는 주로 나 자신의 성공과 만족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중년을 넘어서면서는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나의 경험과 지혜가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는 삶, 더 나아가 사회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삶을 꿈꾸게 되었다. 지난 15년간 책을 통해 배우고 깨달은 것들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 술 없는 삶을 통해 얻게 된 건강과 평온함의 가치를 전하며, 삶에서 얻은 소중한 지혜들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싶다는 열망이 생겨났다. 글쓰기를 통해 나의 경험과 성찰을 공유하는 것도 그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이렇게 다시금 세상과 건강하게 연결되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 속에서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고 싶어졌다.
흔히들 중년을 상실과 쇠퇴의 시기로 여기기도 하지만, 내가 경험한 중년은 오히려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지는 풍요로운 계절이었다. 맑은 정신을 유지하며 얻게 된 건강한 몸과 깊어진 내면, 시간 속에서 단단하게 다져진 가족 및 사회적 관계, 그리고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려는 열린 자세. 이 모든 소중한 자산들은 결코 하루아침에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매일매일의 꾸준한 노력과 의식적인 실천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결과였다. 나는 어느덧 이 '축적'의 과정을 사랑하게 되었다.
더 이상 젊은 날처럼 조급하게 결과를 갈망하거나 외부의 자극적인 흥분에 쉽게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대신, 하루하루 성실하게 쌓아가는 꾸준함의 가치를,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얻는 평온함의 소중함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이것들이야말로 중년의 삶을 더욱 깊고 풍요롭게 만드는 진정한 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앞으로도 나의 삶을 마치 한 권의 책을 써 내려가듯, 매일 조금씩 진솔한 문장들로 채워나가고 싶다. 특별하고 화려한 사건들로 가득 채우기보다는,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작은 기쁨과 성찰,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따뜻한 교감, 그리고 세상을 향한 조용한 기여들을 담담하게 기록하고 싶다. 그렇게 써 내려간 나의 삶 이야기가, 혹시라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거나 길 위에서 방황하는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나 희미한 등불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내가 중년 이후의 삶에서 꿈꾸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다.
맺음말: 당신의 삶을 바꾼 선택은 무엇이었나요?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15년 전의 선택 하나가 제 삶을 이토록 다른 풍경으로 이끌 줄은 저 자신도 몰랐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삶 속에는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들이 있고, 그 선택들이 모여 현재의 우리를 만들고 미래의 방향을 결정하는지도 모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에게도 분명 삶의 중요한 변곡점이 되었던 특별한 선택의 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결정이었나요? 그리고 그 선택은 여러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나요? 혹시 지금,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제 이야기가 작은 용기나 영감이 될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바라봅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의미 있는 삶의 문장들을 써 내려갈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