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편 – 관계를 망치는 건 ‘너무 가까움’ 일지도 몰라요
우리의 삶은 셀 수 없이 많은 관계로 얽혀 있다. 가족, 친구, 동료, 스쳐 지나가는 인연까지. 이 관계들이 내 희로애락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곤 했다. 나 역시 그랬다. 한때는 관계를 당연하게 여기거나 서툴게 다루어 실수투성이였다. 관계 속에서 기쁨보다는 상처를 받는 날이 많았고, 때로는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듯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시행착오와 후회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관계는 마치 소중한 정원과 같아서, 끊임없이 돌보고 가꾸지 않으면 금세 황폐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 과정에서 내가 배우고 지켜내려 노력했던 '마음의 정원을 가꾸는 원칙들'은 다음과 같다.
타인의 관계에 함부로 개입하지 않기
나는 한때 오지랖 넓은 사람이었다. 친구들 사이의 다툼을 보면 가만히 있지 못했고, 내가 나서서 해결해 주려 애썼지. 한 번은 절친한 두 친구가 사소한 오해로 멀어지는 것을 보고 조급한 마음에 중재에 나섰다. 한 친구에게는 다른 친구의 입장을 설명했고, 다른 친구에게는 그 친구의 상황을 이해시키려 했다. 나의 의도는 순수했다. 그저 그들이 다시 가까워지기를 바랐을 뿐.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나의 개입은 오히려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었고, 두 친구는 나에게까지 서운함을 표했다. "너 때문에 더 이상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은 비수처럼 박혔다. 결국 그들은 더 멀어졌고, 나 또한 그들과의 관계에서 어색함을 피할 수 없었다.
그때 깨달았다. 모든 관계에는 그들만의 사정과 서사가 있다는 것을. 눈에 보이지 않는 갈등과 상처, 깊은 감정의 결이 존재한다는 것을. 섣부른 조언이나 충고는 오히려 갈등을 키울 수 있었다. 나는 이제 상대의 이야기를 온전히 듣고, 판단보다는 이해로 응답하는 자세를 배우려 한다. 때로는 곁에서 묵묵히 지켜봐 주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의 아픔을 진심으로 공감하되, 해결사가 되려 하지 않는 것. 관계는 각자의 영역이 존중될 때 비로소 건강하게 유지된다는 것을 마음속에 새긴다. 타인의 관계에 함부로 개입하는 것은 마치 타인의 정원에 허락 없이 들어가 꽃을 꺾는 행위와 같다. 아무리 아름다운 의도일지라도, 그 행동은 정원 주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자칫하면 애써 가꾼 정원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 진정한 지지는 옆에서 함께 서 있어 주는 것이지, 앞서나가 해결하려는 것이 아님을 배웠다. 때로는 침묵이 수많은 말보다 더 큰 위로가 되기도 한다.
나처럼, 타인도 불편할 수 있음을 인정하기
나는 꽤나 낙천적인 편이라 웬만한 일에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 성격이다. 그래서 내가 편하다고 느끼는 방식을 다른 사람도 똑같이 받아들일 것이라 착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예를 들어, 나는 친밀함의 표현으로 가벼운 농담이나 장난을 즐겨했는데, 어떤 친구는 나의 농담을 무례하다고 느끼거나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내가 별생각 없이 건넨 말이 친구에게는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지. 그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은 나에게 깊은 교훈을 주었다.
관계는 비슷함에서 시작되지만,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지속된다. 우리는 모두 고유한 경험과 감수성을 가진 존재이기에, 내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 누군가에게는 견딜 수 없는 불편함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했다. 각자의 예민함과 거리감을 존중하는 태도는 관계의 가장 기본적인 예의다. 타인의 불편함을 인지하고 존중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이해하고 확장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내가 느끼는 편안함이 타인에게는 불편함일 수 있음을 인지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관계의 섬세한 결을 이해하게 된다. 그 섬세함 위에서 관계는 더욱 단단하게 자리 잡는다. 내게는 허물없는 행동이라 여겨졌던 것이 타인에게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될 수 있음을 깨달은 뒤로, 나는 상대방의 미묘한 표정 변화나 짧은 침묵에도 귀 기울이게 되었다. 이는 타인을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함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나의 시야를 넓히고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과정이었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안전지대'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연결의 시작임을 이제는 안다.
받은 만큼 돌려받으려 애쓰지 않기
젊은 시절에는 관계에서 주고받음이 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준 만큼 돌려받지 못하면 서운함이 쌓였고, 그것은 종종 관계에 대한 회의감으로 이어졌지. 내가 누군가에게 베푼 작은 호의조차 마음속으로 기억하고, 그것이 돌아오지 않을 때마다 은밀하게 점수를 매기곤 했다. 그 점수가 낮아질 때마다 관계에 대한 불만을 품었고, 때로는 ‘손해 보는 관계’라고 치부하기도 했다. 마치 저울에 달린 물건처럼, 내가 준 것을 정확히 측정하고 그에 상응하는 것을 기대했다. 관계가 정교한 계산 위에 서 있어야 한다고 믿었던 거다.
하지만 삶의 경험이 쌓이면서 깨달았다. 진정으로 마음을 다해 베푸는 것은 그 대가를 바라서가 아니라는 것을. 조건 없는 마음을 베풀되,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여유. 그 여유야말로 진짜 관계의 깊이였다. 내 할머니는 항상 "주는 기쁨이 더 크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때는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는 안다. 숫자를 세지 않고 마음을 다해주는 사람만이 진짜 사랑을 안다. 물론,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하는 관계는 건강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베푸는 모든 것에 대한 대가를 즉각적으로 기대하지 않는다면, 관계는 훨씬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 진정한 관계는 계산적인 거래가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순간의 기쁨과 위로, 그리고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에서 비롯된다. 주고받음의 저울을 내려놓는 순간, 관계는 비로소 자유롭고 투명해진다. 누군가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베풀었을 때 오는 넉넉함, 그 자체가 보상임을 깨닫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언제나 같을 거란 착각에서 벗어나기
나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친구들과 평생 함께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우리의 우정은 변치 않는 금처럼 단단하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각자의 삶의 경로가 달라지고, 가치관과 우선순위가 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관계들을 경험했다. 누군가는 결혼을 했고, 누군가는 해외로 떠났으며, 또 누군가는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변해버린 친구에게 서운함을 느끼거나, 변한 나 자신을 자책하기도 했지. ‘우리가 어떻게 이럴 수 있지?’라는 질문이 나를 괴롭혔다. 과거의 추억에 갇혀 현재의 변화를 외면하려 했다.
그러나 관계는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한다. 과거의 모습만을 고집한다면, 우리는 현재의 관계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흐름을 붙잡으려 애쓰기보다는, 변화의 결을 함께 따라가는 것이 더 건강한 연결을 가능하게 했다. 변화를 인정하고, 때로는 놓아줄 줄 아는 용기가 필요했다. 관계의 흐름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서로의 성장을 응원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지고 관계 또한 새로운 형태로 지속될 수 있다. 모든 관계가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관계를 위한 첫걸음이다. 인생의 매 순간이 흘러가는 강물과 같듯이, 관계 또한 그 물살에 몸을 맡겨야 한다. 어떤 관계는 합류하여 더 큰 강물을 이루고, 어떤 관계는 자연스럽게 갈라져 각자의 길을 가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맞지 않는 인연은 놓아줄 줄 알기
나는 한때 ‘인연은 소중한 것’이라는 명목 아래, 더 이상 행복하지 않고 오히려 나를 지치게 만드는 관계를 놓지 못해 오랜 시간 마음고생을 한 적이 있다. 의리라는 명분 아래, 혹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유지했던 관계들은 결국 나에게 깊은 피로감과 자괴감만을 남겼지. 나는 그 관계가 나를 갉아먹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관계가 끝나면 내가 외톨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마치 썩어가는 뿌리를 붙잡고 있는 나무처럼, 나 스스로를 병들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억지로 이어가는 관계는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인연은 붙잡는다고 오래가는 것이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관계는 억지로 되돌릴 수 없으며, 오히려 그 자연스러움을 인정할 때 우리는 더 자유로워졌다. 때로는 관계의 단절이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 서로에게 더 이상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서로의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관계라면, 그것을 끊어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는 결코 무책임한 행동이 아니라, 자신과 상대방 모두를 위한 존중의 표현이다. 우리 삶의 한정된 에너지를 진정으로 나를 성장시키고 행복하게 해주는 관계에 집중할 때, 우리는 더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모든 인연을 붙잡으려 하지 않고, 때로는 아름다운 이별을 선택하는 것 또한 관계의 미덕임을 이제는 안다. 억지로 붙잡으려 했던 손을 놓아주었을 때, 비로소 새로운 바람이 불어왔고, 내 정원에는 더 건강하고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날 공간이 생겼다. 때로는 끝이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무례에는 무례로 대응하지 않기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이 마음을 다치게 했을 때, 같은 방식으로 되갚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당장 감정적으로는 시원할지 몰라도, 결국 그것은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고, 관계를 더욱 파국으로 이끌지. 나는 직장 생활 초년생 시절, 나에게 상처 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던 상사에게 똑같이 날 선 말로 응수했던 경험이 있다. 그 순간은 통쾌했지만, 이내 밀려오는 후회와 비참함은 더 컸다. 결국 나는 상대방의 수준으로 나 자신을 끌어내린 것과 다름없었다. 진흙탕 싸움에 뛰어들어 나 자신까지 더럽히는 것과 같았다.
품위는 위기에서 드러난다. 상대의 무례함에 흔들리지 않고 나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대신 현명하게 대처하는 지혜가 필요했다. 때로는 단호한 침묵이 가장 강력한 메시지가 될 수 있고, 때로는 침착하고 품위 있는 말 한마디가 상대방의 무례함을 압도하기도 한다. 나는 어떤 순간에도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상대방의 무례함에 내면의 평화를 잃지 않고, 나다운 품위를 유지하는 것. 그것이 관계 속에서 나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방패였다. 상대방의 공격적인 행동에 나 또한 격한 감정으로 대응하면, 이는 마치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된다. 오히려 한 발짝 물러서서 냉정함을 유지하는 것이 상대방의 무례함을 무력화시키고, 나 자신을 보호하는 현명한 방법임을 깨달았다.
감정을 말로 함부로 쏟아내지 않기
감정은 진심이지만, 표현은 기술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종종 내 마음속에 가득 찬 감정을 여과 없이 쏟아내곤 했다. 상대방에게 내 진심을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내 방식대로 감정을 표현했지. 특히 화가 나거나 서운할 때, 말을 가다듬지 않고 그대로 내뱉어버리는 버릇이 있었다. ‘내 감정이 이러니 당연히 이해해 줄 거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진심'은 때로 상대에게 '폭력'으로 다가갔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잘못된 방식은 상대방에게 상처로 남았다. 말의 기술은 시간이 걸려도 반드시 배워야 할 인생의 중요한 훈련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내 마음을 다치지 않게, 타인의 마음을 무너뜨리지 않게.
감정은 에너지와 같아서, 잘 다루지 못하면 파괴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분노나 서운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일수록 더욱 그랬지. 말을 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내 말을 받아들였을 때 어떤 감정을 느낄지 헤아리는 연습이 필요했다. 감정을 절제하고 다듬어 표현하는 것은 상대를 위한 배려이자, 나 자신을 위한 품위 있는 선택이다. 내 감정의 주인이 되어 말을 통제할 때, 우리는 비로소 관계를 더욱 깊고 단단하게 만들 수 있다. 억누르지 않되, 섬세하게 다듬어진 감정 표현은 관계를 더욱 풍요롭게 하는 마법과 같다.
말이 늦게 도착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나는 오랫동안 감정이 격해질 때 말을 멈추는 연습을 했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첫 번째 훈련이었지. 나에게 상처 준 사람에게 되려 상처 주고 싶었던 순간들이 셀 수 없이 많았지만, 돌아보면 그 마음이 결국 가장 나를 후회하게 만들었다. 침묵은 결코 무력한 선택이 아니었다. 오히려 침묵을 지키는 것은 말보다 더 강한 감정 조율이자, 관계를 잃지 않기 위한 배려였다. 무작정 입을 닫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 감정이 말로 나갈 준비가 되었는지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 것. 그 침묵 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소통의 길이 열렸다.
나는 이제 말의 시점을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급히 내뱉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늦게도 말하지 않는. 마음을 보듬는 속도로, 상대를 존중하는 간격으로 말을 꺼내는 사람. 그 한마디가 관계의 봄을 다시 피울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마치 겨울을 지나 온 대지에 따스한 햇살이 내려앉듯, 적절한 시기에 건네진 한마디는 얼어붙었던 마음을 녹이고 새로운 희망을 싹 틔운다. 과거의 후회와 아픔을 통해 나는 관계의 진정한 가치를 배우게 되었다. 단순히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을 넘어,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지혜를 터득하고 있지.
관계는 찰나의 스침에서 시작될 수 있지만, 진정한 깊이는 서로의 간격을 존중하고, 마음의 정원을 함께 가꾸어 나갈 때 비로소 완성된다. 때로는 비바람을 맞고, 때로는 뜨거운 햇볕에 지쳐도, 우리는 끊임없이 관계라는 정원에 물을 주고 거름을 주어야 한다. 후회와 깨달음이라는 값진 씨앗을 심어, 아름다운 인연의 꽃을 피우는 일은 평생에 걸친 우리의 숙제이자 기쁨이다.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도 그 말이 필요한 누군가가 있다면, 너무 늦기 전에 그 말을 건네보길 바란다. 관계는 말의 타이밍에서 시작되며, 그 타이밍은 우리가 용기 내는 바로 지금일지도 모른다. 당신의 한마디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잊지 못할 따뜻함으로 남기를 바란다. 우리의 말이 정중한 간격 속에서 올바른 시점에 도착할 때, 비로소 마음과 마음은 진정으로 연결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