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편 -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갈까
몇 해 전 어느 여름, 우연히 오래된 다이어리 한 귀퉁이를 펼쳤다. 그 속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힌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이 멈춘 것 같다. 버겁다.”
짧은 메모였지만,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마음속에서 작은 파문이 일었다. 지금의 내가 떠올리는 말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요즘은 자주 이렇게 말한다.
“벌써 일 년의 절반이 훌쩍 지나버렸네. 시간이 왜 이렇게 빠르지?”
그때의 나는, 분명 시간을 무겁게 느끼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길고, 마음은 짙은 안개 속에 갇혀 있던 듯하다. 무언가에 눌려 있었고, 방향을 잃은 채 표류하듯 살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시절의 내 감정이 그대로 남은 문장을 다시 들여다보니, 그때의 숨결이 희미하게 되살아났다. 다만 지금은, 그 말 너머의 이유를 조용히 들여다볼 수 있을 만큼 거리가 생겼다.
시간은 여전히 하루에 24시간이고, 일 년은 365일이다. 변한 것은 시간 자체가 아니라, 그 흐름을 느끼는 방식이었다. 예전에는 같은 하루도 길고 더디게만 흘렀다. 그러나 지금은 계절이 바뀌는 것도 미처 인식하지 못한 채 반년이 훌쩍 지나 있다. 몸은 여전히 분주한데, 마음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어딘가에 멈춰 있는 듯한 기분.
며칠 전, 지인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벌써 반년이 지나버렸어. 봄이었던 것 같은데, 벌써 한여름이잖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문득, 우리 모두가 같은 질문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정말 빨라진 걸까, 아니면 우리가 그 흐름을 느낄 감각을 잃어버린 걸까.
어린 시절, 하루는 한없이 길었다. 해 질 녘까지 놀이터에서 뛰놀다 돌아와도, 그날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처음 만져보는 장난감의 촉감, 낯선 음식의 향, 새로운 동네의 공기, 모든 것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어린 뇌는 이런 새로운 경험들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매 순간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덕분에 그 시절의 하루는 촘촘한 실타래처럼 엮여 있었고, 그 촘촘한 질감이 곧 ‘시간이 길다’는 느낌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지금의 일상은 익숙함으로 가득하다. 매일 내리는 커피의 향, 늘 반복되는 출근길의 풍경, 익숙한 얼굴들. 뇌는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정보들을 ‘자동 처리’ 항목으로 분류하며 에너지를 아낀다. 이렇게 반복되는 일상은 압축되어 흐릿한 마음에 남을 뿐이다. 감성적 포착이 없는 시간의 조각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예측 가능한 삶은 우리에게 편안함을 준다. 하지만 동시에 지각의 무뎌짐을 불러온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습관화(Habituation)라 부른다. 동일한 자극이 반복되면 뇌는 더 이상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 익숙함은 안도감이기도 하지만, 삶의 생명력을 앗아가는 무감각일 수도 있다.
아침마다 마시는 커피 향도,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매일 오가는 길 위의 건물들도 이제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모든 것이 자동 항해 모드처럼 스쳐 지나간다. 마음에 남을 만한 순간을 만들지 못한 날은 그저 지나쳐가고, 우리의 삶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편안함이라는 안식처는 시간을 희미하게 만들고, 우리는 그 대가로 삶의 순간들을 잃어가는 셈이다. 이처럼 무뎌진 감각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우리는 흔히 극한의 상황에서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을 경험한다. 사고 직전의 찰나, 무대 위에 처음 올라선 순간처럼 심장이 요동치고 시야가 극도로 또렷해지는 짧은 시간. 심리학자들은 이를 시간 팽창(Time Dilation)이라 부르는데, 뇌가 평소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처리하기 때문이다. 감각의 밀도가 높아지면, 실제 시간보다 흐름이 느리게 인식된다. 이는 슬로우모션 영상처럼, 순간이 늘어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처럼 시간은 우리에게 놀라운 착시를 선사하며, 삶의 밀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운다.
반대로 반복되는 일상은 뇌를 자극하지 않는다. 지각의 농도가 낮아지면서 하루는 통째로 압축된다. 프레임이 생략된 애니메이션처럼, 우리는 그날을 ‘살았지만 살지 않은 것처럼’ 보내게 된다. 시간은 물리적인 양이 아니라, 우리가 몸으로 받아낸 자극의 농도에 따라 흐름의 빠르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시간의 상대성을 설명하는 또 다른 심리학적 개념은 비례 지각(Proportional Theory)이다. 어린아이에게 1년은 그의 인생 전체의 20%를 차지하는 거대한 기간이다. 하지만 50세에게 1년은 인생의 2%에 불과하다. 같은 365일이지만, 인생의 전체 길이에 대한 상대적인 비율이 달라지면서 체감하는 무게도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어린아이에게는 하루가 계단처럼 느리게 쌓이지만, 나이 든 이에게는 손바닥 위에서 흘러가는 모래처럼 사라진다. 이러한 비례의 착시는 때로 허무함을 안기기도 하지만, 남은 시간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살아온 세월이 길어질수록, 1년이라는 시간은 삶의 한 페이지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이런 말을 한다. “벌써 반년이 지나갔네.” “올해도 별일 없이 지나가네.” 시간이 더 빨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만큼 덜 감각하고, 덜 저장하고, 덜 살아냈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경험하지 못한 순간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다름없다.
이렇듯 우리는 시간을 잃어버리지만, 되찾을 수 있는 방법 또한 있다. 예전에 한 번, 아무런 계획 없이 하루를 보낸 적이 있다. 느지막이 일어나 아무 생각 없이 동네를 걷다가 작은 서점에 들러 낯선 책 한 권을 골랐다. 창가에 앉아 읽던 그 책의 문장 하나가 한참 동안 나를 붙잡았다. 창밖으로 나뭇가지 그림자가 흔들리는 모습, 어디선가 흘러나오던 낯선 재즈 음악. 그 모든 장면들이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되었고, 그날은 다른 어떤 날보다 훨씬 길게 느껴졌다.
전에 한 독자가 말했다. “하루를 기억할 수만 있다면, 그건 잘 산 거 아닐까요?” 그 말이 지금도 마음에 남는다. 시간을 되찾는 것은 이런 날들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속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의 감각을 예민하게 깨워 밀도를 높이는 것이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보다, 지금 이 순간을 감각으로 충만하게 살아내는 태도가 더욱 중요해진다.
밥을 빨리 넘기지 않고, 천천히 씹으며 음식의 맛과 향에 집중한다. 매일 마시던 커피를 마시기 전에, 먼저 그 향을 깊이 들이마셔 본다. 습관적으로 걷던 길 대신, 다른 골목으로 돌아가는 용기를 내본다.
처음 가보는 서점을 둘러보고, 낯선 음악에 귀 기울여 보고, 손끝으로 오래된 책의 거친 종이 질감을 느껴보는 것. 혹은 서늘한 바람의 결을 피부로 느끼며, 흙냄새 가득한 숲길을 걸어보는 것. 이처럼 낯선 느낌 하나가 하루를 길게 만들고, 그 순간의 경험을 마음에 오래도록 남게 한다.
하루가 순식간에 사라진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시간이 빠르게 흐른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감각을 잃은 채 흘려보냈기 때문일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남은 양’이 아니라 ‘남긴 감각의 깊이’로 기억된다. 지나쳐가는 것이 아니라, 단단하게 쌓이는 것이다.
평소와 다른 책을 펼치고, 햇살 드는 창가에 앉아 음악을 듣고, 창밖 나뭇가지의 흔들림에 잠시 눈길을 멈추는 작은 행동. 그 순간이 바로, 지워지지 않는 하루의 시작이 된다.
“삶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줄 안다면 충분히 길다.” ― 세네카, 『삶의 짧음에 관하여(De Brevitate Vitae)』
세네카의 이 말은, 삶이 짧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심히 흘려보내는 시간에 무게가 있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삶의 길이는 측정보다 태도에 달려 있으며, 남는 것은 결국 감각의 밀도다.
“우리는 시간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우리를 죽인다.”
― 앙리 프레데리크 아미엘, Journal Intime, 1852년 3월 17일자 일기 중에서
원문 (프랑스어):
“Nous ne tuons pas le temps, c’est lui qui nous tue.”
영어 번역:
“We do not kill time, it kills us.”
– Henri-Frédéric Amiel, Journal Intime, entry dated March 17, 1852
이 말은, 시간을 무심히 흘려보내는 것이 곧 삶의 소멸과 같다는 준엄한 경고를 담고 있다. 이처럼, 시간은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그 선물을 어떻게 열고, 어떻게 맛볼지는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
시간은 정말 빨라진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그 흐름을 느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일까.
오늘 하루의 감각이, 당신의 시간에 무늬처럼 남기를 바랍니다.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낸 새벽의 감각처럼, 삶은 매 순간 새로운 얼굴로 우리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