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편 - 불안이 건네는 오래된 이야기
오랫동안 불안은 없애야 할 무언가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초대하지 않았는데도 찾아와 한쪽 구석을 차지하는 손님 같았다. 아침 햇살이 커튼 틈새로 스며들고, 부엌에서 물 끓는 소리가 들려와도, 가슴 깊은 곳에서 심장을 두드리는 진동이 있었다. 그 떨림이 사라지면 편안함이 올 거라 믿었지만, 밀어낼수록 다른 얼굴로 나타났다.
밤이 깊어질수록 불안은 더 선명해졌다. 시계 초침이 또각거릴 때마다 마음속의 경계는 조금씩 높아졌다. 잠들기 전 창문 너머로 스치는 자동차 소리조차 알 수 없는 긴장을 불러왔다. 불안을 손으로 밀어내듯 무시했지만, 문틈으로 스며드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불안을 배척할수록 내 안의 다른 감각들까지 함께 닫힌다는 것을. 오히려 옆자리에 앉히고 잠시 숨을 고르는 편이 덜 지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건 뒤늦은 일이었다.
어느 아침, 창밖의 빛이 부드럽게 번지고,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잦아들 무렵 알 수 없는 긴장이 가슴을 조였다. 휴대전화 화면에 ‘읽지 않은 메시지 1개’라는 문구가 떴다. 내용을 보기도 전에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심장이 두세 번 빠르게 뛰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조건형성이라 한다. 과거 비슷한 순간에 불쾌한 경험을 했다면, 뇌는 그 자극을 위험 신호로 기록한다. 실제 위협이 없어도 그 기억은 몸을 먼저 움직이게 한다. 한 통의 문자, 전화벨, 누군가의 표정 하나가 하루의 흐름을 바꿔놓는 이유다. 혹시 당신도 알람 소리에 이유 없이 가슴이 조여 온 적이 있는가. 그것은 지금이 아니라 오래전 경험이 다시 작동하는 순간이다. 억지로 멈추기보다 “아, 내 몸이 옛 기억을 꺼내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릴 때 훨씬 빨리 가라앉는다.
불안은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낸 경보기다. 뇌 속 편도체는 위협을 감지하는 즉시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을 분비하도록 지시한다. 투쟁-도피 반응이라 부르는 이 과정은 원래 덤불 속 포식자에게서 몸을 지키는 장치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형태로 울린다.
다가오는 마감일, 상사의 한마디, 열지 않은 메일 제목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의식이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몸은 이미 방어 태세에 들어간다. 오래된 경보기는 작은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변화를 위협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경보를 완전히 끌 수는 없지만, 음량을 줄이는 방법은 배울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내 안의 ‘위험’이라는 정의를 새롭게 써야 한다.
불안의 뿌리는 종종 오래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어린 시절 운동회 날, 출발선에서 쏟아진 시선, 발이 엉켜 넘어졌을 때의 흙냄새와 귀 끝을 스친 웃음소리가 아직도 남아 있다.
애착이론은 말한다. 안정적인 돌봄의 부재는 세상을 불안정하게 보게 만든다. 실패와 부끄러움의 기억은 감정의 층에 눌러 쌓여 있다가, 비슷한 상황에서 다시 깨어난다. 그 기억은 때때로 현재의 나를 붙잡는 그림자가 된다. 지금 느끼는 불안이 사실은 과거의 나를 보호하려는 마음에서 온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볼 일이다.
관계의 거울 속 나
사람은 혼자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확인한다. 심리학자 마크 리어리는 인간이 타인의 평가를 민감하게 의식한다고 했다. 그 지표가 낮아질 가능성이 불안을 부른다.
사회적 비교 이론에 따르면, SNS 속 반짝이는 누군가의 하루, 축하 메시지가 이어지는 승진 소식은 우리를 비교의 장으로 끌어들인다. 뇌는 비교를 생존의 위협처럼 받아들인다. 화면 속 타인과 거울 속 내가 겹쳐질 때 마음에는 작은 균열이 생긴다. 이럴 때는 전화를 내려놓고 주변의 구체적인 감각에 주의를 두는 것이 좋다. 손에 닿는 컵의 온기, 창문 틈으로 스미는 바람,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 같은 것들. 타인의 속도가 아니라 내 속도를 기준으로 하는 습관이 불안을 완화한다.
불안을 줄이려는 행동이 오히려 불안을 키울 때가 있다. 인지행동이론에서는 이를 회피와 비합리적 믿음이라고 한다. “혹시 틀렸으면 어쩌지.” “한 번만 더 확인하자.” 이런 생각은 잠시 안도감을 주지만 불안을 약화시키지 않는다.
닫힌 문틈으로 스며드는 바람이, 아무 일도 없는 방 안에서 불안을 키우듯 걱정은 걱정을 불러오고, 불안은 그 위에 쌓인다. 잠들기 전 알람을 여러 번 확인한 경험이 있는가. 그 순간에는 안심이 되지만 다음 날도 같은 행동이 반복된다. 불안은 이렇게 스스로 재생산된다.
불안을 없애는 것보다 다루는 법을 배우는 것이 현실적이다. 마음 챙김은 그 방법 중 하나다. 호흡의 길이, 손끝의 온기, 발바닥이 닿는 바닥의 감촉에 집중하면 편도체의 과도한 반응이 가라앉는다. 전전두엽이 다시 기능을 회복하는 것이다.
불안이 고개를 들 때 4-4-6 호흡법을 시도해 보자. 네 박자 들이마시고, 네 박자 멈춘 뒤, 여섯 박자 내쉰다. 회의 전, 발표 직전, 지하철에서도 할 수 있다. 하루 3분 ‘불안 일기’를 쓰는 것도 효과적이다. 지금의 불안을 적고, 그것이 나를 지키려는 의도가 있는지 물어본다. 그 답이 의외의 위로가 될 때가 있다.
불안은 오래된 경호원과 같다. 우리를 지키려는 마음으로 문 앞에 서 있지만, 그 시간이 길어지면 존재 자체가 낯설어진다. 그가 문을 두드릴 때 이유를 물을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오늘 불안에게 물어보자. “너는 무엇을 지키려고 온 거니?”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자. “나는 너를 어떻게 맞이할까?” 그 대답 속에서 우리는 불안과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숨을 나눌 수 있다. 그 순간 불안은 적이 아니라 삶의 일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