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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세상은 오늘, 얼마만큼 따뜻했나요?

어떻게 세상을 온전히 사랑할 것인가

by 정성균

하나의 우산이 열어준 세계


장대비가 도시를 잠식하던 퇴근길. 붉은 후미등의 강은 멈춰 섰고, 젖은 아스팔트와 클랙슨의 소음 속에서 나는 세상과 분리된 무감각한 부품이었다.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를 키우던 바로 그 순간, 유리벽으로 된 버스 정류장 구석에서 비바람을 맞는 젊은 엄마와 아이가 시야에 박혔다. 엄마는 자신의 조그만 우산으로 아이의 어깨를 필사적으로 감쌌지만, 사방에서 들이치는 비에 아이의 신발은 이미 속수무책으로 젖어들고 있었다. 질주하는 문명은 연민 없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그들 곁을 스쳐갔고, 그 모자는 광활한 무관심의 바다 위에서 서로의 온기만을 의지한 채 위태롭게 떠 있는 작은 섬이었다.


그 애처로운 장면이 하나의 질문이 되어, 굳게 닫혔던 내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그 순간 나는 왜 흔들렸는가. 그것은 피상적 연민을 지나, 내 존재의 근원을 향한 질문이었다. 복잡한 도시 시스템 속에서 효율적인 ‘부품’으로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진 나에게, 그들의 무력함은 곧 나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시대의 거센 흐름 앞에서 한없이 연약한 개인. 그 힘없는 존재를 외면하는 순간, 나 또한 스스로를 외면하는 것과 같았다.


그 선택은 시혜의 몸짓에서 멀어져, 이 무심한 세상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려는 필사적인 뜻으로 응결되었다. 나는 내면의 짧은 전쟁을 끝내고 비상등을 켰다. 트렁크에서 잠자던 여분의 우산을 들고 그들에게 다가가 건넸다. 괜찮다며 손사래 치는 엄마의 손에 우산을 쥐여주고 차로 돌아왔을 때, 백미러 너머로 아이를 품에 안고 활짝 펼쳐든 우산이 보였다. 그 원 하나가 잠깐의 안식처를 세웠다. 그것은 폭우가 지배하는 공간에 생긴 유일한 성소였다. 전체를 보는 차가운 눈과 한 존재의 고통을 헤아리는 뜨거운 마음이 만나는 그 지점에서, 비로소 세계와 나 사이의 어긋난 조각 하나가 제자리를 찾으며 오는 깊은 존재론적 안도감이었다.


별들의 지도와 한 송이 꽃의 이름


그날의 기억은 나를 종종 도시의 가장 높은 곳, 바람이 모든 소리를 삼켜버리는 고층 빌딩 옥상으로 이끌었다. 그곳에 서면 발아래 풍경은 광대한 모형처럼 펼쳐졌다. 이 압도적인 전경 앞에서 나는 종종 로마의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떠올렸다.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위에서부터 내려다보라. 수많은 사람들의 무리와 그들의 온갖 의식, 폭풍우와 정적 속의 다채로운 운명을." 그의 말처럼, 스토아 철학자들이 추구했던 ‘위에서 본 조망’은 나로 하여금 장엄한 파노라마를 보게 했다. 개인의 희로애락은 극히 사소하게 여겨지다가도, 이내 그 하나하나의 여린 존재가 모여 눈부신 은하수를 이룬다는 경이로움에 휩싸였다. 이것이 거시적 시야가 주는 힘이다. 교향곡 전체의 악보를 읽으며 장엄한 흐름을 꿰뚫어 보는 힘. 그것은 때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우리를 구하고, 삶의 방향을 설정하게 하는 내면의 나침반이 되어준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알고 있었다. 그 차가운 신의 시선은 위험했다. 모든 개별의 고통을 추상화시키고, 끝내 통계 속의 숫자로 환원시킬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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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상담가로서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며 소중한 순간들을 글로 기록해 나가고 있습니다.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며, 이를 통해 깊이 있는 사유와 글로 표현하며 교감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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