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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흐르는 시간 속, 붙잡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by 정성균

어느 날 문득, 익숙했던 방 안의 공기가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늘 바라보던 그림조차 생경했고, 오랫동안 밟았던 바닥의 감촉마저 이전과는 달랐습니다. 삶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지금 나는 어디쯤 흘러가고 있을까, 이 길이 정말 내가 원하는 곳으로 향하는 것일까, 끊임없이 질문이 떠올랐지만 쉬이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가슴 한켠에는 작은 불씨 같은 희미한 빛이 남아 있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발견한 그 빛은 불안했지만, 어쩌면 나를 이끌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쉽사리 놓을 수 없었습니다. 창밖 풍경은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듯 변했고, 푸르렀던 잎들은 붉게 물들어 차가운 바람에 흩어질 것이며, 또 다른 색깔이 찾아올 것입니다. 어제는 편안했던 하루가 오늘은 어쩐지 모르게 불편하게 다가왔고, 늦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아파트의 풍경은 묘한 기분을 안겨주었습니다.


시간 때문인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내 마음 때문인지,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마음 깊은 곳에서 잔잔한 물결처럼 불안감이 계속 일렁였고, 고요한 호수 아래 숨겨진 소용돌이처럼, 그 불안은 언제 터져 나올지 모른 채 조금씩 나를 잠식해 갔습니다.


문득, 숨을 크게 쉬고 싶어졌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들을 잠시 멈추고, 내가 걸어온 발자국들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삶의 흐름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 건. 마치 옷감의 실 한 올이 풀리듯, 작은 균열이 점점 더 크게 번져나갔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매일 똑같은 날들이 이어졌지만, 속은 늘 미묘하게 달랐습니다. 잔잔한 강물 아래 숨겨진 빠른 물살처럼, 겉은 고요해도 속은 늘 흔들렸습니다. 예전엔 분명했던 일들이 이제는 안개 속을 걷는 것처럼 희미하게 느껴졌습니다.


매일 비슷한 하루, 감정의 기복도 크지 않았습니다. 그저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겼고, 큰 변화 없이 흘러가는 대로 두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예상 못한 일들이 불쑥 나타났고, 계획은 어긋나고, 만남은 흐릿해지고, 관계는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작은 흔들림이라 여겼지만, 그것은 변화의 시작이었습니다. 작은 돌멩이 하나가 호수에 파문을 일으키듯, 그 변화는 점점 커져 내 삶 전체를 흔들었습니다. 문득, 세상 모든 게 불안하게 느껴졌고, 금방이라도 깨질 유리 조각을 쥔 듯 불안했습니다.


별 생각 없이 던진 말 한마디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고, 스쳐 지나간 차가운 표정 하나가 밤잠을 설치게 했습니다. 딱히 이유 없이 답답했고, 작은 실수에도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몸은 익숙한 곳에 있었지만, 마음은 낯선 곳을 헤매는 듯했고,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때, 어렴풋이 알았습니다. 우리가 걷는 이 길 위엔, 예측하기 어려운 변화라는 그림자가 늘 있다는 것을. 누구에게나 예외는 없었고, 영원할 거라 믿었던 관계도, 평범한 하루하루도, 결국엔 모습을 바꾸더군요. 처음엔 싫었지만,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마치 파도에 휩쓸린 나뭇잎처럼 흔들리는 내 모습이 힘없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았습니다. 변화는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오히려 맞서지 않을수록 더 크게 다가온다는 것을.


예측하기 힘든 시간은 불쑥 찾아왔고, 우리의 평온한 삶에 예고 없이 찾아와 흔들었습니다. 때론 조용히 스며들고, 또 어떤 날은 폭풍처럼 몰아쳤습니다. 사람은 안정을 바라지만, 세상은 늘 움직입니다. "만물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오래된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세상은 늘 흐르고 변하고, 붙잡으려 해도 빠져나가는 물처럼,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단단해지려 애썼고, 다가올 미래를 짐작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걸 미리 알 수는 없었고, 짐작은 빗나가고, 준비는 늘 부족했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마음이었습니다. 변화 앞에서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어떤 마음으로 견디느냐, 어떤 길을 택하든, 그 길에서 나를 놓치지 않는 것, 그것이 살아가는 힘이 될 것입니다.


나도 그런 시간을 여러 번 겪었고, 버티기 힘든 날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던 순간들, 세상과 떨어져 혼자 있고 싶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 한쪽에 작은 무언가가 남아 나를 붙잡았습니다. 대단한 건 아니었고, 창문을 열었을 때 느껴지는 바람, 익숙한 커피 향, 책 속의 한 구절 같은 것들이 잠시나마 나를 편안하게 해줬습니다.


사람은 쉽게 흔들리지만, 또 생각보다 잘 일어섭니다. 작은 희망 하나, 따뜻한 시선 하나만 있어도 다시 걸을 수 있고, 삶은 그렇게 이어져 갔습니다. 크게 바꾸지 않아도, 조금씩 다듬으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예측 불가능성은 늘 우리 곁에 있지만, 그것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시선을 조금만 바꾸면, 변화 속에도 규칙이 있고, 낯선 것 속에도 익숙함이 있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때로는 그 틈 사이에서 새로운 것이 피어나기도 합니다.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덜 불안합니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저 여러 날을 보내면서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견딜 수 있는 마음의 크기가 넓어졌고, 낯선 것을 바라보는 눈빛이 차분해졌습니다. 누군가는 변화를 기회로 만들라고 하지만, 물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 말조차 버거운 날이 있고, 그럴 땐 그냥 솔직해져도 됩니다. 지금은 불안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 감정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조금씩 가라앉습니다.


내일은 또 어떤 변화가 기다릴지 알 수 없지만, 오늘 하루를 잘 버텼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어떤 확신도 없지만, 멈추지 않는다면 길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삶이란, 그런 식으로 흘러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가장 어두운 시간에도 인간은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어떤 이의 말처럼,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삶의 작은 의미들을 발견하며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흐르는 시간 속,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을 억지로 붙잡기보다, 그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오늘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가는 방식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언젠가 이 모든 여정을 끝냈을 때, "우리가 탐험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우리는 처음 출발했던 곳을 알게 될 것이다"라는 말처럼,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될 것입니다.


삶은 때때로 우리에게 예기치 않은 질문을 던지고, 익숙했던 풍경이 낯설게 느껴지고, 당연하다고 믿었던 관계가 흔들릴 때, 우리는 길을 잃은 듯 막막함에 휩싸입니다. 마치 끝없이 펼쳐진 미로 속에 홀로 남겨진 기분으로,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어떤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할지 알 수 없어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갑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삶은 늘 변화의 연속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어린 시절 뛰놀던 동네 골목길은 어느덧 높은 건물들로 가득 채워졌고, 함께 웃고 울던 친구들은 각자의 삶의 터전으로 흩어졌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우리는 매 순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변화는 때로는 달콤한 설렘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낯선 불안감을 동반합니다. 익숙한 것과의 이별은 언제나 아쉬움을 남기고,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를 망설하게 만듭니다. 마치 어둠 속을 홀로 걸어가는 아이처럼, 우리는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공포에 휩싸입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도 작은 별빛을 발견하듯, 불안함 속에서도 희망의 조각을 찾아내려는 우리의 노력은 멈추지 않습니다. 넘어지고 부딪히고 상처 입으면서도, 우리는 다시 일어설 힘을 내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삶은 그렇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여정인지도 모릅니다.


결국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변하지 않는 '나'라는 존재입니다. 외부의 어떤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내면의 중심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한다고 할지라도, 우리 안의 고유한 가치와 신념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지만, 때로는 굳건한 의지로 우리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마치 거센 바람 속에서도 뿌리 깊은 나무처럼, 우리는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우리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삶은 예측 불가능한 퍼즐과 같습니다. 때로는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해 답답하기도 하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조각이 나타나 혼란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퍼즐을 맞춰나갑니다. 완벽한 그림을 완성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성장하고 배우며 더욱 단단해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조각을 맞춰 넣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이라는 퍼즐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경험합니다. 영원할 것 같던 사랑도, 굳건했던 우정도, 때로는 예기치 않은 순간에 깨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슬픔과 아픔 속에서도 우리는 새로운 관계를 맺고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합니다. 마치 낡은 앨범의 페이지를 넘기듯, 우리는 과거의 기억들을 추억하며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향해 나아갑니다. 삶은 그렇게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붙잡을 수 없는 순간들의 기억입니다. 기쁨의 순간, 슬픔의 순간, 사랑의 순간, 그리고 성장의 순간들입니다. 그 모든 순간들이 모여 우리라는 존재를 만들어냅니다. 때로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때로는 아픈 상처로 남아 우리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됩니다. 마치 나이테처럼, 우리의 삶은 그렇게 겹겹이 쌓여가는 시간의 흔적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흔적들은 앞으로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를 보여주는 소중한 지표가 될 것입니다.


"가장 어두운 시간에도 인간은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빅터 프랭클의 이 말은 고통의 한가운데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 문장이었습니다. 살다 보면 이유를 알 수 없는 시간과 마주하게 되고,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붙들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르고, 앞서간 날은 되돌릴 수 없고, 다가올 내일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중요한 건 지금, 바로 이 자리입니다. 내가 서 있는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내느냐가 나의 하루를 만들고, 결국 삶을 채워갑니다. 문득, 삶은 계속 나를 앞으로 밀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체된 것처럼 보여도, 어떤 날은 스쳐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 마음이 움직이고, 익숙한 거리의 풍경 속에서도 오래 머물던 생각이 달라지곤 합니다. 언젠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게 될 때,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일지도 모릅니다. 출발했던 자리에 다시 서보면, 그곳이 예전과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T.S. 엘리엇이 말했던 것처럼, 여정을 끝낸 후에야 비로소 내가 걸어온 길과 내 안에 남은 것들을 알게 됩니다. 지금은 조금 불확실하고, 명확하지 않더라도 하루를 무사히 건너는 일에 집중합니다. 그 안에 생각보다 많은 의미가 깃들어 있다는 걸, 조용한 순간마다 배워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걷는 길 위에는 늘 변화가 숨어 있다는 걸,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이 문장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우리는 다가올 변화에 두려워하기보다는, 그 변화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성장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삶은 멈추지 않고 흘러가기에, 우리 또한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때로는 거센 바람에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뿌리 깊은 나무처럼 다시금 우리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우리는 더욱 성숙하고 단단한 존재로 변화해 나갈 것입니다. 삶의 불확실성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는 시련이자 성장의 발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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