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편 - 기록이 가르쳐준 하루의 주인 되는 법
우리의 하루는 늘 선택의 연속이다. 특히 ‘해야 할 일’과 ‘하고자 하는 일’이라는 두 가지 힘은 매일 끊임없이 충돌하며 우리의 시간을 두고 줄다리기를 벌인다. 달력에 적힌 의무적인 일정과 마음속에서 조용히 속삭이는 내면의 바람이 서로 다른 길을 가리킬 때, 우리는 매번 갈림길에 선다. 이 갈림길은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 아니라,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매일 반복되는 사소하고도 중요한 순간들 속에 숨어 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중요한 업무 이메일을 먼저 열 것인가, 아니면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 한 페이지를 펼 것인가. 주말에 밀려 있는 집안일을 해치울 것인가, 아니면 며칠째 묵혀둔 글쓰기 프로젝트를 시작할 것인가. 이 모든 결정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하루를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방향이 담겨 있다. 해야 할 일만 좇다 보면 하루는 책임과 의무로만 가득 차게 되고, 하고 싶은 일에만 몰두하다 보면 언젠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쌓인 일들이 우리를 짓누른다.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그 균형이야말로 하루를 의미 있고 만족스럽게 만드는 핵심 열쇠가 된다.
하루가 저물어갈 무렵, 오늘 무엇을 먼저 했는지 기록해 보는 습관은 하루의 흐름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해야 할 일을 먼저 해치웠는지, 아니면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고 싶은 일을 먼저 시작했는지 말이다.
어떤 날의 기록은 이렇게 남을 수 있다. “오전엔 중요한 원고 작성에 몰두했고, 오후엔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보냈다. 하루 만족도 90%.” 이 기록은 의무와 바람을 조화롭게 배치했을 때의 충만함을 보여준다. 반면, 다른 날은 이렇게 쓰여 있을지도 모른다. “하루 종일 하고 싶은 일에만 빠져 있었다. 결국 해야 할 일은 밤늦게 몰아서 처리했고, 피곤함에 만족도는 60%에 그쳤다.” 이처럼 쌓인 기록들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했을 때 더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냈는지, 어떤 선택이 하루의 분위기를 바꾸었는지 깨닫게 해주는 소중한 길잡이가 된다.
삶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순서'를 바꿔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다. 늘 하던 대로 해야 할 일을 먼저 처리하고 남는 시간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방식도 좋지만, 때로는 반대로 시작해 보는 것도 좋은 시도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오전에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며 활력을 얻고, 그 힘으로 오후에 해야 할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중요한 점은 어느 한쪽에만 머물러 하루를 보내지 않는 것이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균형점을 찾아나가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과 끝내기 전에 “오늘 하루, 나는 무엇을 가장 먼저 선택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도 효과적이다. 이 질문은 하루의 시작을 의식적으로 만들고, 하루의 끝에서는 오늘을 되돌아보며 내일의 선택을 조금 더 신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물론, 균형이 무너지는 날도 있다. 해야 할 일의 압박이 너무 커서 하루 종일 그 일에만 매달린 날도 있었다. 저녁이 되어서야 겨우 책상에서 벗어났지만, 이미 몸과 마음은 깊은 피로에 잠겨 있었다. 그날의 기록은 “해야 할 일만 하다 하루가 끝났다. 만족도 40%”로 남았다.
다음 날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오직 하고 싶은 일에만 집중했다. 글을 쓰고, 새로운 음악을 듣고, 오후 내내 산책을 하며 보냈다. 시간이 훌쩍 흘러 밤이 되어서야 해야 할 일이 생각났지만, 이미 몸과 마음은 하루를 마무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날 역시 만족도는 40%였다. 이 두 번의 극단적인 경험은 한쪽으로만 기울어진 하루는 어떤 경우에도 공허함을 남긴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때부터 회복은 크고 화려한 변화가 아닌, 작은 조정에서 시작되었다. 다음 날은 오전에 딱 한 시간만이라도 하고 싶은 일을 먼저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에너지를 바탕으로 오후에는 꼭 해야 할 일을 마무리했다. 이렇게 작은 균형점을 찾아나가자, 하루의 만족도는 서서히 올라갔다. 회복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았지만, 균형을 조금씩 되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나를 더 단단하고 유연하게 만들었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나누는 기준은 사람마다, 그리고 삶의 단계마다 다르게 적용된다. 어떤 사람에게는 규칙적인 운동이 건강을 위한 의무일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즐거움을 위한 취미일 수 있다. 글쓰기가 직업인 사람에게는 원고 작성이 생계를 위한 필수적인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내면의 생각을 정리하는 즐거운 선택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기준이 아닌, ‘오늘의 나’에게 그 활동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하는 점이다.
따라서 하루를 계획할 때는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각각 분리해 적는 대신, 한 줄에 나란히 기록해 보는 것이 좋다. 서로 다른 종류의 시간을 한눈에 살펴보면, 그 배치를 어떻게 조율할지 자연스럽게 감이 잡히고, 마음속 균형도 한층 뚜렷해진다.
삶을 바라보는 철학자들의 시선은 오래전부터 삶을 의무와 욕망의 줄다리기로 보았다. 한쪽에만 치우치면 삶의 균형이 무너지고, 이 두 가지 사이의 줄을 단단히 쥐고 있는 것이 진정한 균형이라고 주장했다. 고대 철학이 이상적인 덕(virtue)과 질서에 기반한 보편적 균형을 중시했다면, 현대 심리학은 개인의 자각과 행동 변화를 통해 균형을 찾아가는 실천적 방법을 제시한다. 즉, 이상을 향한 거시적 관점에서 개인의 주체적인 선택과 작은 습관을 통한 미시적 관점으로 그 시선이 확장된 것이다.
심리학은 여기에 실질적인 방법을 더한다. 작은 기록 습관이 하루의 선택을 바꾸는 이유는, 인간의 뇌가 스스로의 행동을 인식하고 긍정적인 결과를 확인할 때 보상 회로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만족스러운 하루를 적고 스스로 점수를 매기는 행위는 뇌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어 다음 선택을 의식적이고 발전적인 흐름으로 이끌어 준다. 이러한 기록은 자기 효능감을 높이고, 삶을 주도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준다.
하루는 매번 같은 길을 걷는 것 같지만, 우리가 하는 작은 선택 하나하나에 따라 완전히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 배치했는지가 바로 그 풍경의 색깔을 결정한다. 이 둘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는 노력을 통해 우리는 풍부하고 다채로운 색감의 풍경을 완성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작은 선택들을 기록하는 습관은 우리 삶의 방향을 조정하는 나침반이 된다. 매일의 기록은 어제와 다른 나를 인식하게 하고, 더 만족스러운 선택을 위한 의식적인 노력을 이끌어 준다. 이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삶을 의도적으로 주도하는 법을 익히게 된다. 작은 기록들이 차곡차곡 쌓이며 나만의 삶의 서사를 형성한다. 나는 오늘도 그 하루의 주인이 되기 위해 선택들을 의식하고 기록한다. 이 행위가 삶을 의미 있고 만족스럽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믿음을 품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