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누군가에게 건넨 짧은 대화의 장면을 떠올린다. 말과 글, 행동, 이 세 가지 독립된 표현 수단이 한 사람의 바탕을 이룬다. 말이 혀끝을 떠나 공기를 뚫고 귓가에서 멀어지면, 그 언어는 나에게서 분리되어 움직인다.
그 언어는 때로 내가 의도했던 색을 벗어나 낯선 표정을 짓고 나에게 되돌아오기도 한다. 가슴속에 세웠던 생각의 질서가 얇은 층위를 통과하면서 형태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 결과는 상대방의 얼굴에 스민 미세한 표정 변화로 명확히 나타난다. 말이 앞서거나 행동이 뒤처질 때 생기는 작은 틈새, 그것이야말로 한 사람의 사람됨을 그려내는 결정적인 순간이 된다.
우리는 말이 행동과 같고, 글이 생각과 같다고 착각할 때가 있다. 그러나 표현은 현실이라는 단단한 땅에 발을 디디기 전까지는 옅은 그림자일 뿐이다. 행동이 뒤따르지 않은 말과 글은 방향을 잃은 채 떠돌며 존재의 중심을 잃게 된다.
그 순간을 조용히 바라본다. 내가 내뱉은 언어의 조각들이 나의 윤리 기준을 침범하는 것을 목격한다. 무심하게 던져버린 말 한마디가 번져 얼룩을 남길 때, 그 가느다란 진동이 내가 가진 삶의 태도를 확인하라는 조용한 목소리로 다가선다. 고요한 아침, 나는 잠시 멈춰 서서 내 발밑에 새겨진 그림자의 수평을 조용히 살핀다.
언어는 입술을 떠나면 오직 여운만을 가진 듯 가볍게 퍼져나간다. 이 가벼움은 소통을 편하게 이끌어 줄 수 있으나, 그 속성은 문득 허상일 뿐임을 알아야 한다. 누군가의 마음에 깊숙이 자리 잡는 순간, 그 말은 단단한 바위처럼 무게를 얻는 존재로 변한다. 우리는 언어를 정보를 건네는 편의적 수단으로 여기지만, 감정의 흔적을 남기는 행위임을 자주 간과하는 것이다.
‘의도치 않게 한 말’이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법이다. 듣는 사람의 기억에 오래 남아 존중의 마음에 흠집을 낸다. 관계를 순식간에 차갑게 바꾸는 장면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마주하는가.
이 무게는 이제 입에서 나오는 언어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익명의 공간에서 단 한 번의 움직임으로 던져진 책임 없는 문장은 기록의 영원함을 얻는 모습이다. 타인의 마음에 영구적인 고통의 화석으로 굳어져 남는다. 손끝에서 쉽게 완성된 디지털 언어는 책임의 무게를 잃은 채, 본래의 마음을 빠르게 흐리게 하는 속성을 지닌다.
말의 습관은 곧 태도를 구성하는 뼈대이다. 어떤 억양을 고르는지에 따라 대화의 흐름이 완전히 달라진다. 언어는 수단이 아니다. 관계의 온도를 섬세하게 맞추는 움직임이 된다. 약속이라는 단어가 껍질만 남고 책임의 기운이 사라지므로, 그 사람의 본모습을 사람들 앞에 투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말의 품위는 훌륭한 문장 기술을 넘어선다. 그것은 그 말을 받아내는 마음의 크기와 직접 연결되는 일이다. 우리는 말을 사용해 스스로의 높이를 표시한다. 그와 함께 타인을 향한 공경을 실행해야 한다. 그러므로 말을 꺼내기 전, 그 단어의 끝에 실리는 무게를 먼저 재보는 조심성이 절실해 보인다.
공중에서 흩어지는 언어가 말이라면, 글은 존재의 불변하는 각인처럼 단단하게 쌓이는 기록이다. 글 쓰는 태도는 문장을 짜는 기술의 영역을 초월해 한 인간의 사유를 정돈하는 과정이다. 자신의 생각을 질서 있게 바로잡으려는 집중의 시간을 스스로 요구한다. 글은 생각의 구조를 그대로 보여주는 증거이며, 종이 위에 새겨진 스스로의 검토 흔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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