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흑백 사진 한 장을 꺼내 들었다. 빛이 빠져나간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흐려져 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날의 공기는 아직도 사진 속에 남아 있는 듯했다. 여름이었을까, 가을이었을까. 계절조차 헷갈리지만, 묘한 정적만은 또렷하게 붙잡혀 있다. 나는 그 고요를 오래 바라보다가 문득, 왜 이렇게 오래 붙들려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인간의 기억은 이러한 장면을 온전히 보존하지 못한다. 수많은 감정과 경험이 겹겹이 덧칠되면서 원본의 색은 사라지고, 때로는 더 화려하게, 때로는 더 쓸쓸하게 변형된다. 기억이 시간이라는 거대한 강물에 휩쓸려 끊임없이 형상을 바꾸는 물결이라면, 기록은 그 강바닥에 묵묵히 가라앉아 본래의 모습을 지키는 단단한 조약돌과 같다. 기록은 감정보다 선명하고, 기억보다 오래 살아남아 순간의 진실을 증언한다.
우리는 기억하기 위해 기록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기록은 때로 우리를 기억의 짐에서 해방시킨다. 머릿속에 붙들어 두기에는 너무 무겁거나 선명한 장면을 글과 사진, 소리와 영상에 옮겨놓음으로써 인간은 비로소 안도한다. 이 오래된 진실은 기록과 기억이 서로 보완하는 관계에 그치지 않고, 서로를 규정하고 해석하는 긴밀한 장치임을 보여준다. 이 글은 시간성, 객관성, 존재의 지속성이라는 세 축을 따라 기록의 의미를 탐색하고, 이어서 디지털 유동성이라는 새로운 흐름이 이 관계를 어떻게 재편하는지를 살펴보며, 끝으로 우리가 감당해야 할 기억과 망각의 윤리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인간은 과거의 경험에 발을 딛고, 그 위에서 미래를 기획하며, 현재라는 순간을 살아간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인간을 ‘시간적 존재’라 칭했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가지만, 인간은 기억을 통해 그 흐름에 저항한다. 그러나 그 저항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어제의 감격은 오늘의 무덤덤함 속에서 빛이 옅어지고, 십 년 전의 고통은 희미한 흉터로만 남는다. 이를테면 졸업식에서 울던 감격의 순간은 몇 장의 사진으로만 남고, 당시의 감동은 시간이 지나면 ‘그랬었지’ 하는 짧은 회상으로 줄어든다. 시간이 쌓이고 흘러가는 속도 앞에서 기억은 속절없이 지워지고 다시 쓰인다.
이때 기록은 단절된 시간을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먼지 쌓인 책장 구석에서 꺼내든 낡은 일기장 속 서툰 문장은 열여덟 살의 나를 불러내 현재의 나와 마주하게 한다. 종이 위에 눌러쓴 글씨는 그저 문자의 집합이 아니라, 그때의 두려움과 희망, 열망과 혼란을 지금 이곳으로 소환하는 매개체다. 빛바랜 잉크 자국을 손끝으로 더듬는 순간, 그 시절의 불안과 희망이 현재의 나에게로 건너온다. 우리는 잊고 있던 과거의 나를 다시 만나고, 그와의 대화를 통해 지금의 내가 누구인지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된다. 인류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수천 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로제타 스톤은 고대 이집트 문명을 오늘의 언어로 번역해 내며, 과거의 목소리를 다시금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기록은 이처럼 시간을 가로지르는 다리이자, 인간과 인류 모두에게 연속성을 확인시켜 주는 오래된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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