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편 - 멘탈이 나간 날, 내가 나를 안아준 방식
무너진다는 건 대체 어떤 감각일까. 뚜렷한 경고 없이 균열은 아주 사소한 순간에 시작된다. 갑작스러운 말 한마디, 무심한 표정, 반복되는 일상의 피로 같은 것들. 겉으론 아무렇지 않게 웃지만, 속에서는 금이 가기 시작한 마음이 조용히 흔들린다. 그렇게 마음은 서서히 기울어진다. 우리는 때로 그 흔들림을 ‘멘탈이 나갔다’고 표현한다. 무너졌다고 쉽게 말하지만, 사실 무너지지 않으려 얼마나 조용히 애썼는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멘탈’이라는 말에는 묘한 무게가 있다.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을 나누는 선처럼 들리기도 하고, 잘 견디는 사람만이 살아남는 세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감정이 흔들리는 자신을 보며 부끄러워한 적도 많았다. 약하다고, 한심하다고, 왜 이토록 사소한 일에도 버거워하느냐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약한 것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외면하는 쪽 아닐까. 아무렇지 않은 척, 무너지지 않는 척, 애써 괜찮은 사람인 척 버티는 일이 오히려 나를 더 아프게 만들었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마음의 기술은 흔들림을 통제하는 기술이 아니다. 불안을 억제하거나, 두려움을 몰아내는 것도 아니다. 그건 감정을 읽어내는 섬세한 감각이고, 아무도 모르게 안간힘을 쓰는 나를 부드럽게 안아주는 태도다.
조금 흔들려도 괜찮다고, 오늘 하루도 잘 버텼다고, 스스로에게 건네는 말 하나가 생각보다 큰 울타리가 되어준다. 어떤 날은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게 가장 큰 성취가 되기도 한다. 사람을 만나기엔 마음이 지쳐 있고, 책장을 넘기기엔 집중이 흐려질 때, 나는 그저 가만히 앉는다. 내 안의 고요를 바라보며 서성이는 감정들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예전에는 이런 날이 비생산적인 시간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안다. 이것도 마음을 돌보는 연습이라는 걸. 어딘가에 기대어 울고 싶은 마음, 나도 모르게 곪아 있던 피로, 그걸 흘려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무너지지 않으려는 기술은 어떤 특별한 재능이 아니다. 그건 일상 속 아주 사소한 선택들의 결과다. 혼자 밥을 먹을 때 입에 맞는 반찬 하나 더 올려보는 마음, 아무 말 없이 음악을 켜놓고 흐르는 멜로디에 잠시 기대어 보는 여유, 그런 것들이 나를 다시 중심으로 데려온다.
어떤 날은 생각보다 멀리 갔다 돌아오기도 하고, 또 다른 때엔 스스로를 어루만지기조차 버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연습을 멈추지 않으면, 마음은 서서히 회복의 방향으로 기울어진다. 누군가 그러더라.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는 일은,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 작고 조용한 반복의 힘에서 나온다”고. 그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견디는 게 아니라, 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그 반복. 그게 삶을 지탱해주는 힘이 될지도 모르겠다. 감정이 흔들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음을 붙드는 건 기술이고, 그 기술은 매일의 조용한 연습으로 길러진다.
마음이 무너지는 경험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고요한 호수에 작은 돌멩이가 던져지듯, 잔잔했던 일상에 미세한 파문이 인다. 그 파문은 처음엔 눈에 띄지 않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커져 마음 전체를 흔들기 시작한다. 어쩌면 그 시작은 아주 오래전부터였을지도 모른다. 작은 상처들이 아물지 않은 채 쌓이고, 해소되지 못한 감정들이 응어리져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았을 수도 있다. 우리는 대개 그런 신호들을 무시하려 애쓴다. 바쁜 일상에 휩쓸려, 혹은 스스로에게 강인함을 강요하며 애써 외면한다.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다고 주문을 외우듯 되뇌지만, 이미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균열이 시작된 상태다. 이 균열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 사소한 말 한마디에 심장이 쿵 내려앉거나, 누군가의 무심한 표정에서 깊은 절망을 읽어낼 수도 있다. 반복되는 일상에 대한 지독한 피로감은 몸을 넘어 마음을 짓누르고,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버거운 날들이 이어진다. 겉으로는 여전히 밝게 웃고,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하려 애쓰지만, 속으로는 금이 간 마음이 조용히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마치 위태로운 유리잔처럼, 작은 충격에도 산산조각 날 것 같은 불안감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마음이 서서히 기울어지는 그 흐름은 ‘멘탈이 나갔다’는 말 한 줄로는 담기 어려운 복잡한 내면의 움직임이다.그러나 이 말 속에는 우리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얼마나 필사적으로 버텨왔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무너짐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그 아래에는 수많은 밤들을 잠 못 이루며 고민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일어서려 애썼던 고독한 노력들이 잠겨 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삼켜야 했던 아픔들, 이해받지 못할까 두려워 숨겨왔던 약한 모습들. 그 모든 것들이 조용히 쌓여 지금의 흔들림을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는 사회가 요구하는 '강한' 모습에 부응하려 애쓰며, 정작 가장 중요한 내면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데 익숙하다. 이 억압은 결국 더 큰 심리적 부담으로 돌아온다.
‘멘탈’이라는 단어에는 묘한 권위가 실려 있다. 강한 멘탈을 가진 사람만이 성공하고, 약한 멘탈은 실패의 징표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런 사회적 시선은 스스로의 감정을 숨기게 만들고, 흔들리는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도록 부추긴다. 감정에 솔직한 것은 나약함의 증거처럼 취급되고, 끊임없이 강인함을 증명해야 하는 부담감 속에서 우리는 더욱더 스스로의 감정을 억누르게 된다. 왜 이렇게 사소한 일에도 힘들어하느냐고, 남들은 다 잘 견디는데 왜 나만 이리 약하냐고 스스로를 질책하는 순간들이 이어진다. 스스로를 비난하는 목소리는 마음의 균열을 더욱 깊게 만든다. 이러한 사회적 강요는 감정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막고, 우리를 내면으로부터 고립시킨다. 경쟁적인 사회는 종종 개인의 취약함을 용납하지 않으며, 감정적 회복의 시간을 사치로 치부하기도 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우리는 감정을 억압하는 법만 배우고, 그것을 다루는 기술은 잊어버린다.
그러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진짜 약한 것은 감정을 느끼는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감정을 애써 외면하고 부정하는 태도 아닐까. 아무렇지 않은 척, 무너지지 않는 척, 애써 괜찮은 사람인 척 버티는 일은 결국 나를 더 아프게 만드는 길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가면을 쓰고 버텨내는 삶은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언젠가는 그 가면이 벗겨지고, 억눌렸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더욱 큰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다. 이제는 억지로 괜찮은 척하는 대신, 흔들리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싶다. 마음의 기술은 감정의 부재가 아닌, 그 존재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것은 취약성을 드러내는 용기이자, 스스로에게 진실해지는 첫걸음이다. 감정을 억누르는 에너지를, 오히려 감정을 이해하고 보듬는 데 사용할 때, 진정한 내면의 힘이 자라난다.
마음을 다루는 기술은 흔들림을 통제하는 기술이 아니다. 불안을 완전히 억제하거나, 두려움을 한 번에 몰아내는 마법 같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건 감정을 읽어내는 섬세한 감각을 기르고, 아무도 모르게 안간힘을 쓰는 나 자신을 부드럽게 안아주는 태도에 가깝다. 완벽하게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리면서도 꺼지지 않는 생명력을 지키는 법을 배우는 것과 같다. 때로는 거센 바람이 몰아칠 때도 있지만, 그 속에서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보호하고 다시 밝게 타오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은 외부의 요동에도 불구하고 중심을 지키는 능력이지, 요동 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이는 마치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뿌리를 더 깊게 내리는 것과 같다.
조금 흔들려도 괜찮다고, 오늘 하루도 참 잘 버텼다고, 스스로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는 생각보다 큰 울타리가 되어준다. 이 한마디는 외부의 비난이나 스스로에 대한 엄격한 잣대로부터 나를 보호해주는 견고한 방패가 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허락, 잠시 쉬어가도 좋다는 허용은 억눌렸던 마음의 숨통을 트이게 한다. 스스로에게 건네는 이 작은 위로는 내면의 어린아이를 달래듯 부드럽고 따뜻하다. 자기 비난의 고리를 끊어내는 순간, 비로소 마음은 숨을 쉰다. 자기 연민이 아닌 자기 돌봄의 시작점이다.
어떤 순간은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게 가장 큰 성취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늘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배우고, 성과를 내야만 가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처럼 여긴다. 하지만 마음이 지쳐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버겁고, 책장을 넘기기엔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 그저 가만히 앉아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순간, 내 안의 고요를 바라보며 서성이는 감정들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어쩌면 그 고요 속에서 진짜 나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바쁜 세상 속에서 잠시 멈춤은 단순히 쉬는 것을 넘어, 자신을 재조정하고 내면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예전에는 이런 무위의 시간이 비생산적이고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밀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이것 또한 마음을 돌보는 중요한 연습이라는 것을. 어딘가에 기대어 울고 싶은 마음, 나도 모르게 곪아 있던 피로, 그리고 쌓여 있던 슬픔과 분노들을 흘려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마음속 깊이 숨겨두었던 감정들을 꺼내어 바라보고, 인정하며 흘려보내는 과정은 상처를 치유하고 내면의 힘을 회복하는 데 필수적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그 순간 마음은 가장 깊은 치유의 과정을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비움의 미학이자,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이다. 마치 흙탕물이 가라앉아 맑아지듯이, 고요 속에서 마음은 스스로를 정화한다.
무너지지 않으려는 기술은 어떤 특별한 재능이나 대단한 노력이 아니다. 그건 일상 속 아주 사소한 선택들의 결과다. 혼자 밥을 먹을 때도 맛있는 반찬 하나를 더 챙겨 먹는 마음, 피곤한 퇴근길에 억지로 무언가를 하기보다 좋아하는 음악을 켜놓고 흐르는 멜로디에 잠시 기대어 보는 여유, 그런 작은 배려들이 쌓여 나를 다시 삶의 중심으로 데려온다.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달려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스스로의 존재 자체를 따뜻하게 보듬는 작은 행위들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이 작은 행위들은 마음의 근육을 단련시키고,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균형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거대한 기술이 아닌, 매일의 작은 돌봄이 쌓여 단단한 내면을 이룬다. 이는 마치 꾸준히 물을 주고 햇볕을 쬐어주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뿌리 깊은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
어떤 시기는 생각보다 멀리 갔다 돌아오기도 한다. 예상치 못한 충격에 마음이 심하게 흔들리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어떤 날은 스스로를 어루만지기조차 버겁다. 손끝 하나 움직일 힘도 없이 무기력함에 잠식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아오려는 연습을 멈추지 않으면, 마음은 서서히 회복의 방향으로 기울어진다. 한 번에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더라도, 작은 걸음이라도 꾸준히 내딛는 것이 중요하다.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다가가는 그 노력이 결국 마음을 단단하게 만든다. 회복은 멈추지 않는 미세한 방향 전환에서 온다. 이는 단숨에 이루어지는 기적이 아니라, 시간과 노력이 쌓여 만들어지는 견고한 과정이다.
누군가 그러더라.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는 일은,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 작고 조용한 반복의 힘에서 나온다”고. 그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견디는 게 아니라, 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그 반복. 매일의 작은 습관들, 스스로를 향한 작은 보살핌들, 그리고 흔들리는 감정들을 기꺼이 마주하는 용기. 그 모든 것들이 합쳐져 삶을 지탱해주는 견고한 힘이 될지도 모르겠다. 감정이 흔들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음을 붙드는 건 기술이고, 그 기술은 매일의 조용한 연습으로 길러진다. 우리는 모두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 다시 중심을 찾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결국, 흔들림 속에서도 나를 붙드는 힘은 스스로를 이해하고 돌보는 작은 반복에서 시작된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가장 기본적인 생존 기술이자, 더 나아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지혜로운 태도다.
사회는 종종 우리에게 강철 같은 멘탈을 요구한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약함으로, 흔들리는 것을 실패로 규정한다. 하지만 진정한 강인함은 감정을 억누르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감정을 느끼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속에서 길을 찾아가는 능력에 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때로는 무너져도 괜찮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용기. 그것이 바로 마음의 균열을 막고, 설령 균열이 생겼다 해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기술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히 흔들리는 당신의 마음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네는 것은 어떨까. 그 작은 시작이 당신의 삶에 큰 울림을 가져올 것이다. 이 글은 당신이 혼자가 아니며, 당신의 감정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임을 상기시킨다. 자기 돌봄은 가장 강력한 저항이자 혁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