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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눈, 듣는 마음》

16편 - 계획대로 흐르지 않아도, 삶은 흐른다

by 정성균

예측을 벗어난 자리에서 드러나는 인생의 본모습


한 해가 시작될 무렵, 머릿속엔 이미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읽을 책 목록을 정하고, 가고 싶은 도시의 지도를 저장하고, 몇 달 후쯤 마칠 프로젝트에 맞춰 마음의 균형도 조율해두었다. 노트에는 일정이 단정히 정리됐고, 캘린더에는 목표가 촘촘히 새겨졌다. 모든 것이 계획 안에서 통제될 때, 나는 비로소 안심하는 사람이었다. 나의 시간은 그렇게 설계된 대로 흐를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렀고, 감정은 계획보다 먼저 움직였다. 문밖의 사건들은 예고 없이 밀려들었고, 예상하지 못한 감정과 상황이 조용히 균형을 깨트렸다. 누군가와의 관계가 뜻밖의 방향으로 틀어지거나, 예상치 못한 병치레가 일상을 가로막기도 했다. 가깝게 두었던 계획들은 흐트러졌고, 멀리 잡아두었던 일들은 저만치 멀어졌다. 나는 그런 흐름 앞에서 자주 이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이럴 줄은 몰랐지.”


누가 알았을까. 모든 걸 제자리에 놓았다고 믿었던 순간조차, 삶은 자신만의 속도로 어긋나는 법이었다.


무너진 순간에서 시작된 진짜 장면


그 말은 허탈함이기도 했고, 묘하게도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기도 했다. 처음엔 모든 게 무너졌다고 여겼지만, 자꾸 되뇌다 보니 조금씩 다른 결이 보이기 시작했다. 계획이라는 건 흐름의 지도이지, 그 자체가 도착지는 아니라는 사실. 삶은 뜻대로 되지 않는 흐름 속에서 오히려 진심을 묻는 순간들을 건네곤 했다.


몇 해 전이었다. 한 달 반 동안 몰입해 써온 원고가 있었다. 일정이 빠듯했기에, 새벽마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 노트북 앞에 앉았다. 글의 방향과 구성, 문장의 리듬까지 스스로에게 엄격하게 점검하며 매일 조금씩 분량을 채웠다. ‘이번에는 무언가 보여줄 수 있겠지.’ 그렇게 마음을 다해 마무리한 글을 전송하고 나서야, 짧은 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예상했던 반응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디에도 응답이 없었고, 메일함은 조용했다. 기다림이 길어지면서 생각은 점점 복잡해졌다. 혹시 잘못 보낸 걸까, 내가 뭘 놓쳤던 걸까, 아니면 내 글이 충분하지 않았던 걸까. 하루는 늦은 밤, 아무도 없는 거실에 앉아 조용히 그 원고를 다시 읽었다. 몇 번을 쓴 문장들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그때 처음으로 불이 꺼진 방 안보다 마음이 더 어둡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트북 화면을 닫고 한참 동안 가만히 있었다. 책상 아래로 흘러내린 손끝이 차가웠고, 텅 빈 밤공기에 숨이 막혔다.


‘이게 전부였을까?’

‘아니, 지금은 아닐지도.’


그때는 몰랐지만, 무언가가 천천히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멈췄다. 계획해둔 다음 원고도 열지 못했고, 책상에 앉는 시간도 줄었다. 글을 쓰는 것이 괴롭다는 생각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서야, 그 정적의 시간에도 무언가 자라고 있었음을 알게 됐다. 글은 매일 써야만 자라는 것이 아니었고, 삶을 다시 겪고 나서야 쓸 수 있는 문장도 있다는 것을. 계획이 멈춘 자리에 생긴 틈이, 오히려 더 깊은 내면을 끌어올릴 수 있게 만든 셈이었다. 나는 그제야 원고 자체보다, 그 원고를 쓰며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무엇을 간절히 바랐는지 돌아볼 수 있었다.


예외가 주는 선물들


중요한 만남은 늘 예상 바깥에서 나타났다. 우연히 들른 도서관에서 평생의 문장을 만났고, 낯선 골목의 카페에서는 오래 마음을 나눌 사람과 인사를 나눴다. 정해둔 시간표에는 없는 풍경들이, 오히려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얼마 전, 이직을 준비하던 친구가 여러 번 탈락을 거듭한 끝에 마음을 놓았다. 그는 짐을 싸서 아무 계획 없이 한 도시로 떠났고, 그곳에서 우연히 마주한 재즈 공연을 계기로 밴드 활동을 시작했다. 전공도 아니었고, 원래 원했던 길도 아니었지만, 그 안에서 그는 자신을 새롭게 조율하고 있었다.


또 다른 지인은 오랜 연애의 끝에서 큰 상실감을 겪었지만, 그 무너진 자리에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버려두었던 이젤 앞에 다시 선 그는, 이제 첫 전시회를 준비 중이다. 계획이 틀어졌기에 자신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타인과의 관계에 매달리지 않고, 자신만의 시간을 채우는 법을 배운 것이다. 삶은 꼭 '맞는' 길이 아닌, ‘깨어 있는’ 길에서 더 분명히 움직인다. 계획이 틀어질 때, 감각은 되려 예민해진다. 삶이 말을 걸어오는 소리를 듣기 시작하는 것도 그런 때다. 예상하지 못한 변화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진짜 나를 만난다.


삶은 계획이 아닌, 반응의 연속이다


사람은 불확실한 미래를 덜 두렵게 만들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계획은 안전장치일 뿐, 그것이 삶 그 자체가 되지는 않는다. 삶을 움직이는 힘은 예측이 아니라 응답이다. 예상하지 못한 변화 앞에서, 나를 유연하게 조율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삶의 진짜 내공이다.


흔들리는 날, 우리는 묻게 된다. “지금 내가 붙든 이 길이, 정말 나를 살리는 길인가?” ‘지금 이 선택이, 내 삶을 더 살아 있게 하고 있는가?’ 삶은 단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들여다보는 감각으로 다시 구성된다. 우리는 멈춰 서서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그에 반응하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간다.


느리게 흐르는 하루에 마음이 머문다


날짜는 매일 똑같이 넘어가지만, 마음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하루는 늘 같은 리듬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날은 정신없이 지나가도 아무런 자취가 남지 않고, 어떤 날은 그저 조용했을 뿐인데도 유독 오래도록 기억 깊은 곳에 남아 있다.


그 차이는 무엇을 했느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그 시간을 통과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하루를 성실히 보냈다고 해서 모두 같은 밀도로 남는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은 일도 많았고, 만남도 있었고,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체크하며 꽉 채운 하루였지만, 다음 날이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조차 잘 떠오르지 않는다. 반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그 하루가 도리어 뚜렷하게 남아 있는 이유는, 아마도 그 시간 속에 마음이 온전히 머물러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몸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감각은 깨어 있었고, 마음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한 시간은 짧아도 길게 남는다. 의미를 찾으려 애쓰지 않았는데도, 마음에 고요하게 눌러앉는다.


말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의 흔적


기억에 오래 남는 날은 대부분 느리고 조용하다. 창가에 앉아 있던 오후가 떠오른다. 무릎 위에 덮은 담요의 포근한 감촉이 다리 아래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고, 창밖의 느티나무 잎은 바람에 따라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책상 위에 펼쳐둔 책은 한 장만 넘겼을 뿐인데,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집중이 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굳이 그 이야기를 계속 읽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날이었다. 그저 그 자리에 앉아, 흐르는 햇살이 탁자 위에 만들어낸 나뭇잎의 그림자를 따라가고 있었고, 바닥을 천천히 스치는 그 그림자는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아무 일도 없었던 하루였고, 누구에게도 말할 일이 없는 하루였지만, 그런 하루야말로 오래 남는다. 왜냐하면 그 시간 속에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이 있었고, 바깥으로 흘러나오지 않았기에 더 깊이 자리한 숨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의 공기, 손끝의 감촉, 눈앞에 들어온 움직임 하나하나가 모두 조용히 함께 있었다.


계획 밖에서 드러나는 삶의 진심

『장자 · 소요유』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물이 깊으면 큰 배도 뜨고, 덕이 넓으면 큰 말도 받아들인다.” 깊은 물이 모든 것을 받아내듯, 마음에도 넉넉한 여백이 있으면 삶의 흐름은 억지로 방향을 정하지 않아도 제 길을 찾아간다. 무언가를 채우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마음, 비워두어도 불안하지 않은 상태. 그런 여유가 있을 때, 우리는 뜻하지 않게 찾아오는 장면들을 더 깊이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는 종종 계획이 없으면 불안해하지만, 감정의 방향까지 계획대로 되지는 않는다. 계획은 평면 위의 도면일 뿐이고, 삶은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이기에 늘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른다.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해서 실패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긋난 자리에서 진짜의 조각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완벽하게 짜인 스케줄보다, 흐트러진 일정 속에서 더 많이 보고 듣고 느끼게 되는 것처럼. 지연되고 멈춰진 시간 안에서 비로소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느리게 가는 발걸음 속에서 방향을 새로이 감각하게 된다.


멈춰 선 자리에서 발견하는 가능성


변경. 취소. 실패. 이 단어들은 듣는 순간 사람을 작게 만들고, 마음을 움츠러들게 한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아직 열어보지 않은 가능성이 조용히 웅크리고 있다. 무언가를 잃었다고 느낀 그 자리에, 전혀 새로운 감각이 피어난다. 우리는 멈춘 자리를 쉽게 낭비라고 말하지만, 그 자리에 머무는 동안 마음의 중심이 다시 선명해진다. 다급하지 않게, 서두르지 않게, 지금 이 흐름을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면, 그 하루는 결코 헛되지 않다. 기대했던 방향이 아니었다고 해서, 그것이 무의미했다는 뜻은 아니다. 예정보다 늦어졌다고 해서, 늦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서둘러 회복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다시 돌아보며 숨을 고르고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 그런 하루는 잠깐 흘러가는 것 같지만, 한참 뒤에도 다시 불쑥 떠오를 만큼 오래도록 남는다.


삶이 건넨 고요한 질문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익숙한 골목을 걷다가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정말 내가 바라던 방향이었을까. 평소에는 스쳐 지나가던 질문이었지만, 그날은 이상하게도 마음 한가운데에 머물렀다.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발걸음을 멈췄고,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스쳤고, 밤하늘에는 구름이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작고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던 대답. 말로는 정리되지 않는 감정. 계획으로는 붙잡히지 않는 방향. 단정한 목표와 결과 사이에서 흐르듯 피어난 고요한 진심. 그것이 그날 하루를 온전히 남게 했다.


그 질문은 아직도 내일을 향해 나와 함께 걸어간다.


그리고 나는 이제 안다. 마음으로 지나간 날은, 정말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당신에게, 지금 엇갈려 있는 당신에게


최근 어긋난 계획이 있었나. 그 엇갈림은 지금 어떤 의미로 남아 있나. 혹시 그날이, 삶이 건넨 작은 물음은 아니었을까.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지 않겠느냐’는 조용한 권유였을지 모른다.


괜찮다. 지금 잠깐 멈춘 나도 잘하고 있는 중이다. 계획이 어긋났다고, 실패라고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 그저 잠시 방향을 바꾸고, 쉼표 하나를 찍은 것일 뿐이다. 예상치 못한 그곳에서 나는 생각보다 더 단단하게 서 있을지 모른다.


오늘도, 흐름 속에서


오늘도 계획했던 일정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지만, 늦은 산책길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노란 꽃을 보았다. 걸음을 멈춘 그 순간, 노란 꽃 한 송이가 바람에 흔들렸다. 바람에 따라 고개를 돌리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그 움직임이 삶처럼 느껴졌다. 방향을 잃은 듯 보이지만 결국 다시 빛을 향해 선다. 그 작은 떨림에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늦은 오후의 눅진한 공기 냄새, 느리게 움직이는 햇빛, 그리고 잔잔하게 흔들리는 풀잎 소리. 캘린더에 적히지 않은 장면이 마음을 오래 붙든다.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계획은 삶을 그리는 연필이지만, 인생의 색은 여백에서 퍼져 나온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다. 하지만, 그게 인생을 망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스며든 길이, 우리가 진짜 도달해야 할 곳으로 이끌어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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