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를 먹는 대신, 마음을 키워가는 법 -
언제부턴가 놀라지 않는다. 감동도 서서히 희미해지고, 세상의 변화가 나와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뜨거웠던 여름의 기세가 채 가시기도 전에 외투를 꺼내 입는 계절의 변화처럼, 마음의 속도도 예전 같지 않음을 깨닫는다. 새로움이 주는 설렘보다 늘 가던 식당의 익숙한 메뉴가 편안해진다. 게으름으로 보기는 어렵다. 어쩌면 몸이 스스로 속도를 조절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분명 세상은 더 빨라지고 있는데, 나를 둘러싼 공기는 느리게 흐르는 듯하다. 쏟아지는 정보와 유행 속에서 한발 비켜서게 되고, 그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시간의 얼굴이 몸의 세포가 늙어가는 생물학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세상을 받아들이는 감각의 속도가 변하는 과정임을 문득 포착한다. 심장의 박동은 여전하지만, 그 심장이 세상의 일에 반응하는 박자는 한 템포 느려진 것이다. 이 느려짐을 퇴보로 볼 필요는 없다. 어쩌면 필요한 것들만 남기려는 삶의 지혜로운 재편일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시간의 흐름에 자신을 맡겨두지는 않는다. 시간은 가속하지만, 그 안에서 멈추는 법을 배우는 사람이 있다. 빠르게 변하는 풍경 속에서도 자신만의 보폭을 유지하며, 오히려 더 깊고 찬찬히 들여다보는 시선을 갖게 되는 이들이다. 그들은 시간의 노예가 되기보다 시간의 무늬를 활용하는 법을 터득한다. 나이가 든다는 건, 무엇을 잃어가고 무엇을 남기는 일일까?
눈에 띄는 걸음걸이나 줄어든 기력보다 먼저 닳아 없어지는 것은 마음의 탄력이다. 넘어져도 금방 툭툭 털고 일어설 수 있었던 힘, 실패를 겪어도 ‘다음에 잘하면 되지’라며 웃어버리던 그 너그러움이 줄어든다. 반복되는 아침과 비슷한 저녁 속에서, 어제와 다른 새로움을 느끼는 감각은 무뎌진다. 대신 ‘해봐야 똑같지’라는 예상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닫힌 생각들이 늘어난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조심스러워지고, 조심스러움은 어느새 두려움으로 바뀐다. 거대한 공포와는 거리가 있다. 스마트폰의 새로운 운영체제를 업데이트하기 망설이는 사소한 주저함, 늘 가던 길이 막혔을 때 낯선 골목으로 들어서는 대신 차를 돌리는 소극적인 선택 같은 것이다. 주저함의 뿌리에는 ‘지금껏 잘 작동해 온 나의 세계’를 지키려는 심리적 관성이 있다. 변화가 주는 이득보다 그것을 감수하는 과정의 피로를 먼저 계산하게 된다. 새로운 만남이 주는 기대보다,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걱정한다.
결국 우리는 변화 대신 익숙함을 택하고, 새로운 모험 대신 기존의 틀 안에서 안정을 찾는다. 안정감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 벽이 너무 높아지면 스스로를 그 안에 가두게 된다. 변화에 대한 망설임은 결국 어제의 자신 속에 오늘의 자신을 가두는 첫걸음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존재한다는 것은 변화하는 것이고, 변화한다는 것은 성숙하는 것이며, 성숙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창조해 나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살아있음의 본질은 변화 그 자체에 있다. 우리가 '안정'이라고 부르는 상태가 혹시 '정체'의 다른 이름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세월의 흐름은 그저 줄어드는 시간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다.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선택해야 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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