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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이 되어, 새롭게 보이는 풍경

by 정성균

인생이라는 긴 강물에 몸을 맡기고 흐르다 보면, 어느덧 그 한가운데에 다다르는 순간이 온다. 거친 물살을 헤치며 앞으로만 나아가던 젊은 날의 무모한 질주는 잦아들고, 이제는 잠시 멈춰 서서 강 주변의 풍경을 둘러보게 된다. 그때 우리는 깨닫게 된다. 더 이상 무언가를 채우고 쌓아 올리는 시기가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기꺼이 비우고, 가만히 내려놓는 법을 배워야 하는 때라는 것을. 중년의 문턱에서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것들, 그것은 우리를 온전히 우리 자신으로 만들어 줄 아주 중요한 가르침이다.


그림자에서 벗어나, 오늘의 빛으로


과거는 늘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존재다. 때로는 후회로, 때로는 이루지 못한 꿈의 잔해로 우리 곁을 서성이지. 젊었을 때야 ‘앞으로 잘하면 돼’라는 긍정의 주문이 꽤 큰 위안이 되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위안은 얄팍한 공허로 변하고 만다. 실패의 쓴맛과 아쉬움의 무게가 한 꺼풀 두터워져 현재의 어깨를 짓누르기 때문일 거다. 무거운 짐을 끌고 가는 사람처럼, 우리는 과거의 기억을 질질 끌며 오늘을 힘겹게 살아간다.


늦은 밤, 창밖으로 빗방울이 유리창을 타고 흐른다. 식탁 위에 남겨진 찻잔에서 아직 식지 않은 온기가 피어오르고, 그 앞에서 오래 전의 실패를 곱씹는 사람들이 있다. 그 시절의 서툰 선택, 엇나간 걸음 하나하나가 낡은 필름처럼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실패가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이성으로는 알지만, 감정적으로는 여전히 그 무게에 갇혀 지내는 경우가 많다. 빗물 자국처럼 선명하게 남은 과거의 상처가 오늘의 자유로운 걸음을 방해하는 형국이다.


오래전 사업 실패의 기억을 온전히 떨쳐내지 못했던 한 지인이 있었다. 그는 새로운 기회가 문을 두드릴 때마다 두려움에 몸을 움츠렸고, 결국 눈앞의 수많은 가능성을 속절없이 흘려보냈다. 그를 짓누르던 감정은 후회가 아니었다. 새로운 시작 앞에서 온몸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거대한 벽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는 문득 깨달았다. 그 아픈 실패가 무능력의 증거가 아니라, 자신을 훨씬 단단하게 벼려낸 귀한 토대였다는 것을. 과거는 더는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 아니라, 온몸으로 겪어낸 배움의 흔적이었음을 말이다. 그 깨달음을 가슴으로 받아들인 뒤에야 그는 비로소 오늘을 살아낼 수 있었다.


하버드대학의 대니얼 길버트 교수는 현재의 시선으로 과거를 평가할수록 후회의 감정이 더욱 커진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과거를 돌아볼 때, 그때의 상황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기보다 현재의 가치와 기준에 맞춰 재해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 왜곡된 시선이 후회를 증폭시킨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아쉬움에 대한 미련의 끈을 끊어낼 때, 우리의 현재는 비로소 원래의 빛을 되찾게 될 것이다.


비교의 사다리를 내려놓고, 내 길로


청년기의 경쟁은 때로는 성취의 긍정적인 불꽃이 되기도 했다. 더 높이 오르고 싶다는 열망이 확실한 목표를 그려주었으니까. 그러나 중년의 삶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채찍질한다면, 그 끝에 남는 것은 극심한 피로뿐일 거다. 몸과 마음은 이미 지쳐 있는데, 외부의 기준에 맞추려 안간힘을 쓰다 보면 영혼까지 닳아 없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언제나 후배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깊은 불안에 시달리던 한 직장인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뒤처지고 있다고 믿을수록 불면증이 심해져 갔다. 매일 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며 '나는 왜 저렇게 되지 못했을까' 하고 스스로를 몰아세웠지. 그는 남들이 세운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외부의 사다리는 끝없이 길어질 뿐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상담을 통해 외적 성취가 아닌 내면의 만족에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 타인의 화려한 성공이 자신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른 이의 행복이 나의 불행을 증명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는 마음 깊이 알게 되었다. 그 깨달음 하나가 그토록 무거웠던 삶을 한결 가볍게 만들었다. 비로소 그는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한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칼 융은 중년의 시간을 ‘영혼이 자라나는 시기’라고 불렀다. 젊은 시절이 외부 세계에 적응하고 자아를 확립하는 '성취의 시간'이었다면, 중년은 내면세계로 시선을 돌려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는 '자기실현의 시간'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남의 기준과 시선은 이제 더는 삶의 나침반이 될 수 없다. 자신의 내밀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라는 의미이리라. 끝없는 비교에서 벗어날 때에야 비로소 삶은 본래의 선명한 색채를 되찾을 수 있다.


불완전함 속에서 피어나는 자유


중년은 완벽의 굴레를 놓지 못하는 때이기도 하다. 사소한 실수조차 스스로에게 허용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몰아세우지. 완벽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젊은 날의 습관이 남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려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시작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완벽'이라는 허상에 갇혀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토록 애썼던 완벽의 무게는 당신의 삶을 얼마나 가볍게 만들었나. 늘 빈틈없는 사람이 되려 애썼던 한 50대 직장인이 있었다. 그는 매사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회의 자료 하나를 만들어도 며칠 밤을 새우고, 보고서의 작은 오타 하나도 그냥 넘기지 못했다. 그의 삶은 끝없는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 하지만 결국 깨닫게 되었다.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그 노력은 오히려 자신을 고갈시킬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비로소 그는 온전히 가벼운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만하면 충분하다’라는 마음이 가져온 것은 새로운 해방감이었다. 더 이상 타인의 칭찬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었고, 스스로의 노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브레네 브라운은 그녀의 저서 《불완전함의 선물》에서 완벽주의가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대한 근원적인 두려움에서 시작된다고 설명한다.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오히려 더 크게 전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완벽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때에만, 우리의 삶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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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상담가로서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며 소중한 순간들을 글로 기록해 나가고 있습니다.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며, 이를 통해 깊이 있는 사유와 글로 표현하며 교감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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