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속에 흔적을 남기는 삶에 대하여

by 정성균

시간의 고요한 지평 위에서, 우리의 생은 잠시 머무는 길손과 같다. 그 길 위에서 피어났던 무수한 이름들은 짧은 영광의 계절을 보낸 뒤 망각의 고요 속으로 스며든다. 언젠가 사라질 것을 알기에, 인간은 역설적으로 지워지지 않을 무언가를 바라며 살아왔다. 그 지독한 열망이 한때는 거대한 기념비를 세우고, 대지의 모습을 바꾸는 대업을 이루었다.


그러나 지금, 모든 순간이 디지털의 조각들로 저장되고 공감의 숫자로 존재를 증명받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기록을 남기는 듯 보이지만, 그 기록들은 넘쳐나는 정보의 격류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빛을 잃는다. 세상은 속도를 미덕이라 칭하며 더 빨리, 더 높이, 더 찬란하게 타오르기를 종용한다. 잊히지 않으려는 목소리가 텅 빈 공간을 맴돌다 흩어지는 시대. 그 목소리들 또한 언젠가 사라질 존재의 필사적인 저항일지 모른다. 거대한 시간의 침묵 앞에 홀로 서는 일이 두려워, 인간은 그렇게 자신만의 독백을 이어간다.


하지만 여기, 시간의 무게를 견뎌내는 다른 종류의 자취가 있다. 그것은 단단한 석판에 새긴 이름이 아닌, 누군가의 마음에 깃든 다정함이며, 순간의 환호를 잠재우는 묵묵한 지속의 리듬이다. 가장 성숙한 영혼은 돌이 아닌 마음 위에 자신의 이야기를 새기는 법을 안다. 이것은 바로 그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잊히는 시대에 살아남는 법


한때 모든 화면을 가득 채웠던 이름은 계절이 두어 번 바뀌는 동안 사람들의 기억 저편으로 희미해진다. 반면, 이름 모를 누군가가 건넨 사려 깊은 말 한마디, 한평생을 바쳐 말없이 지켜온 올곧은 태도는 긴 세월을 관통하여 한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남아 꺼지지 않는 불씨가 된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누군가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존재는 자신을 드러내려 애쓴 이이기보다, 자신의 생을 조용히 살아낸 이라는 사실을. 영혼을 어루만지는 진심의 꾸준한 파동만이 스러져가는 시간을 견뎌낸다. 찰나의 열기는 사라져도, 진심으로 이어온 반복의 시간은 닳지 않는다.


모든 것이 가속화되고 잊히는 이 시대는, 사람의 인간적인 감촉이 깃든 태도의 가치를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효율’의 자리를 ‘정성’이 채우고, ‘보여주기’ 위한 몸짓 대신 ‘함께 있기’를 선택하는 마음. 그 마음들이 모여 비로소 우리가 발 딛고 선 공동체의 보이지 않는 바탕이 된다.


고요한 중심을 지키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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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생각과 마음의 결을, 책 속 문장과 함께 조용히 전합니다. 스친 만남이 믿음으로 이어져 각자의 하루에 힘을 더하는 장면들을 담담히 써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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