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쉴 틈 없는 관계엔 사랑도 지칩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언행에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by 정성균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섬세하며 복잡합니다. 누군가에게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고 따뜻한 감정이죠. 우리는 서로에게 스며들어, 함께하는 일상을 통해 정을 나누고, 사랑을 교환합니다. 그 따스함이 전달될 때, 우리는 관계 속에서 안정과 위로를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 친밀함이 과도해지면, 오히려 관계의 온기를 식혀버리는 모순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너무 뜨거운 불이 타오르던 불씨를 삼켜버리듯, 지나치게 밀착된 감정은 유대감을 손상시킵니다.


좋은 관계는 마치 튼튼하게 지어진 주택과 같습니다. 벽은 서로를 구분하면서도, 동시에 같은 지붕 아래에서 안전을 보장해 주는 존재입니다. 유대감도 마찬가지입니다. 애정이라는 기반 위에 신뢰와 배려라는 기둥을 세워야만, 그 안에서 두 사람이 편안하게 머무를 공간이 조성됩니다. 많은 이들은 관계의 초반에, 애정을 모든 것이라 착각합니다.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싶다는 열망이 커지다 보면, 어느 순간 모든 것을 함께 해야 진정한 사랑이라 믿게 됩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종종 과도한 개입이나 무의식적인 제어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함께 살던 벗과의 일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오랜 시간을 함께했고, 좋아하는 음식도, 듣는 음악도, 보는 드라마도 비슷했습니다. 어느 날부터 서로의 식사 시간을 맞추고, 하루 일정을 같이 계획하는 일이 당연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저녁, 벗이 말했습니다. “넌 좋은데… 가끔은 너무 답답해.” 저는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멈춰 섰습니다. 나의 다정함이 상대에게는 부담이 되었음을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으로 서로를 꼭 끌어안았지만, 그 안에는 숨 쉴 공간이 없었던 것입니다.


유대감은 밀착보다 여유가 필요합니다. 너무 가까이에서 모든 것을 공유하려는 욕구는, 결국 서로의 영역을 무너뜨리고 맙니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시간과 개인적인 공간이 있어야 견딜 수 있습니다. 연인 사이에서도 동일합니다. 누군가는 하루 종일 연락이 닿지 않으면 서운함을 느끼고, 또 다른 누군가는 하루에 한 번 안부만 전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애정의 방식은 같지 않기에, 서로의 방식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떤 연인은 말합니다. “우리, 너무 멀어지는 것 같아.” 하지만 사실 그 거리감이 있어야 비로소 상대의 존재가 뚜렷해지는 법입니다. 지나치게 가깝기만 하면, 우리는 상대방의 표정 변화나 말의 뉘앙스를 놓치기 쉽습니다. 오히려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보면, 보이지 않던 고마움과 조심스러움이 드러납니다.


존경이 자라는 곳도 이 여유입니다. 애정은 상대의 감정에 가까이 다가가는 일이라면, 존경은 상대의 세계를 멀리서 바라보며 인정하는 일입니다. 존경은 감탄에서 비롯되며, 그 사람만의 고유한 태도나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반대로, 익숙함은 존중을 무디게 만듭니다. 오래된 부부가 어느 순간부터 서로에게 편하게 말하거나, 농담이라며 내뱉은 말들이 상처가 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통할 거라는 믿음이 쌓일수록, 더 많은 언행에서 섬세함이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언행에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벗보다 낯선 사람에게 더 예의를 갖추는 일이 어색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익숙함이 아니라 섬세함입니다. 오늘도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가족이 있다면, 그 존재가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자주 되새겨야 합니다. 사람 사이의 리듬은 음악처럼 조율되어야 합니다. 너무 빠르게 몰아붙이면 숨이 차고, 너무 느리면 멀어지죠. 때로는 함께 걷고, 때로는 각자의 길을 걷되, 서로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신호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습니다. 사랑은 밀착이 아니라, 동행입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기. 그것은 애정보다 중요한 태도입니다. 진정한 친밀함은 경계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되고, 조용히 응원해 주는 거리에서 더욱 깊어집니다. 때로는 아무 말 없이 바라보는 것이,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관계에서 배워야 할 지혜는 ‘붙어 있는 방식’이 아니라 ‘함께하면서도 온전히 설 수 있는 방식’입니다. 서로의 고요를 지켜주는 태도. 서로의 삶을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꼭 필요한 순간엔 망설임 없이 곁에 있어주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오래 지속되는 유대감의 바탕입니다.


누군가의 모든 것이 되려고 애쓰기보다는, 그 곁에 오래 머무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정은 순간의 불꽃처럼 타오를 수 있지만, 존중은 오래도록 따뜻하게 빛나는 불씨처럼 남습니다. 관계란 결국, 서로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그 거울에 비친 내가 온전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상대에게 더 신중하고 예의를 갖춰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삶을 응원하며, 마주 보지 않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것. 그 안에서 진정한 사랑은 자라납니다. 그것이 성숙한 친밀함이 품고 있는 조용한 힘입니다.


✍️ 정성균 작가는 브런치스토리와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저작권 보호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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