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유 없이 마음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뭐라 설명할 순 없지만, 어딘가 허전하고 조용한 불안이 안쪽으로 퍼져나갑니다. 생각이 자꾸 헝클어지고, 머릿속은 잿빛 안개처럼 멍하니 흐려지기만 합니다. '나는 잘 가고 있는 걸까' 같은 생각이 불쑥 떠오르면, 괜히 책상 앞에 앉아 오래된 공책을 꺼내 들게 됩니다. 한참을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펼쳐본 첫 장. 종이에서 스치는 잉크 냄새, 익숙한 감촉. 그 안에서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멈칫하다가, 결국은 아무 말이나 적습니다. "오늘은 어쩐지 낯섭니다.", "자꾸 그 사람이 생각납니다." 흐릿한 문장들이 종이 위에 내려앉고, 생각보다 감정이 먼저 흘러나옵니다. 굳이 붙잡으려 하지 않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는 일. 그렇게 몇 줄 적고 나면, 어지럽던 마음이 조금 정리됩니다. 달라진 건 없지만, 그래도 어쩐지, 저 자신과 조금 가까워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페이지를 넘기면 마주하는 건 하얀 여백입니다. 그 빈 공간은 때로 막막하고,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게 하죠. 물론 멋진 문장을 쓰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문장이 다소 끊기더라도 괜찮고, 말이 되지 않는 단어 몇 개가 흩어져 있어도 무방합니다. “오늘은 조금 낯설다”, “자꾸 그 사람이 떠오른다” 같은 흐릿한 문장들이 오히려 더 깊고 솔직하게 다가오는 법입니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억지로 붙잡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흘려보내는 일. 어쩌면 그 단순한 행위가 마음속 복잡하게 얽힌 매듭을 천천히 느슨하게 풀어주는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방향을 잃은 것처럼 느껴졌던 날에도, 뜻밖의 한 문장 속에서 어렴풋한 실마리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하니까요. 글은 완성된 문장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감정을 통과시키는 창처럼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정제되지 않은 말의 조각들 속에서 오히려 마음은 가장 정직한 얼굴을 드러냅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글쓰기는 조용한 회복의 시간이 됩니다.
글을 쓴다는 건, 닫혀 있던 창문을 살짝 열어 환기를 시키는 일과 닮아 있습니다. 마음속에 쌓여 있던 먼지를 털어내고, 외면하고 있던 감정을 마주 보게 해 줍니다. 억눌렀던 분노, 설명하기 어려운 슬픔, 이유 모를 불안감. 그것들을 굳이 포장하거나 순화하려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거칠고 조잡하더라도, 솔직하게 종이 위에 올려놓는 것만으로도 한층 가벼워진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감정의 한복판에서 벗어나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마치 한바탕 비가 쏟아진 후, 맑게 갠 하늘을 바라보는 것처럼요.
글쓰기를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연습'이라 말한 나탈리 골드버그는, 그 목소리가 진실에 가 닿는다고 했습니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글쓰기는 결국, 스스로가 외면하고 있던 감정과 생각을 포착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오래 전의 기록이 담긴 상자를 열어보면, 삐뚤빼뚤한 글씨로 채워진 일기장이 있습니다. 서툴렀던 문장, 정돈되지 않았던 감정들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날은 정말 힘들었다”, “왜 이렇게 좋아했을까, 웃기네” 같은 말들이 낡은 종이 위에 적혀 있죠. 지나간 감정이 다시 되살아나는 순간,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때로는 어릴 적 나를 향해 미소 짓게 되고, 때로는 그 시절의 아픔에 조용히 마음이 아려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모든 기록이 나의 시간을 증명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유난히 감정이 격했던 어느 날, 펜을 드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아무 말이나 쏟아낼 것 같은 날, 억지로라도 공책을 펼쳤습니다. "짜증 나", "왜 나만 이런 거지", "다 싫어" 같은 문장들이 줄줄이 쏟아졌고, 말이 되지 않는 단어들이 종이를 가득 메웠습니다. 글이 아니라 감정의 배설에 가까운 그 순간조차도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쓰고 나니, 조금은 진정된 마음이 남았습니다. 여전히 모든 것이 해결되진 않았지만, 끓어오르던 감정은 어느새 잦아들고, 마음 한편에 아주 작은 여유가 자리하기 시작했죠.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과 에세이에서는 감정을 흘려보내는 통로로서의 글쓰기 힘이 자주 등장합니다. 억눌린 슬픔이 글을 통해 조금씩 흘러나올 때, 우리는 그 감정을 더 이상 품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를 얻게 됩니다.
글을 계속 써오면서 자연스럽게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감정을 반복하고 있다는 점. 매번 다르게 느껴지는 듯하지만, 그 안에는 나만의 흐름이 있었습니다. 상처받는 순간, 불안해지는 상황, 회피하고 싶어지는 패턴들. 글은 거울처럼 저를 비추며, 제가 무심히 지나쳤던 내면의 진실을 조용히 들려줍니다. 피하고 싶던 감정이나 행동을 직면하게 될 때도 있지만, 오히려 그 순간 덕분에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글을 쓰는 동안 감정이 조용히 정돈된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그녀에게 글쓰기는 내면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방식이었고, 그 고요한 작업이 삶의 균형을 되찾는 길이 되었습니다.
결국 글쓰기는, 멋진 문장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에 가깝습니다. 감정을 꾸미거나 감추지 않고, 그저 종이 위에 놓는 일. 때로는 부끄럽고, 때로는 눈물이 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조금씩 더 알아가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적는 짧은 문장 하나, 무심코 스쳐간 장면에서 느낀 감정 하나. 그런 작고 조용한 기록들이 언젠가 나를 지탱해 주는 중요한 지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글을 쓴다는 건 세상의 시계가 아닌, 나만의 시계를 따르는 일입니다. 그 속도는 때로 아주 느릴 수 있지만, 마음에 가장 가까운 길로 나를 이끕니다.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는 삶의 본질을 회복하는 내밀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스스로를 모른 채 살아간다는 건, 캄캄한 밤길을 손전등 없이 걷는 것과도 같습니다. 불안하고 두렵죠. 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은, 아주 희미하게나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작은 인식이 방향이 되고, 조금 더 명확한 선택을 가능하게 합니다. 삶의 수많은 갈림길 앞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나침반이 되어주기도 하고요.
글을 쓴다는 건, 결국 조용한 방식으로 자신을 다듬어가는 일입니다.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내면을 단단하게 다져가는 시간. 세상의 속도에 쫓기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마음을 살펴보는 과정.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나 스스로와 나누는 대화. 그 안에는 어떤 보상도 필요 없는 진짜의 시간이 흐르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이 글들을 꺼내보게 될 날이 오겠죠.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조금 더 성숙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기록들이 어떤 순간에도 나를 외롭지 않게 해 줄 것이라는 점입니다. 낡았지만 따뜻한 공책처럼, 글은 언제나 가장 솔직한 나의 편이 되어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