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편 - 우리가 서로를 오해할 때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 한마디에 더 조심스러워진다. 너무 잘 안다고 믿는 사이일수록 굳이 말하지 않아도 통할 거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설명하지 않아도 될 거라는 기대는, 어쩌면 말하지 않음으로 생기는 틈을 스스로 만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해는 늘 사소한 데서 시작된다. 무심코 던진 말투, 스쳐 간 표정, 조금 늦어진 답장 같은 것들. 그런 사소한 틈에서 마음이 흔들리고, 머릿속엔 추측이 쌓인다. 혼잣말처럼 계속해서 해석하게 된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무슨 뜻이었을까. 그러다 보면 실타래처럼 엉킨 감정 속에서 어느새 서로가 아니라, 스스로의 생각에 갇히게 된다.
한때 자주 연락을 주고받던 친구가 있었다. 그날의 말투만으로도 서로의 기분을 짐작할 수 있었던 사이. 그런데 어느 날 그의 메시지는 평소와 달랐다. 짧고 단정했다. 이모티콘 하나 없는 문장, 늘 따뜻하게 느껴졌던 말들이 그날따라 낯설고 차가웠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혹시 내가 무슨 말을 잘못했나.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 있어?” 돌아온 건 “아무 일 없어.”라는 짧은 대답. 그 말이 오히려 더 많은 의문을 남겼다.
그날 이후, 더 묻지 않았고, 그는 더 말하지 않았다. 말이 사라진 자리에 쌓인 건 추측이었고, 그 추측이 오해를 만들었다. 아무 일 없다는 말엔 어쩌면 정말 아무 일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피곤했거나, 바빴거나, 잠시 생각이 많았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고, 침묵은 점점 거리를 만들었다. 말이 줄어든 만큼 마음도 멀어졌다.
말을 꺼내지 않은 이유는 내 감정이 틀렸을까 봐서, 괜한 파장을 만들까 봐서였다. 그래서 그냥 묻지 않았다. 그렇게 타이밍은 지나가고, 말할 기회도 사라졌다. 멀어지는 일은 언제나 조용하고 담담하게 일어난다. 처음엔 별일 아닌 듯 시작되지만, 그 무심함이 천천히 벽이 된다.
우리는 자주 상대의 말을 마음대로 해석한다. 하지만 그 해석이 진심에서 얼마나 멀어질 수 있는지는 잘 모른다. 마음은 복잡하지만, 말은 단순하다. 감정은 꺼내야 비로소 선명해진다. 짧은 한마디가 마음을 붙잡아줄 수도 있고, 같은 말이라도 누가 어떻게 건네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어색하고 두렵더라도, 한 번 더 말을 건네는 일. 그게 관계를 지탱하는 작고 얇은 실이 된다.
‘그때 한 번 더 물어봤다면.’ 그런 생각이 자주 머문다. 정말 괜찮았던 건지, 내가 너무 예민했던 건 아닌지. 말하지 못하고 삼켰던 문장들이 자꾸 떠오른다. 시간이 흘러도, 그날의 공기는 아직 마음 한편에 머물러 있다.
한 줄의 안부가 오래도록 남아 있었던 적이 있다. 오래된 사진첩을 넘기다 문득 떠오른 이름. ‘잘 지내?’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짧고 간단한 인사. 하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읽음 표시만 남은 채 시간이 흘렀다.
억지로 돌이키려던 건 아니었다. 그냥 생각나서, 안부를 묻고 싶었던 거였다. 그런데 아무런 답이 없다는 사실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내가 괜한 말을 꺼낸 건 아니었을까?’ ‘혹시 그 사람에겐 불편한 메시지였을까?’ 그 짧은 질문 하나가 여러 감정을 불러냈다.
‘안부’라는 말은 익숙하지만, 그 안에는 설명되지 않는 마음이 숨어 있다. 보고 싶다는 말, 멀어지고 싶지 않다는 바람, 별일 없기를 바라는 애틋함. 그 짧은 인사가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다. 가볍게 보냈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그 마음은 혼자 오래 머물렀다.
나도 누군가의 안부에 답하지 못했던 적이 있다. ‘잘 지내냐’는 그 말이 그날따라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사실은 잘 지내지 못했고, 그 사실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결국 침묵했다. 말하지 않았던 건 외면이 아니라,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말문이 막히면, 진심도 숨는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씩 알게 된다. 안부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짧은 말 안에 담긴 마음이 얼마나 무거운지.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된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무심한 말투를 남기고, 설명 없이 멀어진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누구나 말하지 못한 사정 하나쯤은 품고 살아간다는 걸.
지금도 머뭇거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아직 건네지 못한 안부가 마음에 걸린다면, 오늘은 그 말을 꺼내볼 수 있기를. 답을 기대하기보단, 그 마음을 건넸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는 마음으로.
안부는 뭔가를 바라며 던지는 말이 아니길 바란다. 답이 없어도 괜찮기를. 그 말을 건넨 것만으로도, 그 사람을 잊지 않았다는 마음이 전해지길. 언젠가 그 사람도 내 안부를 조용히 떠올리는 날이 오길. 말하지 않아도 떠오르는 그 시간이 다시 오기를. 멀리서라도 누군가의 하루를 응원하는 마음이라면, 언젠가는 닿게 될 거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 마음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안부는 말보다 먼저, 마음이 먼저 가닿는 일이다.
《마음의 거리》, 다음 이야기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