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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의 숨겨진 주인공, 어머니

by 정성균

창밖은 아직 심연과 같은 어둠에 잠겨 있다. 거리의 인공적인 불빛들마저 대부분 그 빛을 거두고, 오직 몇몇 가로등만이 제 자리를 지키며 희미한 원을 그리고 있는 시간. 마치 거대한 도시 전체가 잠시 호흡을 멈춘 듯, 혹은 이제 막 시작될 하루를 위해 숨을 고르는 듯한 절대적인 정적이 감돈다. 연례행사처럼, 그러나 조금은 예정보다 이르게 의식이 부유하듯 떠올랐다. 몸을 일으킬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의식의 표면을 감도는 어둠과 고요함에 잠시 몸을 맡긴다. 방 안을 채운 공기는 밤의 시간을 머금어 서늘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아늑한 밀도를 지니고 있다. 들리는 소리라곤 아주 미세하게 고막을 간질이는 시계 초침 소리, 혹은 저 멀리서 희미하게 전달되어 오는 냉장고의 작동음 정도가 전부다. 이런 완벽한 고요의 순간에는, 일상의 분주함 속에서는 미처 가닿지 못했던 생각의 편린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곤 한다.


무심코 손을 뻗어 더듬은 스마트폰 액정 위로 날짜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5월 5일. 어린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천진함과 가능성이 찬미받는 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 되는 날. 달력의 붉은 표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설렘을 약속하는 기호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깊은 새벽의 정적 속에서, '어린이날'이라는 단어가 촉발하는 감정의 연쇄는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들뜨고 즐거웠던 유년의 기억, 탐스러운 선물 꾸러미의 환영보다는 훨씬 더 근원적이고 깊은 곳에서부터 하나의 얼굴이, 하나의 존재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바로 나의 어머니. 아이들의 날에, 어른이 된 나는 어째서 나 자신이 아닌 어머니를 가장 먼저 마음에 담게 되는 것일까. 그 물음은 새벽의 고요 속에서 잔잔한 파문처럼 번져나간다.


어쩌면 어머니 역시, 나와 같은 이런 시간에 깨어 하루를 준비하셨을 것이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부엌에서 홀로 불을 밝히고, 가족들의 하루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놓던 그 모습. 고요히 쌀을 씻고, 정성껏 국을 끓이고, 정갈하게 상을 차리던 그 손길들. 그 새벽의 정적 속에서 어머니는 과연 어떤 상념에 잠겼을까. 곧 다가올 하루의 고단함을 예감하면서도, 잠든 아이의 평온한 얼굴을 떠올리며 희미한 미소를 짓지는 않으셨을까. 만약 그날이 오늘 같은 어린이날이었다면, 아이에게 줄 선물을 숨겨둔 곳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아이가 얼마나 기뻐할지 가슴 설레지 않으셨을까. 그리고 어쩌면 그 고요한 시간 속에서, 당신의 어머니를, 까마득히 멀어진 당신의 어린 시절 속 어느 장면을 문득 떠올리며 잠시 상념에 잠기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친다. 세대를 이어 반복되는 이른 새벽의 모성(母性)은, 어쩌면 시간 속에 새겨진 지워지지 않는 문양과 같은 것일까.


유년의 어린이날은 언제나 찬란한 색채로 기억된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한 착각 속에, 나는 한껏 들떠 거리를 활보했다. 갖고 싶었던 것을 마침내 손에 넣었을 때의 환희, 친구들에게 자랑하며 으쓱대던 뿌듯함, 온종일 이어지는 특별한 대우 속에서의 만족감. 그 모든 빛나는 순간의 무대 뒤편에는, 사실 언제나 나의 어머니가 '숨겨진 주인공'으로 서 계셨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간 놀이공원의 소란스러움 속에서, 나는 목청껏 소리 지르며 최신 놀이기구를 향해 달려갔었다. 뒤에서 나를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척했을 때도 있었고, 이것저것 사달라고 떼를 쓰며 잠시 심통을 부렸던 기억도 난다. 그런 나를, 어머니는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셨을까. 그저 나의 즐거움이 당신의 기쁨이었기에, 나의 투정과 어리광마저도 너그러이 받아주셨던 것일까. 아니면 혹시, 속으로는 조금 서운하거나 힘겨웠지만 애써 미소 뒤에 그 마음을 감추셨던 것일까. 저녁이 되어 녹초가 된 나를 업고, 혹은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가로등 불빛 아래 언뜻 비쳤던 어머니의 지친 표정을, 나는 왜 그토록 무심하게 지나쳤을까. 그날의 진짜 주인공은 신나게 뛰어놀던 내가 아니라, 나의 즐거움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던 당신이었음을 너무 늦게 알았다.


이제 그 시절을 돌아볼 수 있는 나이가 되고 보니, 그때 내가 누렸던 하루의 행복은 결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그 하루를 위해 어머니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을까. 한정된 예산 안에서 아이가 가장 기뻐할 만한 선물을 고르기 위해 고민하고,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서 아이를 잃어버리지 않으려 노심초사하고, 아이의 요구를 하나라도 더 들어주려 애쓰면서 정작 당신 자신은 뒷전으로 밀려났을 그 수많은 순간들. 그 모든 섬세한 계획과 수고, 그리고 무엇보다 변함없는 사랑이 있었기에 나의 어린 시절은 그토록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었다. 당연하다고 믿었던 모든 것들이 실은 당연하지 않은, 한 사람의 헌신 위에 세워진 것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가슴 저편에서부터 잔잔한 파동 같은 것이 밀려온다. 그것은 감사함이면서 동시에 알 수 없는 미안함이기도 하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 테다. 이 새벽, 창밖의 가로등 불빛이 스러지고 동녘 하늘이 미명(微明)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이 시간에, 혹은 잠결에 뒤척이며, 세상의 수많은 어른이 된 아들딸들이 나와 비슷한 상념에 잠겨 있을 것이다. 한때는 세상의 중심이었던 우리가 이제는 그 중심에서 비켜나, 우리를 그 중심에 세워주었던 존재를 헤아려보는 시간. 어린 시절에는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부모님의 마음과 희생의 무게를 이제야 어렴풋이 감지하며, 코끝이 찡해지는 경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철이 들고 나서야 알게 되는 진실들 앞에서 우리는 숙연해진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우리를 다시 한번, 영원히 그분들의 아이로 되돌려 놓는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세계가 확장되는 동시에, 자신을 존재하게 한 뿌리를 더 깊이 인식하게 되는 과정인 듯하다.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꾸려나가면서 비로소 부모님이 걸어왔을 길의 무게를 짐작하게 되고, 그분들이 짊어졌을 책임감의 깊이를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깨닫는다. 나의 성장이란 결코 나 혼자만의 성취가 아니며,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헌신과 사랑이라는 자양분 위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특히 어머니라는 존재는, 그 시작부터 지금까지 나의 삶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하며 마르지 않는 샘처럼 끊임없이 나를 지지해주고 있음을.


그래서일까. 오늘 같은 어린이날은 이제, 내가 선물을 받던 날이 아니라, 내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인 어머니의 존재 자체를 다시금 확인하고 감사하는 날로 자리매김한다. 내 유년의 캔버스를 가장 아름다운 색깔로 칠해주기 위해 당신이 아낌없이 내어주었던 수많은 시간과 정성, 그리고 무엇보다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사랑. 그 모든 것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는 평범하지만 위대한 진실 앞에, 새벽의 정적 속에서 가만히 고개를 숙인다. 당신이야말로 내 모든 어린 시절의 숨겨진, 그리고 가장 빛나는 주인공이었다.


창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여명의 빛줄기가 어둠을 서서히 밀어내고 있다. 밤새 응축되었던 고요함이 조금씩 흩어지고, 세상은 다시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 채비를 한다. 곧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올 것이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미소 짓겠지. 그리고 오늘 하루, 문득문득 새벽의 이 감정을 다시 떠올릴 것이다.


어린이날 아침이 밝아온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행복 속에서 빛나는 하루를 보내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그 빛나는 하루의 진짜 주인공이었을, 또 주인공이 되어주고 있을 세상의 모든 위대한 어머니들에게, 이른 새벽의 진심을 담아 가장 깊은 존경과 감사를 전한다. 당신들의 조건 없는 사랑과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의 삶은 비로소 의미를 지니고 계속될 수 있다. 당신은 영원히, 어둠 속에서도 길을 밝히는 우리의 별이며 하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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