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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가장 다정한 목소리

by 정성균

언제부터였을까. 잘 모르겠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그랬던 것 같다. 북적이는 카페 구석, 살짝 삐걱이는 나무 의자에 앉아 있을 때. 창밖 사람들 웃음소리가 꼭 다른 세상 소리처럼 아득하게 들리던. 분명 여기, 사람들 사이에 있는데도 내 안은 늘 서늘했다.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오히려 더 또렷해지는, 그 침묵 같은 공허함. 혼자 있는 것도 아닌데 혼자인 기분. 참 지독했다, 그 외로움은.


무엇이 나를 이 보이지 않는 섬에 데려다 놓았을까.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마음이었을까. 세상이 정해놓은 ‘괜찮은 삶’의 모습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추려 애썼기 때문일까. 어쩌면… 타인의 시선에 나를 온통 내어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정작 내 안의 아주 작은 목소리는, 듣지 못한 채로. 아마 그래서였을까. ‘왜 나만 이럴까’ 자문하는 밤들이 길었다.


어느 늦은 밤이었다. 하루 종일 애쓴 몸을 뉘었는데 잠은 오지 않고, 부엌 싱크대에서 똑, 똑,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만 또렷하던. 그 밤에 문득, 결심 같은 것이 찾아왔다. 더 이상 바깥에서 나를 찾으려 애쓰지 말자고. 남들이 어떻게 보든, 그건 그들의 몫으로 남겨두자고. 내 삶의 핸들은 내가 잡아야 하지 않겠냐고. 서툴고 부족해도, 이제는 나를 한번 믿어보자고. 설거지를 마치고 아직 물기가 남은 손으로, 창밖 가로등 불빛만 희미하게 일렁이는 어둠을, 아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물론, 결심 다음 날부터 모든 게 마법처럼 달라지진 않았다. 오래된 습관은 얼마나 질긴지. 타인에게 기대려는 마음은 불쑥불쑥 고개를 쳐들었다. 남들의 시선을 그냥 ‘배경’처럼 지나치게 두는 연습, 그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가령, 내 옷차림이나 결정에 누가 흘깃,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 예전의 나는 밤새 그 이유를 곱씹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이상해 보였나? 하지만 이제는, 아주 잠깐 가슴이 서늘해져도 ‘아,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나와는 다르네.’ 하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리고 그냥, 내 갈 길을 간다. 처음엔 그게 잘 안 돼서 닳은 운동화 코만 내려다볼 때도 많았지만.


특히 어려웠던 건, 나도 모르게 쓰고 있던 ‘착한 사람’ 가면을 알아차리고 내려놓는 일이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거절 못 해서 속으로 끙끙 앓고, 마음에도 없는 미소를 짓던 나. 그 갑갑한 옷을 벗는 건, 뭐랄까, 발가벗겨진 기분이랄까. 두렵고 또 민망했다. “미안하지만,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아.” 이 한마디를 꺼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을 뒤척였는지 모른다. 그 말 덕분에 때로는 서운하다는 눈빛을 받아야 했고, 어떤 관계는 조금 멀어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마음 한구석이 아릿했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다독였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수는 없어. 나에게 먼저 솔직해지자.’ 세상의 기준보다 내 안의 작은 나침반을 따르기로 했다. 아주 조금씩, 비틀거리면서.


그렇게 걷는 길 위에서도 예고 없이 푹 꺼지는 구덩이는 있었다. ‘이 정도면 됐어!’ 하고 안심했던 바로 다음 날, 어이없이 무너지기도 했다. 밤새 공들인 일이 “글쎄…” 하는 한마디에 물거품이 되었을 때. 믿었던 누군가의 날 선 말에 베인 듯 마음이 쓰라린 밤. 그런 나를 발견하면… 숨쉬기가 조금 힘들어졌다. 세상의 색깔이 잠시 흐릿해지는 기분이었다. 침대 속으로 도망쳐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온종일 나오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스스로를 형편없다고 몰아붙이거나, 억지로 웃으며 괜찮은 척하지는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가슴을 짓누르는 먹먹함, 이유 없이 흐르는 눈물. 그런 감각들을 피하지 않고 느꼈다. 김이 서린 욕실 거울 앞에서 아주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거나, 창밖으로 보이는,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를 멍하니 바라보며 느리게 숨을 내쉬었다. ‘힘들구나. 그래, 오늘은 그냥 실컷 힘들어해도 괜찮아.’ 스스로에게 건네는 조용한 허락. 아직 딱지가 앉지 않은 상처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해 주었다. 마치 어린 시절의 나를 안아주듯이. 그것으로 되었다.


시간이 흘렀다. 문득 돌아보니,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내 발자국들이 길 위에 남아 있었다. 위태롭게 흔들리면서도 앞으로 내디뎌 온 시간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던 일을 마침내 끝내고 마셨던, 늦은 밤 편의점 앞에서의 손이 시리도록 차가운 그 캔맥주. 목을 타고 넘어가는 짜릿함. 깊은 밤, 외로움이 스멀스멀 온몸을 감쌀 때 이불속에서 희미한 스마트폰 불빛에 의지해 남몰래 중얼거렸던 수많은 다짐과 다독임. 넘어지고 깨지면서도 ‘딱 한 번만 더’를 외치며 다시 일어서려 했던 그 마음들. 빛나는 성취는 아니었지만, 그것들은 나만이 아는 단단한 성장의 증거였다. 그럴 때면 가슴 한구석이 조용히 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 안의 누군가가 ‘애썼다’고 등을 토닥여주는 것 같았다.


그제야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어둡고 힘겨웠던 순간에도, 끝까지 내 곁을 지킨 건 나 자신이었음을. 물론, 내 안에는 여전히 “이것 봐, 넌 또 부족하잖아!”라고 핀잔을 주는 목소리도 살고 있다. 꽤나 자주, 꽤나 크게. 그 목소리에 속수무책으로 흔들릴 때도 아직 많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것 또한 나라는 것을. 그러면서도, 조금 더 깊고 따뜻한 내면의 친구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 애쓴다. 그 친구는 무조건 괜찮다고만 하지 않는다. 때로는 “정말? 네 마음이 그렇다고?” 혹은 “잠깐, 너무 달리기만 하는 거 아니야?” 하고 부드럽지만 예리하게 묻기도 한다. 내가 나에게 더 솔직해지도록 이끌어준다. 세상의 기준에 지쳐 휘청이던 날에도, 말 못 할 슬픔에 목구멍이 뜨거워지던 밤에도, 결국 아무 말 없이 나를 기다려주고 안아준 것은 그 친구, 내 안의 가장 다정한 목소리였다.


어쩌면 삶이란 게, 이렇게 서툴게 자신을 알아가고, 이해하고, 마침내 괜찮다고 다독여주는 과정 그 자체가 아닐까. 거창한 성공이나 박수갈채가 아니어도 좋다고. 그저 하루를 살아낸 나를 발견하고, “오늘도 수고했어” 하며 스스로에게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캐모마일 향이 은은한 허브티 한 잔을 아끼는 노란 머그컵에 따라줄 수 있다면. 타인의 인정을 갈망하기보다 내가 먼저 나에게 다정한 눈길을 건네고, 그 온기를 잃지 않는다면. 이런 생각들이 스며들면서, 조금씩 달라진 것들도 있다. 예전에는 늘 누군가와 함께여야 했던 주말 오후를, 이제는 혼자서도 곧잘 즐기게 되었다. 푹신한 소파에 기대앉아 표지가 닳은 시집을 뒤적이거나, 그냥 멍하니 구름이 느리게 흘러가는 하늘을 보는 시간. 꽤 괜찮다. 관계에서 버겁다 느낄 때, 예전처럼 끙끙 앓기보다 조금은 더 편안하게 내 마음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어렵지만.


오늘도 나는 내 안의 나에게 말을 건다. “오늘은 좀 어때?” 하고. 때로는 시큰둥한 대답이 돌아올 때도 있다. 그래도 이 대화를 멈추지 않으려 한다. 앞으로 또 어떤 예측 불가능한 바람이 불어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하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안다. 내 곁에는 늘 내가 있다는 걸. 그래서 조금은, 괜찮다.


"고맙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어떤 순간에도 나를 완전히 놓아버리지 않았던 너에게. 서툴고 부족해서 자주 넘어졌지만, 그래도 끝까지 나의 편이 되어주었던 너에게. 너의 묵묵한 기다림과 때로는 정신 번쩍 들게 했던 질문들이 있었기에, 내가 여기에 이렇게 숨 쉬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나는 나와 함께 걷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삶이라는 길 위를. 때로는 질퍽하고 때로는 햇살 좋은, 알 수 없는 길을. 외롭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전처럼 사무치지는 않는다. 내 안의 가장 오랜 친구와 함께니까.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기도 하고, 흐릿했던 세상의 색깔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여정은 아마도 계속될 것이다. 넘어지고, 일어서고, 또 헤매면서. 그러면서 더 깊어지고 조금은 더 너그러워지겠지. 나와 함께 걷는 이 길 위에서, 나는 비로소 나로서 숨 쉬는 법을 배우는 중인지도 모른다. 어디로 향하는 길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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