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편 - 느리게, 그러나 꾸준히 길러진 것들
세상은 온통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한때 나 또한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성과를 숫자로 환산하고, 시간은 그저 결과를 만들어내는 도구쯤으로 여겼다. 다이어리에 적힌 목표 달성률, 비교 가능한 지표들, 깔끔하게 정리된 성과표만이 삶의 진도를 확인해주는 유일한 기준이라 믿었다. 그것만이 내가 잘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견고해 보이던 믿음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엔 안정되어 보이는 사람들조차 대화 속에선 이유를 알 수 없는 무력감을 드러내곤 했다.
"요즘 왜 이렇게 의욕이 없지…"
"나는 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까…"
비슷한 시기를 살아가는 이들과의 대화에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고단함이 스며 있었다. 실패를 겪은 것도 아니었고, 어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버겁다'는 말이 자주 오갔다. 지치고 있다는 걸 서로 확인하고 싶어 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아침, 알람을 몇 번이나 껐지만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창밖은 이미 환하게 밝아 있었고 하루는 시작되고 있었지만, 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칫솔조차 들지 못한 채, 이불 속에서 시간만 흘려보냈다. 그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어떤 일도 시작하지 못했다.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움직일 수 없었던 게 아니라, 움직여야 할 이유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제야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만을 자산으로 여겨온 건 아닐까? 눈에 보이는 지표에만 몰두하면서, 더 중요한 것들은 흘려보낸 건 아니었을까?'
몸이 먼저 반응했다. 무기력의 시간을 지나면서 회복력의 중요성을 비로소 깨달았다. 무너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내면의 기술이 얼마나 중요한 기반이었는지 알게 된 것이다. 하루의 반복을 지탱할 힘이 사라지자, 마음도 함께 기울었다. 기운을 되찾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하루 20분 산책을 다시 시작했고, 간단한 음식을 직접 해 먹는 일부터 다시 해나갔다. 생활 리듬 감각을 회복하며 하루의 흐름을 유지하는 연습을 한 것이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그 꾸준한 반복 속에서 생활의 리듬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불안감은 여전히 곁에 있었지만, 그것에 쉽게 휘둘리지 않을 힘이 생기고 있음을 느꼈다. 자기 중심을 잃지 않는 힘이 자라난 것이다.
그 무렵, 다시 읽고 쓰는 일을 붙잡았다. 의무감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좋아서 시작했던 독서는 이내 삶의 중요한 중심이 되었다. 어떤 날은 문장 하나에 오래 머물렀고, 또 어떤 날은 글 한 줄이 하루를 견디게 해주는 단서가 되었다. 글자는 작았지만, 그 안에는 나를 단단히 붙잡아주는 힘이 깃들어 있었다. 이는 몰입력과 비판적 사고력으로 이어졌다. 하나에 집중하는 능력과, 타인의 말에 쉽게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는 자세가 조금씩 자라났다.
그 힘겨웠던 시간을 지나며 나는 몇 가지 진정한 자산을 새롭게 발견했다. 바로 체력, 읽는 힘, 생활 리듬 감각, 감정 조율력, 그리고 회복력이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외부의 성과로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눈에 띄지 않고, 누구도 그 가치를 명확히 알아채지 못한다. 하지만 이러한 요소들이 없었다면, 그때의 나는 회복조차 시도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에게도 그런 날이 있었을까? 몸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고, 마음은 조용히 가라앉던 아침. 해야 할 일은 많았지만,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었던 하루. 그럴 때 당신을 다시 일으킨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무 말도 들리지 않던 순간, 스스로를 다시 붙잡게 만든 건 어떤 감각이었을까?
그 힘은 지금도 당신 안에서 조용히 자라고 있을 것이다. 눈에 띄지 않지만, 그 무엇보다 확실하게 삶을 지탱하는 기반. 그것이 당신의 진짜 자산이다.
생각해보면, 그런 자산들은 늘 우리 곁에 있었다. 다만 그 조용한 성질 때문에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도 아침에 일어나는 습관.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지 않고 한 호흡 늦추는 여유. 불필요한 만남 대신 진정으로 의미 있는 관계에 시간을 들이는 선택. 오늘의 기분이 삶 전체를 좌우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스리는 감각.
이런 것들은 누군가에게는 작고 무해한 습관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삶의 중심을 지켜주는 기반이었다. 그 위에서 끈기의 힘을 기르고, 정리력을 통해 삶과 공간에 질서를 부여하며, 아름다움을 감지하고 머무는 감각도 배워갔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분명하게 느낀다. 사람마다 걸어가는 길이 달라지는 이유는 결국, 어떤 자산을 삶 속에 쌓아왔는가에 따라 갈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흐름을 유지하며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건, 빠르거나 크고 화려한 결과가 아니다. 오래 이어질 수 있는 일상 감각과 리듬.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적응력. 그 속에서 지속 가능성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 그 자산은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매일의 작은 선택, 반복되는 습관 속에서 서서히 자라난다.
지금의 나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채웠는지를 더 자주 돌아본다. 지친 날에도 20분 책을 펼쳤다면, 스스로의 감정을 정돈할 수 있었다면, 하루의 끝에서 "나는 나를 버리지 않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다면, 그 하루는 충분하다. 크게 드러나지 않아도, 이 자산들은 언젠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그런 귀한 자산들을 조용히 축적해오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뒤를 돌아봤을 때 알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의 반복들, 스스로를 다독였던 작은 태도들이 삶의 방향이 되어 있었음을. 당신을 지켜온 힘이 되었음을. 당신을 당신답게 만들어왔음을.
말보다 먼저 닿는 감각이 있다. 숫자로는 보이지 않지만, 매일을 살아가게 해주는 어떤 힘이 분명히 있다. 그 자산은 지금도 당신 안에서 조용히 자라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당신을 살아가게 해줄 것이다.
당신 안에 있는 그 ‘진짜 자산’은 무엇인가? 당신은 오늘, 어떤 내면의 자산을 쌓아가고 있는가? 오늘의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