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거리》

19편 - 인상이 좋다는 말보다는 사람이 좋다는 말을 듣고 싶다

by 정성균

아침 출근길, 붐비기 직전의 엘리베이터 안은 늘 약간의 어색한 정적이 감돈다. 7층에서 탄, 안면만 익힌 이웃과 눈이 마주치자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가볍게 목례를 주고받았다. 1층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짧은 침묵을 깨고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출근하세요? 늘 느끼는 거지만, 인상이 참 좋으세요."


나는 거울 앞에서 연습한 적 없는, 그러나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기분 좋은 말이었지만, 문이 열리는 순간 마음 한구석에는 미세한 공허함이 일렁였다. 살아오면서 처음 만나는 이들에게 여러 번 들어왔던, 나라는 사람의 표지에 가까운 말이었다.


아마도 나의 모나지 않은 얼굴선이나, 대화의 흐름을 조용히 맞추는 태도 때문일 것이다.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려 적당히 웃고, 적절한 순간에 고개를 끄덕이며, 갈등을 피해 가는 나의 오랜 습관이 만들어낸 첫인상. 그것은 일종의 사회적 생존 기술이자,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겠다는 무언의 신호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어깨가 으쓱했다. 타인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이 어린 마음에 작은 자부심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관계의 깊이를 고민하게 되면서 깨달았다. '인상이 좋다'는 말은 결코 한 사람을 오래 지켜본 끝에 나오는 평가가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셔츠 깃과 단정하게 정돈된 머릿결이 빚어내는 찰나의 환영에 불과하다. 잘 디자인된 책의 표지처럼, 안의 내용을 궁금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 안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어떤 문장이 눈물을 쏟게 하고 어떤 페이지가 밤을 새우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 '좋은 인상'이라는 얇은 막 아래에는 얼마나 많은 감정의 소란과 삼켜버린 말들이 숨어 있었던가. 보이지 않는 억제와 조율의 순간들은 때로 나를 더욱 과묵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나아가 나 자신마저 속이게 했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팀 프로젝트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알면서도, 회의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 끝내 입을 다물었다. 결국 프로젝트는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고, 모두가 몇 배의 짐을 짊어졌다. '모난 돌'이 되기 싫었던 나의 침묵이 모두를 더 큰 곤경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그 순간, '좋은 인상'이라는 가면 아래 숨어 있던 비겁함이 서늘한 실체로 다가왔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 어떤 찬사보다 간절히 듣고 싶은 한마디가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당신은 사람이 참 좋아요.”


이 한마디는 결코 쉽게 건넬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며칠, 혹은 몇 달을 보았다고 섣불리 꺼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의 두께를 필요로 한다. 함께 밥을 먹고, 나란히 길을 걸으며, 때로는 서로의 그림자를 밟는 오랜 시간을 보내야만 비로소 만들어지는 신뢰의 언어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가장 빛나는 순간뿐만 아니라, 가장 그늘진 모습까지 마주하게 된다. 계획이 틀어져 허둥대는 어설픈 모습, 예상치 못한 비판에 상처받아 날카로워진 말투, 피로에 지쳐 더는 웃을 기운조차 없는 날의 무표정한 얼굴까지도. 서운함이 쌓였다가 오해와 함께 풀려나가는 지난한 과정을 함께 겪어내기도 한다. 그런 모든 시간의 조각을 통과하고서도, 그 모든 흠결과 부족함까지 끌어안으며 "그럼에도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줄 수 있다면, 그건 실로 묵직한 마음의 고백이다.


좋은 인상은 하루, 아니 단 몇 분이면 완성된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는 계절이 몇 번은 바뀌어야 얻을 수 있는 훈장과 같다. 뜨거운 찌개 앞에서 어색한 침묵 끝에 웃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들 속에서, 목적지 없이 걷다 발견한 낡은 골목의 풍경에 함께 감탄하는 순간들 속에서, 때로는 의견이 맞지 않아 얼굴을 붉히다가도 늦은 밤 편의점 의자에 나란히 앉아 "그래도, 내 마음 알지?" 한마디에 모든 것이 풀려버리는 그런 과정 속에서 쌓인다.


살다 보면 마음의 밑바닥을 들키는 것이 두려워 적당한 인상만 남긴 채 뒷걸음질 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결국 우리 삶에 오래도록 남아 온기를 주는 관계는, 그 두려움을 무릅쓰고 서로의 맨얼굴을 마주하는 데서 시작된다.


문득 언제나 내 편이었던 부모님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나의 작은 기침 소리에도 마음을 졸였고, 아버지는 말없이 내가 가는 길의 등불을 밝혀주셨다. 그분들의 사랑은 화려한 언변이 아니라, 고단한 하루 끝에도 나를 위해 차려진 저녁상으로, 궂은날 현관 앞에 놓인 우산으로 증명되었다. 나이를 먹으며 비로소 깨닫는다. 사람이 좋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빛나는 외면이나 유려한 말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조용히 곁을 지키며 존재 자체로 힘이 되어주는 것.


퇴근 무렵,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누군가는 고개를 떨군 채 생각에 잠기고, 누군가는 이어폰 너머 음악에 리듬을 탄다. 이제는 안다. 짧게 스치는 모습만으로는 그 사람 안에 담긴 이야기를 결코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을.

나 또한 누군가에게 "사람 참 좋다"는 말을 건네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가. 한때 무뚝뚝하고 차가워 보이던 직장 동료가 있었다. 나는 그를 쌀쌀맞고 이기적인 사람이라 단정했다. 하지만 몇 해를 함께 보내며 알게 되었다. 그가 주말마다 유기견 보호소에서 묵묵히 봉사활동을 한다는 사실을, 도움이 필요한 동료의 일을 티 내지 않고 밤늦게까지 남아 처리해 주곤 한다는 사실을. 나의 섣부른 판단이 부끄러워졌다. 어느 회식 날 돌아가는 길, 용기를 내어 그에게 말했다. "선배님, 참 좋은 분이신 것 같아요." 그는 놀란 듯 나를 바라보다, 이내 희미하게 웃었다. 그 미소의 의미를 나는 안다. 서로의 시간을 통과한 사람들만이 나눌 수 있는 깊은 유대감이었다.


이제는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나를 과장하거나 꾸미지 않고 싶다. 그저 담백한 모습 그대로, 상대의 실수에 날을 세우기보다 너그러운 이해를 먼저 건네고, 조급하게 다그치는 대신 따뜻한 눈으로 기다려주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언젠가 내 삶의 어느 페이지에서, 누군가가 오랜 시간을 함께한 뒤 내게 조용히 말해주면 좋겠다. “당신은, 참 사람이 좋아요.” 그 한마디 안에는 우리가 함께 견뎌온 계절과 다정했던 순간의 온기, 서로를 향해 흘러간 마음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깊고 따뜻한 말을 다른 이에게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다.


결국 인생에서 오래도록 남는 것은 사람이었다. 번쩍이는 첫인상은 시간 속에 빛이 바래지만, 좋은 사람은 마음속에 남아 오래도록 기억의 등불이 되어준다. 오늘도 나는 그런 좋은 사람이기를, 그리고 그런 좋은 사람들과 함께 삶의 길을 걷기를 소망한다.


집으로 향하는 길, 무거운 폐지를 끄는 할머니의 리어카가 오르막길에서 헛바퀴를 돌고 있었다. 잠시 망설이다 조용히 다가가 리어카 뒤를 힘껏 밀었다. 턱을 넘어서자, 할머니는 숨을 고르며 뒤를 돌아보셨다. 주름진 눈가에 맺힌 것은 고단 함이었을까, 고마움이었을까. 그 짧은 시선이 스치는 순간, 낯선 이의 삶의 무게가 말없이 가슴으로 전해졌다.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누구에게 자랑할 일도 아닌, 그저 오늘의 내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이었다. 잠시 뒤돌아보니, 할머니의 리어카는 이미 골목 끝으로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다. 서늘한 저녁 바람결에 왠지 모를 작은 안도가 스몄다. 지하철이 없어 늘 걷는 이 조용한 골목길이 나의 퇴근길이다.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은, 어쩌면 이름 없는 바람 속에 작은 온기를 더하는 이런 한 걸음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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