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를 축적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면서 하라 -
우리는 성공이라는 단어를 물질적 풍요, 특히 부의 축적과 동일시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좋은 대학에 진학해 안정된 직장을 얻고, 가능한 한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성공의 정석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 간결한 공식은 인간 존재의 더 깊은 의미와 목적을 간과하게 만든다. 부를 향해 질주하는 동안, 우리는 종종 '왜'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잊는다. 우리는 왜 부를 추구하는가? 그 부는 궁극적으로 어떤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가?
본고(本稿)는 ‘부를 축적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면서 하라’는 명제를 지향점으로 삼아, 부의 진정한 의미와 목적을 탐구하는 철학적 성찰이다. 이는 부자가 되라는 조언을 넘어, 우리가 부를 어떻게 바라보고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부(富)라는 한자는 집(宀) 아래 가득 찬(畐) 형상으로, 본래 집안에 재물이 가득한 상태를 의미했다. 이는 부가 단순히 화폐의 양이 아니라, 삶의 터전과 그 안에서의 생산 활동,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가치가 통합된 개념임을 시사한다. 즉, 부는 본질적으로 고립된 개인의 것이 아닌,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의미를 갖는다.
현대 사회는 부를 개인의 금융 자산 규모로 환원시키곤 하지만, 동서고금의 지혜는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동양의 유교 사상에서 부는 사회적 책임과 분리될 수 없는 개념이었다. 공자(孔子)는 “부와 귀함은 누구나 바라는 것이나, 올바른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면 머물지 않는다(富與貴, 是人之所欲也, 不以其道得之, 不處也)”고 말하며 부를 축적하는 과정의 윤리적, 사회적 정당성을 강조했다.
서양 철학의 거목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부를 ‘선한 삶(eudaimonia)’을 위한 수단으로 보았을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계했다. 현대 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저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시장 가치가 인간의 모든 관계와 사회적 가치를 잠식하는 현실을 비판하며, 우리에게 부의 본질을 되물을 것을 촉구한다.
결국 진정한 부는 물질의 축적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이 빚어내는 관계의 깊이와 가치의 확장 속에서 드러난다. 자기만을 향하던 부가 타인과 사회로 흐를 때, 그 안에서 가장 온전한 의미가 완성된다.
부를 가진 자의 사회적 책임은 인류 역사 속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변주되어 왔다. 고대 그리스 시민들의 공공 기부, 로마 귀족들의 자선 활동, 중세 기독교의 구제 사상, 그리고 동아시아의 ‘수기치인(修己治人)’ 정신은 모두 부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서양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전통은 이러한 흐름의 정점에 있다. ‘귀족의 의무’를 뜻하는 이 말은 사회적 지위와 부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른다는 원칙이다. 19세기 사상가 존 러스킨은 “부는 삶을 지배하는 힘이며, 그 힘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사용될 때 가장 고귀하다”라고 역설했다. ¹
동아시아에서는 유교의 ‘대동사회(大同社會)’ 이념이 부의 공정한 분배와 사회적 조화를 꿈꿨다. 맹자(孟子)는 “천하의 모든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즐거움”이라 가르쳤다. 개인의 부와 행복이 공동체의 안녕과 분리될 수 없다는 사상이다.
근대 자본주의가 발흥하며 부의 축적은 점차 도덕적 의무에서 분리된 순수한 경제 활동으로 변모했다. 그러나 19세기말, 앤드류 카네기와 같은 거부(巨富)들은 ‘부의 복음(Gospel of Wealth)’을 통해 부자의 사회적 책임을 다시금 역설했다. “부자로 죽는 것은 수치”라 선언하며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그의 철학은, 오늘날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의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로 이어지며 현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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