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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맞춤이 여는 관계의 첫 페이지

시선의 주권을 회복하다

by 정성균

말보다 먼저 닿는 약속


사람이 나눌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대화는 입술이 열리기 전, 서로의 눈동자가 맞닿는 지점에서 이미 결실을 본다. 목소리가 공기를 흔들며 상대에게 닿는 속도에 비한다면, 누군가를 확인하고 그 마주함이 자리에 머무는 순간은 압도적으로 빠르다. 상대를 똑바로 바라보는 행위는 눈앞의 형체를 쫓는 시각적 작용을 거쳐 하나의 사건으로 정착한다. 이는 낯선 타인과 세상을 향해 내미는 첫 번째 약속이며, 관계라는 미지의 땅을 열어가는 엄숙한 출발점이다.


정면을 향하는 태도는 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동시에, 내가 타인의 시야 속에 드러나는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자기 결정이다. 사람은 누군가를 만날 때 본능적으로 이 투명한 접점을 통해 안전과 믿음을 확인한다. 설령 말솜씨가 화려할지언정 눈매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거나 시선을 아래로 떨구고 있다면, 그 대화에 확신이 실리기는 어렵다. 반면 서툰 말씨에도 단단하게 고정된 눈길 하나가 진실의 무게를 증명하는 모습은 우리 곁에 늘 존재해 왔다. 소통의 기술을 배우기에 앞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태도는 바로 이 마주함의 결단에서 시작된다.


이런 깨달음은 내가 상담실의 정적 속에서 수많은 이들의 흔들리는 안색을 지켜보며 얻은 생각의 기록들이다. 대화가 시작되었다고 믿기 전부터 이미 서로는 서로를 읽어낸다. 첫마디를 뱉으려 숨을 고르는 사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마음은 눈을 통해 먼저 밖으로 나간다. 마주함은 그 마음이 처음으로 투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상대를 본다는 선언은 나 역시 관찰의 대상이 되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말은 꾸며낼 수 있어도 눈길은 감추기 어렵기에, 마주함에는 늘 팽팽한 긴장이 뒤따른다. 이 긴장은 상대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내겠다는 정직한 용기에서 나오는 건강한 반응이다.


바라봄은 정직하다. 입술은 거짓을 만들고 표정은 가면을 쓸 수 있겠으나, 그 깊이까지 속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정해지는 첫인상은 대개 이 짧은 순간에 결정된다. 상대의 안색에 머무는 나의 눈길이 어떠한지에 따라 그날 나눌 대화의 무게 역시 이미 정해지는 셈이다. 이 창은 마음이 드나드는 문이며 타인을 반기는 통로다. 그 문을 열어두는 용기야말로 인간다움을 지키는 첫 번째 예의라고 믿는다.


시선이 만드는 대화의 밀도


대화의 효율성은 정보의 양이나 말이 얼마나 빠른가 와는 상관이 없다. 진정한 효율은 서로의 속마음을 얼마나 정확하게 알아차리고 있는가에서 갈라진다. 상대를 마주하며 나누는 대화는 수천 마디의 화려한 말보다 강력한 힘을 지닌다. 상대의 얼굴에 담긴 눈에 띄지 않는 움직임과 그 안에 깃든 확신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오해를 줄이고 문제의 본질에 곧장 다가갈 수 있다. 이것은 응시가 만들어내는 실질적인 대화의 경제성이다.


이러한 구조적 효율은 깊은 친밀함으로 이어진다. 친밀함은 물리적인 거리가 좁혀질 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투명함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까닭이다. 상대를 가만히 바라보는 행위는 "지금 이 순간 나의 모든 집중력은 당신에게 향해 있다"라는 명확한 신호다. 스스로를 지키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서로의 시야 속에 머무르는 시간이 쌓일 때 관계의 온도는 비로소 살아난다. 보는 태도가 곧 듣는 태도임을 깨달을 때 대화의 밀도는 이전과 전혀 다른 수준에 들어서게 된다.


우리는 대화가 어긋날 때 단어의 선택이나 말의 짜임새를 탓하곤 한다. 그러나 소통의 실수는 대개 눈길이 서로를 향하지 않을 때 생긴다. 상대가 나를 보고 있지 않다는 느낌은 말의 믿음을 갉아먹고 전달되는 정보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반대로 서로의 눈동자가 마주치며 서로를 확인할 때 입 밖으로 나오는 모든 말은 힘을 얻는다. 상대의 표정을 살피고 그 안에 담긴 말 없는 맥락을 읽어내는 일은 대화의 효과를 높이는 최고의 기술이다.


시야가 머무는 자리에 마음이 머물고, 마음이 머무는 자리에 이해가 싹튼다. 대화 중에 기계로 눈길을 돌리는 행위는 예의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관계의 밀도를 한순간에 흐릿하게 만든다. 상대를 바라보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만으로도 대화는 풍성해진다. 화려한 대화 기술이 없어도 서로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지점에서 믿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다리가 놓이기 때문이다.


타인이라는 거울 앞에 서다


인간관계는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도구적 활동 그 이상의 의미를 품는다. 우리는 타인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고 정의한다. 홀로 있을 때의 생각은 고여 있기 쉽고 때로는 비좁은 자기 암시로 흐르기도 한다. 그러나 타인과 시선이 만나는 순간 나의 생각은 비로소 객관적인 실체를 얻고 세상 밖으로 검증받는다.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나의 모습은 내가 미처 몰랐던 나의 조각들을 깨워준다.


누군가와 유대를 맺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세상을 나의 안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타인의 눈길을 빌려 내가 보지 못하는 곳을 발견하고, 마주 앉은 이의 눈동자가 보여주는 나의 흔적을 읽어낸다. 어제 만난 어느 중년의 사내는 자꾸만 바닥을 훑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는 내 얼굴 대신, 내 눈동자에 고스란히 담긴 자신의 쓸쓸한 진심을 보고 있었다. 이 과정은 사람이 고립된 상태를 벗어나 주인으로 서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다. 좋은 관계는 나를 가두는 벽을 허물고 더 넓은 지평으로 이끄는 창문이 된다. 만남이 잦아질수록 생각은 뚜렷해지고 자아는 넓어진다.


우리는 타인의 눈치를 보며 자신을 가다듬는다. 이때의 의식은 부끄러움이 아닌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이다.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은 나의 행동과 말에 책임을 지운다. 눈길이 맞닿는 짧은 시간 나는 누군가에게 인식되는 실존이 되며 그 시선의 깊이만큼 나 자신을 정중하게 대하게 된다. 거울을 보듯 타인의 눈을 보는 일은 곧 나의 비뚤어진 구석을 펴고 바르게 서는 과정이다.


관계는 한쪽만 관찰하는 것이 아닌 서로를 비추는 일이다. 내가 상대를 읽으려 애쓰는 동안 상대 역시 나를 비추고 있다. 이 보이지 않는 시야의 주고받음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한다. "당신이 거기 있음을 내가 보고 있다"라는 확신이 오갈 때 사람은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타인의 눈동자가 만드는 맑은 거울 앞에 서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곳에 내가 찾던 진짜 나의 얼굴이 있기 때문이다.


침묵이 말을 대신할 때


급하게 말을 채우려 하지 않는 태도 역시 응시의 힘을 튼튼하게 받쳐준다. 대화의 틈 사이에 놓인 적절한 정적은 상대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호흡을 가다듬을 공간을 마련해 준다. 진정한 교감은 마주 보는 눈빛 사이로 흐르는 고요 속에서 더욱 깊게 익어간다. 말보다 깊은 어울림이 일어나는 조건은 언어가 사라진 자리에 오직 두 사람의 존재만이 남아 있을 때다.


가장 깊은 감동은 소리로 설명되지 않는다. 때로는 수백 마디의 위로보다 가만히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에 닫혔던 마음의 문이 열린다. 마주함은 말의 한계를 메우는 강력한 몸짓 언어다. 상대를 향해 시선을 고정한다는 것은 그의 고통이나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그 자리에 함께 머물겠다는 윤리적 의지다. 이러한 머무름이 반복될수록 관계는 소모적인 수다에서 벗어나 단단한 유대감으로 나아간다.


정적은 결코 비어 있는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의 존재감을 가장 강렬하게 느끼는 밀도 높은 순간이다. 말이 끊긴 자리에서 눈길마저 거두어버린다면 그것은 단절이지만, 유지한 채 고요함을 공유한다면 그것은 깊은 이해의 과정으로 남는다. 머무르는 응시와 정적의 윤리는 상대를 재촉하지 않고 그의 속도에 맞춰 기다려주는 배려에서 나온다. 침묵 속에서도 눈빛은 쉬지 않고 상대를 향해 응답을 보낸다.


우리는 너무 많은 말들로 관계를 망치곤 한다. 채워지지 않는 공간을 견디지 못해 쏟아내는 의미 없는 단어들은 진심을 가린다. 그러나 서로를 묵묵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순간들이 있다. 그 고요함 속에서 우리는 말 없는 영혼의 무게를 체감한다. 침묵은 바라봄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고 응시는 침묵을 의미 있는 언어로 풀이한다. 진실은 입술이 아니라 그 사이의 공백과 응시 속에 숨어 있다.


시선을 선택한다는 책임


현대 사회의 풍경은 이러한 마주함의 기회를 밀어내고 있다. 공공의 장소나 길 위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보면 고개는 아래로 꺾여 있고 시선은 작은 화면 속에 갇혀 있다. 몸으로는 가깝게 서 있으면서도 눈동자는 각자의 기계적 신호에 고정되어 마음의 거리를 벌린다. 마주함이 사라진 자리에서 존재는 서로에게 투명해진다.


화면에 숨어드는 습관은 편리함을 찾는 행동에 그치지 않고 더 깊은 함의를 품고 있다. 그것은 눈을 어디에 둘지 결정할 권리를 기계의 질서에 넘겨주는 일이며 타인과 직접 연결될 생생한 순간을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아이컨택이라 부르는 마주함은, 기계적인 신호에 빼앗긴 나의 시선을 다시 살아있는 사람에게로 되찾아오는 시야의 주권 회복이다.


고개를 들어 타인의 눈을 맞추는 시도는 거센 흐름을 거슬러 나만의 박자를 되찾으려는 조용한 저항이다. 기술이 설계한 방향을 잠시 거두고 내 앞에 있는 사람을 향해 고개를 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시야의 주권을 확보하는 확실한 방법이다. 사무실이나 가정의 식탁처럼 평범한 공간은 시선 하나로 그 결이 달라진다. 자료만 훑어보던 눈길들이 발표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한 사람에 의해 집중의 자리로 변하는 장면은 응시가 공간에 부여하는 힘을 증명한다.


마주함은 되돌릴 수 없는 사건이다. 시선을 나눈 순간 우리는 이미 서로에게 흔적을 남긴 존재가 되었기에, 그 눈길에는 상황과 상대에 대한 책임이 뒤따른다. 식탁에서 마주 앉은 가족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는 행동은 그를 존중하겠다는 선언이며, 비즈니스 현장에서 오가는 응시는 조건에 앞서 사람을 보겠다는 연대의 확인이다. 모든 상황에서 눈을 고정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며, 상대가 곤란해할 때 시야를 잠시 옮겨주는 배려 또한 마주함의 성숙한 태도다.


친밀함은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이는 결실이며, 설득은 진실한 마음이 닿는 순간 비로소 완성된다. 관계는 시선이라는 작은 입구를 통해 열린다. 눈을 마주치는 순간 상대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메시지를 보낸다. 지금 이 관계 안에 내가 들어와 있다는 신호다. 말 한마디를 내뱉는 일만큼이나 눈길의 가치를 깊게 생각해야 한다.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진심이 눈을 보는 짧은 순간에 완성되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동안 우리는 몇 번이나 의도적으로 시선을 건넸고 몇 번이나 거두었는가. 그 질문이 살아있는 한 생각의 지평은 닫히지 않는다. 나의 눈길이 향하는 곳에 나의 삶이 있다. 서로를 진실하게 바라볼 때 그곳에 사람이 있고 관계가 있으며 마침내 나 자신이 있다. 이 기록을 끝맺으며 나는 묻는다. 지금 당신은 누구의 눈길로 세상을 보고 있는가. 우리의 시선이 마주칠 때, 비로소 진짜 이야기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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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생각과 마음의 결을, 책 속 문장과 함께 조용히 전합니다. 스친 만남이 믿음으로 이어져 각자의 하루에 힘을 더하는 장면들을 담담히 써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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