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에는 이상하게 마음이 끌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화려한 향수처럼 첫 순간에 코를 찌르는 강렬함은 아닐지라도, 돌아서면 은은하게 떠올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기분 좋은 잔향을 가진 사람들 말입니다. 꼭 무엇인가 대단한 일을 해서가 아닙니다. 그저 그 사람의 말 한마디, 눈빛 하나, 함께했던 순간의 공기 같은 것들이 우리 마음에 조용히 스며들어 오래도록 머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향기가 나는 사람’이라고 부르고 싶어집니다.
그 향기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아마도 가장 먼저, 마음의 온기로부터 피어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던 어느 날, 스치듯 들려온 한마디가 마음속 깊은 곳까지 잔잔히 번져와, 오래도록 굳어 있던 감정이 천천히 풀어지던 기억이 있나요? 특별히 꾸미거나 과장하지 않아도, 그 말에는 상대방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배려가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그런 말은 고요한 날, 잊고 지낸 감정을 깨우는 봄바람처럼 마음 깊은 곳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줍니다. 상처 입은 마음을 발견했을 때, 요란하게 호들갑 떨지 않고 그저 조용히 다가와 어깨를 토닥여주는 손길. 괜찮다고, 다 지나갈 거라고, 말없이 건네는 눈빛 속에는 세상의 어떤 위로보다 더 깊은 힘이 담겨 있곤 합니다. 마치 따스한 봄볕 아래 잠시 웅크리고 앉아 언 몸을 녹이는 것처럼, 그 사람 곁에서는 세상의 소란을 잠시 잊게 하는 작은 안식처를 발견한 듯, 경직되었던 마음의 근육들이 부드럽게 풀립니다.
그런가 하면, 그 향기는 깊은 경청의 자세에서 비롯되기도 합니다. 세상에는 말하는 사람보다 들어주는 사람이 더 귀하다고들 하죠. 내 복잡하고 두서없는 이야기를, 때로는 나조차 정리되지 않은 감정의 편린(片鱗)들을, 재촉하거나 판단하는 기색 없이 끝까지 묵묵히 들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그런 사람 앞에서는 신기하게도 마음의 빗장이 스르르 열립니다. '이런 이야기까지 해도 될까' 망설였던 속마음을 꺼내놓게 되고, 이야기를 마쳤을 때는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낍니다. 상대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행위는, 당신의 존재와 당신의 이야기가 소중하다고 말해주는 가장 강력한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비단 슬픔이나 고민뿐만이 아닙니다. 기쁜 소식을 전했을 때, 마치 자신의 일처럼 환하게 웃으며 축하해주는 진심. 그 앞에서 우리의 기쁨은 두 배, 세 배가 됩니다. 그저 자리를 지키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깊은 연대감과 위안을 얻습니다.
진심이라는 향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꾸미지 않은 미소, 솔직하게 반짝이는 눈빛에는 사람을 무장 해제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진심과 가식을 구분합니다. 계산 없이 건네는 작은 친절, 누군가의 좋은 점을 발견했을 때 아낌없이 표현하는 칭찬, 조용히 뒤에서 보내주는 응원의 마음. 이런 것들은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오랜 시간 정성 들여 짜인 비단처럼 그 사람의 결을 이루는 빛깔입니다. 이유 없이 그냥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 곁에 있으면 나도 덩달아 좋은 에너지를 얻게 되는 사람. 그들은 존재 자체로 주변을 밝히는 등불과 같습니다. 그리고 참 신기하게도, 그런 사람 곁에 있다 보면 나 자신도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피어납니다. 그의 향기에 물들듯, 나 역시 누군가에게 기분 좋은 향기를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되는 것이죠.
이 모든 향기는 결국 ‘머무름’이라는 형태로 우리에게 남습니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 속에서도 유독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주 만나지 못해도 문득 그리워지고, 자리를 비웠을 때 그 빈자리가 유독 크게 느껴지는 사람.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은 마치 잘 쓰인 한 편의 시처럼, 혹은 마음에 꼭 드는 그림처럼, 시간이 흘러도 빛바래지 않고 우리 기억 속에 하나의 장면으로 저장됩니다. 바람결처럼 다가와 조용히 위로가 되어주었던 순간, 마음이 머무는 인사를 건네받았던 기억, 조급해하지 않고 나를 기다려주었던 배려. 이런 것들은 화려한 사건보다 더 깊숙이 우리의 마음에 흔적을 남깁니다. 마치 좋은 향기가 옷깃에 배어 은은하게 지속되듯, 그 사람의 존재는 우리 삶에 잔잔하지만 분명한 영향을 미칩니다. 때로는 침묵 속에서도 그 사람의 존재는 충분한 위로가 되고, 혼자 있는 시간마저 외롭지 않게 만들어줍니다. 뒷모습마저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건, 아마 그 사람이 남기고 간 긍정적인 여운 때문일 겁니다.
향기가 나는 사람은 어쩌면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저 조금 더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조금 더 진실하게 사람을 대하며, 조금 더 깊이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 사소해 보이는 태도들이 모여 다른 이들의 마음에 기분 좋은 향기를 남기는 것이겠지요. 그 향기는 결코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삶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그런 향기를 남기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거창한 목표나 노력이 아니더라도 괜찮습니다. 오늘, 당신의 말 한마디에 작은 온기를 담아보는 것. 누군가의 이야기에 조금 더 귀 기울여보는 것. 스쳐 지나가는 이에게 진심 어린 미소 한번 건네보는 것. 그런 작은 순간들이 모여, 어느새 당신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기분 좋은 향기로 남아있게 될지 모릅니다. 그렇게 서로에게 좋은 향기를 나누며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조금 더 따뜻하고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 함께 있는 시간이 선물처럼 느껴지는, 그런 향기로운 관계들이 우리 주변에 더 많아지기를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