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자리에서 나를 다시 일으키는 힘에 대하여
살면서 단 한 번의 무너짐도 겪지 않은 영혼이 지상에 존재할까.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름으로 불리는 슬픔의 무게를 등에 지고, 생의 어느 모퉁이에서 반드시 한 번은 무릎을 꿇는다. 그 시련은 때로 출근길 아침, 발끝을 적시는 차가운 빗물처럼 사소한 절망의 모습으로 찾아오고, 때로는 사랑했던 세계 전체가 한순간에 내려앉는 거대한 산사태처럼 덮친다. 그러나 그 형태와 깊이가 어떻든, 모든 것이 멎어버린 세상의 정적 속에서 서늘해지는 심장을 느끼는 순간, 가장 깊은 곳에서 서로 연결되는 보편의 언어를 공유하게 된다.
세상은 단단해지라고,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성이 되라고 속삭여왔다. 하지만 인생이란 잘 깎인 대리석 기둥이 아니라, 달빛 아래 흔들리며 제 그림자와 춤추는 유연한 갈대밭에 더 가깝지 않은가. 무너짐은 낙오의 증거가 아니다. 그것은 살아있다는, 무언가를 향해 온 마음의 열기를 쏟아부었다는 뜨거운 흔적이며, 삶이라는 악보에 새겨진 지극히 자연스러운 쉼표다. 시련의 기억은 붉게 상기된 뺨 위로 흐르던 눈물로 남아있다. 평생 이름이라 믿었던 회사 명함이 한 장의 서류로 대체되던 그날 오후. 십수 년 청춘을 고스란히 바쳤던 책상 위 명패를 스스로 거두어 나와야 했던 순간. 동료들의 어색한 위로와 애써 외면하는 시선 속에서 건물을 빠져나와, 익숙한 거리의 소음이 갑자기 낯설게 들려오던 그 막막함.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정처 없이 도시를 헤매다, 어둑해진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아 들이켜던 차가운 캔맥주. 그 밤, 소리 내어 울 수도 없었다. 그저 이름 석 자보다 선명했던 직함이 사라진 세상의 무게에 짓눌려, 한없이 작아진 그림자를 끌어안을 뿐이었다. 그러나 싸늘한 벤치의 냉기 속에서,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지점에서, 생의 심지가 조용히 벼려지고 있었음을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닫게 되었다.
왜 나여야만 했는가. 모든 것이 사라진 자리에서, 잿더미를 뒤지는 심정으로 그 질문만을 파고들었다. 처음에는 온몸이 분노와 저항의 갑옷을 두르고 있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을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주문처럼 되뇌었다. ¹ 실패는 패배가 아니라, 낡은 세계를 부수고 새로운 나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이가 갈리도록 스스로를 다그쳤다. 내 삶이 마치 영원히 굴러 떨어질 돌을 밀어 올리는 형벌과 같을지라도, 이 무의미해 보이는 노동 속에서 기어이 인간의 존엄을 증명해 보이리라 악을 썼다. ² 그러나 굳은살이 박이고 실핏줄이 터져나가도록 돌을 밀어 올리는 과정 속에서, 부서지고 깨져나간 것은 정작 돌덩이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마침내 두 팔을 늘어뜨리고 주저앉아 버린 그 밤, 스스로 쌓아 올린 견고했던 성벽이 완전히 허물어진 그 자리에서, 비로소 성벽 너머의 광활한 지평선을, 그동안 단 한 번도 올려다보지 못했던 무수한 별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견고한 것만이 살아남는다는 믿음은, 가장 단단했던 자신이 부서지고 나서야 깨어졌다. 영혼이 완전히 소진되어 텅 비어버린 후에야, 저항이 아닌 수용의 지혜에 비로소 고개를 돌릴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물이 가장 견고한 바위를 깎아내고, ³ 거센 비바람에 거목은 부러져도 유연한 대나무는 살아남는다는 이치를 책 속의 글자가 아닌, 온몸의 통증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무너짐이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버티는 대신, 그 물결에 힘없이 몸을 맡기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두려운 포기였으나, 이상하게도 평온한 자유였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진리⁴가, 뼈저린 상실의 경험을 통해 비로소 내면의 일부가 되었다. 파괴는 끝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생성을 위한 고요한 전주곡이었으며, 모든 것이 사라진 텅 빈 충만 속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들이 조용히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 회복탄력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상처가 아물어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아니다. 회복탄력성은 상처 입기 이전보다 깊은 시선, 너그러운 마음, 따스한 사유를 품게 되는 내면의 성숙이다. 옛 도자기, ‘달항아리’를 떠올려본다. 어떠한 꾸밈도 없이 넉넉하고 순박한 그 형태는 완벽한 좌우대칭을 이루지 않기에 오히려 더 깊은 감동을 준다. 본디 달항아리는 위와 아래, 두 개의 반쪽을 따로 만들어 붙여서 완성된다. 그 이음매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비로소 하나의 온전한 세계를 이루는 것이다. 회복탄력성이란 바로 영혼의 달항아리다. 무너졌던 과거의 자신과 그것을 딛고 일어선 현재의 자아가 만나 만들어내는 경계의 선, 그 흔적이야말로 상처를 넘어선 통합의 증거이며 스스로를 세상 유일한 존재로 빚어내는 고유한 곡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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