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나를 어제보다 조금 더 낫게 만드는 꾸준함
매일 펜을 집어 들거나 책상 앞에 자리를 잡는 작은 의례는, 세상의 인정이나 치열한 경쟁을 위한 요란한 행동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오직 지난날의 미진함과 조용히 화해하려는 시도였고, 오늘이라는 하루를 조금 더 단정하게 살아가겠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결의에 가까운 것이었다. 번개처럼 강렬한 혁신이나 극적인 도약에서 진정한 성장이 비롯되는 것은 아닐 터다. 대신 그 성숙은, 스스로에게 정한 작은 일상의 궤도를 멈추지 않고 지켜내는 은밀하고 조용한 힘에서만 피어난다. 수년간 손때 묻은 종이의 질감이 손바닥에 닿는다. 오래된 책상 모서리가 닳아버린 흔적은 곧 내가 여기 앉아 보낸 시간의 물리적인 증거다. 이 미세한 반복의 시간이야말로 타인의 시선과 무관하게 오직 고유의 질서를 완성해 가는 가장 오래된 마음의 단련이다.
삶의 변동은 시시때때로 우리를 흔든다. 이러한 연속적인 움직임은 곧 흔들리는 존재인 우리를 지켜내는 가장 소극적이면서도 확실한 방편이 되어준다. 마음이 쉽사리 흐트러지고 인생의 중심축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정신을 안정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꾸준한 마음의 태도는 압도적인 성취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지도를 하루의 한 칸씩 다시 채워가는 사려 깊고 조용한 발걸음이었다. 균형을 위한 에너지가 필요할 때면, 펜을 들어 손때 묻은 종이 위에 이 순간의 차분한 호흡을 기록해 넣는다.
반복이라는 말속에는 때때로 지루함의 함의와 더불어 정체된다는 그림자가 드리워져서 우리를 망설이게 한다. 같은 작은 규율을 기계적으로 되풀이하는 이 세월의 흐름 속에서, 과연 이 전념이 현실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끊이지 않는다. 시인들이 끊임없이 시어를 다듬는 모습이 있다. 또 숙련된 기술자들이 쇠를 다듬으며 수없이 가하는 담금질의 형성 과정을 떠올려 보게 된다. 우리는 그 멈춤 없는 나아감 속에 숨어 있는 깊은 미학을 그제야 발견한다. 축적의 과정은 얼핏 완벽을 향해 질주하는 기술처럼 비칠 수 있다. 하나 그 안에 숨겨진 진짜 추진력은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정신적 복원력을 기르는 여정에서 드러난다.
어떤 주체는 하루의 데이터 로그를 차분하게 남기며 미세한 오차를 줄여가는 과학자의 실천에서 그 미학을 발견한다. 또는 수십 번의 실패 끝에 단 하나의 코드를 정교하게 다듬는 개발자의 끈기 있는 응시에서 그 힘을 감지하기도 한다. 그들이 쌓아 올린 것은 가시적인 결과물이 아니다. 그것은 과정에 대한 투명하고 성실한 서술이었다. 성실함이란 눈앞의 목표만을 향해 달려 나가는 마음가짐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선택한 진행선을 잃지 않으려는 지속의 의지를 본질로 삼는다. 작은 습관의 하나하나가 모여 한 사람의 기품과 확신을 결정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래된 지혜를 전하는 이들이 일찍이 “탁월함은 행위가 아니라 습관이다”라고 언급했던 것처럼, 눈에 띄지 않던 작은 변주들이 쌓여 마침내 삶의 무늬를 완성할 때가 있다. 그것은 주체가 세상을 대하는 윤리이자 흔들림 없는 자세로 승화된다. 지난날의 미완성된 문장을 지우는 대신 그 위에 오늘의 문장을 덧대어 나가는 인품의 시선에서,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성숙의 시간을 목격하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정직한 서약을 지키려는 전념이 결국 성품의 고유한 모양새를 빚어내는 것이었다. 그러니 꾸준한 힘은 가장 사적인 신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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