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우물 시대는 끝났다

AI 시대에 우리가 살아남는 방식

by 정성균

요즘 저는 문득 거울 속 제 눈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피로가 스친 듯한 눈동자 속에서, 무언가 말하고 싶은 감정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 눈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요. 어떤 하나의 일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다른 길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지, 아니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기만 하다가 정작 소중한 것을 지나쳐버린 건 아닌지, 그런 질문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꾸 올라옵니다. 아마도 이 고민은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방향을 조용히 점검하고 있으니까요.


어릴 적부터 자주 들었던 말이 있습니다. “한 우물만 파야 물이 나온다.” 그 말은 오랫동안 제 삶을 이끄는 신념이 되어주었습니다. 오직 하나의 길을 꾸준히 걸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믿음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은 더 이상 단순하지 않고, 기술은 예측조차 어려울 만큼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한곳만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보면, 언젠가는 외부의 흐름에 휩쓸려 자리를 잃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생겼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버튼 몇 번만 눌러도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고, 그 위에 음악을 입히고, 목소리까지 더합니다. 번역은 기계가 맡고, 그림과 영상도 프로그램이 처리해냅니다. 예전에는 전문가들이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작업들이 이제는 누구나 쉽게 다룰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기계는 사람보다 빠르고, 실수도 없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더 잘해야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사람으로서, 어떤 감각과 태도를 가져야 이 흐름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그 질문 앞에서 저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보았습니다. “하나는 깊이 파되, 그 물로 다른 밭도 함께 적셔라.” 여전히 하나의 분야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스스로를 지탱해주는 뿌리와도 같은 존재니까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흐르지 않는 물은 썩기 마련이고, 고여 있는 지식은 시대의 변화에서 쉽게 뒤처지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찾은 길은, 한곳에 뿌리를 두되, 다른 방향으로도 넓게 뻗어가는 삶입니다.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는 인간의 지능이 단일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음악, 공간지각, 언어, 신체감각, 대인관계 등 서로 다른 영역이 조화를 이루며 인간의 가능성을 더욱 확장시킨다고 했지요. 각기 다른 능력은 연결될 때 더 강한 힘을 발휘합니다.


요즘 시대에 필요한 것은 두 개의 시선입니다. 하나는 깊이 파고드는 시선, 다른 하나는 넓게 조망하는 시선입니다. 깊이는 몰입을 통해 내면의 단단함을 만들어주고, 넓이는 다양한 분야와의 연결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움직일 때, 비로소 세상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오랫동안 글을 써오다가 어느 날 사진을 배우기 시작하셨습니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은 도구에 당황하기도 하셨지만, 이내 자신만의 감각으로 이미지를 다듬고 글에 색채를 입히는 북 디자이너가 되셨습니다. 그분의 작업을 보면서 저는 배웠습니다. 깊은 시선에 넓은 시야가 더해질 때, 작품은 살아 숨 쉬는 듯한 생명력을 지니게 된다는 것을요.


또 다른 지인은 요리를 하시던 분인데, 어느 날부터 심리학 책을 즐겨 읽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찾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면, 그 안에 담긴 감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시작된 관심은 식심리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로 이어졌고, 지금은 요리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읽고, 위로하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기술자로 일하시던 한 선배님은 퇴직 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취미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작품 하나하나에 이야기가 담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림 속에는 기술자의 정밀함과 창작자의 자유로움이 함께 녹아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전시회에서, 한 아이가 작품을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그림은 조금 무서운데, 따뜻해요.” 그 말에 선배님은 한참을 웃으셨지요.


이분들은 모두, 하나의 우물에서 시작하셨지만 그 우물에서 길어 올린 물로 다른 밭을 적셔가며, 자신만의 풍경을 만들어가고 계십니다. 그분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연결은 단순한 조합이 아니라, 삶의 깊이와 넓이를 동시에 키워주는 힘이라는 것을요.


기계는 빠르고 똑똑합니다. 그러나 마음의 결을 읽고, 감정을 연결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여전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온몸으로 살아가며, 감각과 기억, 감정의 흐름 속에서 세상을 구성해 나가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결국 ‘연결하는 존재’입니다. 각기 다른 경험을 모아 새로운 방식으로 엮고, 전혀 다른 두 세계를 하나로 이어 또 다른 길을 열어가는 존재. 그게 사람의 힘이고,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하나의 전문성만으로는 부족한 시대입니다. 협업과 소통, 통합적인 사고가 필수가 되어버린 지금, 학교에서도 한 과목만 잘하는 것보다,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프로젝트형 학습이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사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단일한 능력보다, 다르게 연결할 줄 아는 사람이 더 오래 살아남습니다.


한 방향으로만 깊이 파면 안쪽에 갇히게 되고, 이리저리 기웃거리기만 하면 얕아집니다. 그래서 깊이와 넓이를 함께 쥐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본질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가능성을 열어두는 자세, 그 위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은 개인의 성장을 위한 선택일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와 시대를 더욱 유연하게 만들기 위한 조건이기도 합니다.


가끔 거울 앞에 섭니다. 제 눈을 바라봅니다. 오늘 저는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을까요. 그 시선은, 여전히 사람을 향하고 있었을까요. 두 개의 눈이 함께 움직일 때, 우리는 변화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그려나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연결을 통해, 우리는 다시 일어서고, 사람다운 삶을 이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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