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때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커피 향이 퍼지는 늦은 아침, 창밖으로 부드러운 빛이 번져오는 풍경을 바라보며 조용히 공책형 컴퓨터를 연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전하려는 것도 아니고, 큰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마음속에 오래 머물렀던 한 줄의 문장을 조용히 꺼내어 놓는 이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아마도 그게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일지 모른다.
글쓰기는 처음부터 낯설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공책에 혼잣말처럼 이런저런 생각을 적곤 했다. 누가 읽어주지 않아도 괜찮았고, 정답을 찾으려 애쓸 필요도 없었다. 그저 마음이 머무는 곳에 손끝이 닿으면 문장이 되었고, 그렇게 한 줄씩 적어갈 때마다 마음 어딘가 눌려 있던 무게가 조금 가벼워졌다.
그 습관은 오랫동안 내 안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다. 다만 바쁜 일상 속에서 좀처럼 꺼내 볼 여유가 없었을 뿐이다. 수십 년 동안 정해진 답을 향해 쉼 없이 달리던 삶의 속도가 느려지고, 주변이 고요해진 어느 날, 나는 퇴직을 결심했다. 그리고 비로소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열 달 전, 온라인 글 나눔 마당에 첫 글을 올렸다. 아무도 모르게 시작한 첫 문장은 떨리는 손끝에서 나왔다. 내 이름을 단 첫 기록이 조용히 남겨졌다. 누군가 읽어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 문장이 내 안의 오래된 말들과 다시 이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막상 글을 쓰다 보니 생각보다 섬세한 작업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무엇을 쓸지보다 어떻게 담아낼지가 더 어렵다. 문장 하나를 붙잡고 여러 번 읽어본다. 이 표현이 낯설지 않은지, 어디서 본 적은 없는지, 무심코 스며든 흔한 말투는 아닌지. 단어 하나, 표현 하나를 두고 조심스럽게 고심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즈음부터 '저작권'이라는 단어가 자주 떠올랐다. 예전에는 나와 크게 상관없는 말이라 여겼다. 그러나 글을 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한 문장 안에도 누군가의 시간이 깃들어 있고, 그 시간은 가볍게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작가라고 하면 책을 낸 사람들만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대다. 누리집, 사회관계망서비스, 영상 매체 등 다양한 공간에서 수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나 역시 그 흐름 속에서 내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그리고 이 글들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 번은 내 글의 한 문장이 화면 갈무리되어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라온 적이 있었다. 정성껏 가꾼 아이가 낯선 곳에서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걸 본 듯, 반가움 뒤에 서운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여러 날 붙들고 다듬은 것이었다. 그 아래엔 내 이름이 없었다. 물론 악의는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그 일을 계기로 나도 누군가의 글을 인용할 때 더 조심하게 되었다. 출처를 밝히고 이름을 남기는 일이야말로 창작자를 향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걸 새삼 실감했다.
저작권이라는 말이 법의 조항을 넘어 마음의 태도로 다가왔다. 누군가의 글을 떠올릴 때면, 그 문장이 지나온 시간을 생각하게 된다. 내가 만든 문장이라 믿었지만, 어느 날 비슷한 표현을 어딘가에서 마주칠까 봐 조심스럽게 고쳐 쓰는 일도 많아졌다. 나 역시 누군가의 작업물을 만날 때면 그 안에 담긴 시간을 먼저 떠올려 본다.
요즘은 기술이 많은 것을 대신하는 시대다. 글도, 그림도, 음악도 이제는 인공지능이 만들어낸다. 그러나 문장 안에 깃든 망설임까지 흉내 낼 수는 없다고 믿는다. 문장은 단순한 정보의 배열이 아니라, 마음결과 시간이 깃든 흔적이다. 그래서 글을 쓸 때면 늘 조심스럽다. 손끝을 따라 천천히 생각을 담아가며 한 줄씩 적어 내려간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글과 사람이 써 내려간 글의 차이는 어쩌면 그 미세한 떨림 속에 있다. 기계는 결과를 빠르게 내지만, 인간의 문장에는 머뭇거림과 숙고의 시간이 스며 있다. 그 차이가 바로 창작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마음의 결까지 닮을 수는 없을 것이다.
퇴직 이후의 시간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바쁘게 움직이던 날들 대신 문장과 나란히 걷는 시간이 많아졌다. 세상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나는 더 천천히 쓰게 되었다. 조용히 앉아 문장 하나를 바라보다 보면, 그 안에 오래된 내가 머물고 있음을 느낀다.
어릴 적부터 저작권을 법의 조항으로 배우기보다 존중의 방식으로 접했더라면 어땠을까. 흉내 내지 말라는 경고보다, 문장 안에 담긴 마음을 먼저 읽어보라는 가르침이 있었다면 좋았겠다. 그렇게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문화가 조금씩 자라날 수 있었다면, 지금보다 더 따뜻한 창작의 세상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오늘도 책상 앞에 앉는다. 평범한 하루 끝에서 문장 하나가 조용히 떠오른다. 거창한 의미가 아니어도 괜찮다. 내 안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던 말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아도 괜찮다. 그 말이 진심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미 기록할 가치가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나의 망설임을, 나의 떨림을 기꺼이 문장 안에 새긴다. 이 작은 문장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만남의 순간에도 서로의 노력을 존중하는 저작권의 문화가 자연스러운 예의로 자리 잡기를 조용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